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Francoise sagan 입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1995년 코카인 소지혐의로 체포되었을때 한 말입니다.

매혹적이였던 프랑스문단의 작은 요정,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 사강은 푸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에서 따온 필명입니다.

두번의 결혼과 이혼, 마약, 음주, 약물중독.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마음껏 누렸던 작가.

19살에 "슬픔이여 안녕" 으로 프랑스 문단에 바람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생의 한 가운데" 의 작가 Luise Rinser 와 함께 저의 사춘기의 감성을 지배한 작가였습니다.

20대 후반부터 생미셸 대로의 카페와 클럽을 들락거렸고, 골루아즈 담배와 커피 한 잔이 아침 식사였으며, 위스키 잔을 줄곧 손에서 놓지 않았고, 문턱이 닳도록 카지노를 드나들며 인세 전액을 간단히 탕진했고, 재규어와 애시튼 마틴, 페라리, 마세라티를 바꿔 가며 속력을 즐기다가 차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3일간의 의식 불명 상태에 놓이기도 한, 낭비와 알코올과 연애와 섹스와 속도와 도박과 약물에 '중독'된 그녀의 삶이 그녀의 문학을 압도한 격이었다." 그녀가 죽은 후 프랑스 한 신문의 기사입니다.

Francoise sagan ( 1935- 2004 )
Francoise sagan ( 1935- 2004 )

지난 봄.
남쪽행 KTX 기차시간은 한참이 남았고, 서울역 입구 다방에서 떠나는 자의 설렘과 여유를 만끽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기차는 출발하고 차창밖은 봄 입니다.
산자락에 강가에 널려있는 조약돌에,
앞줄에 앉아있는 아릿다운 처녀의 옷자락 에.

간질 간질 재치기처럼,
그렇게 봄은 폭발직전 입니다.

"브람스를 좋아 하세요"

오늘 다시 읽어보기로 한 책 입니다. 기차가 광명역을 지날때 쯤 책을 펴 들었습니다. 그녀가 24살때 쓴 작품이죠. 사강의 다른 작품들 처럼 이 작품도 아나톨 리트박 감독에 의해 1961년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

자신의 현악 6중주 1번' 중 2악장을 피아노로 편곡하여 스승의 부인, 클라라 슈만에게 바치면서 가슴에 품었던 애틋한 연정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켰던 브람스.

이 영화 역시 연상의 여인과의 러브스토리가 전개됩니다.

바람둥이 남자친구 로제와 긴 연예를 하고 있는 39세의 폴이 25세의 잘생긴 청년 '시몽'에게 구애를 받으며 흔들리는 이야기 입니다.

폴은 14살이나 어린 시몽의 사랑을 받아들이가 두렵기만 합니다. 언젠가 버려질, 사라져갈 사랑을 함부로 내것으로 만들기에는 용기가 없었으니까요.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건 열정이예요.
그외엔 아무것도 믿지않아요.
사랑은 2년이상 안갑니다.
좋아요. 삼년이라고 해 두죠." 
- 사강,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

결국 계속해서 다른 여자를 쫓는 로제에게 돌아갑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인공 폴라 역을, 그녀의 바람기 많은 연인 로제 역으로는 이브 몽땅이, 폴라를 좋아하는 젊은 변호사 역으로는 앤소니 퍼킨스가 맡았습니다. 사강이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속에서는 브람스 음악이 들려옵니다. 교향곡 3번 3악장 입니다.

F-A-F , Frei aber Froh , 자유롭게 그러나 즐겁게.
왠지 어감상 약간 어색한 동기(Motiv ) 로 브람스3번 교향곡 은 시작됩니다.

브람스의 형식은 Frei aber Einsam,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이른바 ‘F-A-E 동기’ 가 브람스의 것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이게 원래 브람스 답지요.

현악사중주 2번 A단조의 1악장에서 이 동기를 사용 했었습니다. 그러나 교향곡 3번은 조금 다릅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우울한 삶을 보냈던 브람스와는 왠지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명랑하고 밝은 분위기가 완연합니다.

이 무렵 잦은 이태리여행이 그의 감성에 영향을 준것 같습니다. 아니면 빈을 떠나 온천 휴양도시 비스바덴에서 만난 34년 연하의 16세 소녀 슈미츠와의 달콤한 감정 때문이였을까요?

그러나 바닥에 깔린 우울하고 몽환적인 느낌은 어쩔수가 없습니다.

사강의 또 다른 작품.
슬픔에 대해 당당하게 안녕!( Bonjour) 하고 맞섰던 사강, 시인 보들레르가 이름을 헌사한 와인이 떠오릅니다.

샤또 샤스 스플린(Chateau Chasse Spleen), 슬픔이여 안녕 입니다. 'Chasse-Spleen' 샤스는 쫓아내다, 스플린은 슬픔·우울을 뜻합니다. 보들레르가 이 와인을 마신 뒤 우울증에서 벗어나 샤스 스플린이라는 이름을 헌정했습니다.

묘하게도 사강의 책 제목을 연상하게 합니다.

보르도 크뤼 부르조아급으로 가난한 자의 라투르 라고 평가받는 가성비 좋은 와인입니다.

보들레르와 사강.
시대의 우울과 고독에 고통받으며, 견디며 살아내었던, 그리고, 살아내는 우리들에게 샤스 스플린이 위로가 될런지....

"사랑해." 라고 말하며 시몽은 전화를 끊었다.

전화박스 밖으로 나오면서 그녀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기계적으로 머리에 빗질을 했다. 거울 속에는, 방금 누군가에게 "사랑해." 라는 말을 들은 얼굴이 있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때쯤 차창밖을 바라 보았습니다.

간질간질 재치기 처럼,
봄은 폭발하고 있었습니다.
시몽이 당신에게 청합니다.
오늘 저녁 6시에 좋은 연주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권기훈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의대를 다녔고, 와인의 매력에 빠져 오스트리아 국가공인 Dip.Sommelier자격을 취득하였다. 이후 영국 WSET, 프랑스 보르도 CAFA등 에서 공부하고 귀국. 마산대학교 교수, 국가인재원객원교수, 국제음료학회이사를 지냈으며, 청와대, 국립외교원, 기업, 방송 등에서 와인강좌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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