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5년 전 소스 개발 연구원이던 시절, 시장조사 때문에 하루 동안 도쿄에서 11곳을 다니면서 라면만 먹었던 적이 있다.

먹고 기록하고 이동하고, 첨에 맛있게 막 먹던 나를 보고 선배가 웃으면서 조금만 먹으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음식 남기면 벌 받는다’는 말을 어릴 적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던지라 미안한 마음에 남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5곳을 넘기면서부터는 정말 힘들기 시작했다. 결국, 라면 한 젓가락, 국물 한 숟가락만 맛보고 나오기를 반복했다. 나중에는 뭘 먹었는지도 모를 지경이 되어버렸다.

먹는 것을 즐겨야 하는데 일이 되어버리니 별로 즐겁지가 않은 것이다.

라면은 그런 식으로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밥은 농부의 마음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한 그릇 더 달라고 해서 두 그릇을 먹는 게 기본이 되어 버렸다.

카마토다이닝&잣카 엔 (釜戸ダイニング&雑貨・ 縁)

가마솥에 밥을 지어내는 이 곳은 오사카 시내에 있지만, 관광으로 간다면 절대로 마주칠 일이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점심은 정식, 저녁은 이자카야로 영업을 하는 이곳은 입구에 떡 하니 가마솥이 놓여 있어, 가마솥으로 밥을 짓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담하고 정감 있는 인테리어다. 앞에 다녀온 곳과 비교한다면 가장 고급스러운 곳이다. 런치 메뉴 중에서 ‘미니 호우바 야키세트’를 주문했다. 1,500엔으로 런치 메뉴 중에서는 비싼 편이었다. 매일 바뀌는 정식은 900엔이었다.

▲ 오사카 시내에 있는 이 곳은 육중한 가마에서 밥을 짓고 있다. <사진=박성환 소믈리에>

밥을 이쁘게 담아내는 집이다. 구수한 밥 위에 누룽지 하나 올리는 것이 맘에 든다. 청량리에도 누룽지를 주는 맛있는 밥집이 하나 있는데 밥을 담아내는 건 정말 엉망이다. 하나도 안 이쁘다. 여기 보고 좀 배웠으면 할 정도다.

단지 밥을 이쁘게 담은 게 다가 아니다. 요즘 보기 드물게 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펴서 가마솥 밥을 짓는다.

밥을 입에 넣는 순간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광택도 탄력도 좋았다. 그리고, 밥을 씹어 먹어보면 속은 부드럽고 찰졌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식감이다.

확실히 고시히카리가 아닌 건 알겠지만, 무슨 품종인지 모르겠다.

▲ 이쁘게 담은 밥에 누룽지 한 조각 올려준다. <사진=박성환 소믈리에>

가마 옆에 있는 쌀 포장지를 보고 쌀 품종을 물어보았다. 계약 재배하는 '엔코코메'라는 브랜드의 쌀을 사용한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먹은 밥은 ‘유메삐리카'라는 품종으로 지었다고 했다.

'엔코코메'는, 일본에서 가장 재배 비용이 비싸다고 하는 천연 미네랄을 사용하는 친환경 농업으로 재배하는 브랜드다. 그리고 재배 농가는 15년 전 농림수산부 장관상을 받은 에코 농부다. 쌀의 보관도 연중 16℃에서 철저히 관리한다.

그리고, ‘유메삐리카’는 홋카이도에서 2번째로 많이 재배되는 품종으로 처음 먹어 본 쌀이었다.

테이블마다 얼음 팩을 깔아놓은 접시 위에 달걀이 있었다. 여기는 달걀 밥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밥 한 그릇 다 먹고 한 그릇 더 달라고 해서 달걀을 넣어 먹어보았다.

아마 밥 지을 때 5% 정도 물을 적게 넣고 지었을 것 같다. 달걀 밥에 어울리도록 겉은 알알이 살아있고, 속은 부드러우면서도 찰지다.

필자는 요즘 몇 년간 집에서 저아밀로스쌀만 먹다 보니 웬만한 쌀로는 찰지다고 느끼지 못한다. 앞서 다녀왔던 곳의 밥과 이곳은 확실히 다르다.

필자의 취향이 가볍고 담백한 맛의 밥보다 이런 탄력 있고 찰진 밥을 좋아하는 것뿐이니, 꼭 이런 밥맛이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번에도 일찍 갔지만 아쉽게 밥 짓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손님이 오기 전에 미리 밥을 지어 두었다. 손님이 있는데 저런 장작을 때우는 가마에서 밥을 짓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심 한가운데 이런 나무 장작으로 가마솥 밥을 짓다니 대단한 것은 틀림이 없다. 밥 짓는 물에 대해 물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 나무장작을 사용한 가마솥 밥으로 유메삐리카 품종의 쌀로 밥을 지었다. <사진=박성환 소믈리에>

유메삐리카 

2017년 기준으로 일본에서 10번째로 많이 재배되는 쌀. 나나츠보시, 키라라397과 함께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쌀로 그 맛은 ‘고시히카리’를 뛰어넘는다고 평가받고 있다.

2008년에 개발되어 2009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품종으로 ゆめ(꿈:일본어)+ぴりか(아름답다: 아이누어) 아름다운 꿈이라는 뜻의 일어와 아이누어 합성어로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쌀을 꿈꾸는 홋카이도 도민의 꿈을 담았다. 3,422건의 일반인 응모를 통해 품종명을 선정했다.

쌀알은 두껍고 아밀로스 함량이 낮아 찰기가 있으며 부드러운 맛이다. 유메삐리카를 개발한 홋카이도의 카미카와 농업시험장은 10년 동안 약 15만 개나 씨를 뿌리고 거두어서, 그 시간 동안 홋카이도의 추위를 거쳐 이겨온 맛있는 품종을 만들어 냈다. 150만 분의 1의 경쟁을 뚫고 올라온 쌀이다. 

소믈리에타임즈 박성환 밥소믈리에 honeyric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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