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명한 와인 전문가 휴 존슨(Hugh Johnson)은 그의 저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와인을 즐기는 방법>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레이블을 보지 마라. 가격도 무시하라. 오직 하나만 생각하라. 바로 지금 잔에 든 이 와인이 얼마나 맛이 있는가 하는 것만 생각하라!’’

지당한 말씀이다. 이보다 더 간단하고 명확하게 와인을 대하는 자세를 설명하진 못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찜찜한 의문은 남는다. 마치 ‘삶이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이라는 인생의 깨달음을 깊이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삶은 어떻게 즐기는 건데요? 내 앞에 놓인 와인, 이 정도면 맛있게 즐길 만 한가요? 순간을 즐기라는 명제 앞에서 온통 물음표투성이다.

휴 존슨도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와인을 가장 맛있게 마시는 방법 중 하나이지만, 이 간단한 방법을 실천에 옮기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지금 이 와인이 얼마나 맛이 있는가?‘하는 것은 대답하기 여간 어려운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와인에 대한 취향과 감상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라지만 세상 모든 것이 직업의 영역으로 들어올 때 늘 그런 것처럼, 와인을 직업으로 택하려면 어느 정도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지식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 훈련이란 것은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한 감각을 기르고 와인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반복되는 시음이다. 누군가에게는 와인의 수도라 불리는 곳에서 다양하고 질 좋은 와인을 마음껏 마셔볼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한 순간들이겠지만 사실 나에게는 꽤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그다지 섬세하거나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미묘하게 다른 립스틱 색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친구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으며 매사에 상황 파악이 느리고 상대방의 말귀를 잘 못 알아먹는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상한 김밥을 먹어도 아무 탈이 없다며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닐 정도로 모든 게 무딘 편이니 와인을 감상하는 후각과 미각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는가.

와인학교 초반 엉뚱한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하면서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며 시음을 즐겼다. 도시에서만 자라 자연을 접해 본 일이 별로 없던 나는 막연하게만 알던 각종 꽃의 향기 즉 아카시아, 장미, 바이올렛 등 그윽한 향기의 향연이 작은 와인 잔 안에서 펼쳐지는 것이 즐거웠으며 아몬드 향과 바닐라 향이 내가 알던 향과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에는 그 신기함과 놀라움에 그저 헤헤 웃기만 했다.

향과 맛을 분석하여 어느 정도 말 할 수 있다면 그것들을 바탕으로 와인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결론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와인은 무슨 품종으로 만들었는가? 오래된 와인인가 아니면 갓 만든 와인인가? 지금 마시기에 적당한가? 더 나아가 어느 지역에서 만든 와인인가? 등등. 문제는 여기에 있다.

와인을 배워가는 기쁨도 잠시, 학교에 다닌 지 어느새 1년이 지나고 곧 시험이라는 큰 산과 졸업을 앞두고 있을 즈음 슬슬 초조함과 긴장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레드 와인 세 잔을 두고 각각의 포도 품종을 알아맞히는 모의 시험이 있었는데 나는 그 세 가지를 모두 틀리고 말았다. 어느 하나만 틀린 것이 아니라 전부 틀려서 선생님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까지 틀렸다는 표시로 시험지에 주욱 대각선을 그어 버렸다. 수능을 앞둔 고3이 찬 바람 부는 어느 가을날, 처참한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았을 때의 기분이 이럴까. 그날, 덜컥 겁이 나면서 나는 성급하게도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내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와인은 내가 할 것이 아니구나.’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해서 당장 비싸게 지불한 와인학교를 뛰쳐나와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는 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타고난 감각이 형편없다면 일단 지식으로 무장하리라’는 각오로 포도 품종과 각 지역별 와인의 특징 등 주어진 책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암기하고 시음에 임하는 것이 내가 찾은 방법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느새 와인을 내 감각에 맡기기보다는 머릿속에 입력한 지식에 의존해 시음하고 판단하고 있었다. 가볍게 와인에 대한 감상을 말하는 자리에서도 솔직한 나의 느낌을 말하지 않고 슬쩍 본 병의 레이블에 근거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늘어놓곤 하는 식 말이다. 이 방법이 항상 들어맞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앞에 놓인 와인은 불행히도 내 지식 목록과 예상에서 벗어나기 일쑤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늘 처음 마킹한 답이 정답이거늘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답안지를 교체해 망한 경험이 있지 않던가. 하물며 본능적인 감각이 중요한 와인 시음에서 나는 왜 스스로를 믿지 못했을까!

▲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만이 와인의 전부가 아님을 왜 몰랐을까 <사진=송정하>

급기야 나에게는 일종의 시음 공포증이란 것이 생겼다. 식사와 함께 가볍게 마시는 와인 조차도 와인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마음 놓고 즐길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와인을 멀리하게 된 것이다. 긴장감과 압박감은 악순환이 되어 시음을 더 방해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책상 앞 벽면에 붙여 놓고 한동안 삶의 모토로 삼았던, « 인생에 있어서 두려워할 것은 없다. 이해할 것뿐이다 » 라는 마리 퀴리(Marie Curie)의 글귀가 무색하게 나는 점점 와인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고장 난 라디에이터 옆에서 책을 한번 보고 와인을 한번 시음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그다음 순서로는 차가운 맥주 캔을 들이켜곤 했던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시험이란 것이 늘 그렇듯 내 시음 공포증은 시험이 끝나자 사라져 버렸다. 와인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더 제대로 알고 표현하고 싶은 욕심과 부담은 있지만, 다행히 시험을 앞두고 맞닥뜨린 공포에 비할 바는 아니다.

요즘, ‘즐기는 자는 노력하는 자를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세태에 맞게 바꾸어 노력을 강조했나 보다. 사실 즐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하고 그러다 보면 비로소 즐기는 경지에 이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처음부터 두려움을 걷어내고 호기심과 미지의 바다에 몸을 맡기는 즐거움, 되돌릴 수 있다면 그런 쪽을 택하고 싶다.

▲ 송 정 하

법대를 나왔지만 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 프랑스 보르도로 떠났다. 보르도 CAFA에서 CES(Conseiller en sommellerie:소믈리에컨설턴트 국가공인자격증), 파리 Le COAM에서 WSET Level 3를 취득했다. 사람이 주인공인 따뜻한 와인이야기를 쓰고 싶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송정하 noellesong05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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