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명절인 설날을 보내고 가족들과 함께 좋은 음식과 술을 곁들이기가 익숙해졌을 때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연휴의 끝이 왔다.

너무 마음을 내려놓고 가족의 품에서 지냈는지 조금은 머리가 멍해진 상태로 일상복귀의 시작은 노량진수산물 새벽시장. 보통은 쉐프가 매일 장을 보지만 오늘은 식재료 구경도 할 겸 따라나섰다.

오늘 사용할 싱싱한 해산물들을 구입하기 위해 서늘하고 찬 기운을 맞으며 매일 가는 단골 사장님 수산물 집에 들렸을때 오랜만에 보는 작고 귀여운 요즘은 흔하지 않은 식재료인 호래기(반원니꼴뚜기) 보인다.

지방에서야 워낙 흔하게 볼 수 있지만, 현지에서 소비가 많은 편이라 내륙지방에선 보기 힘든 편이다. 통영이나 거제 등 수산물을 파는 식당에 가면 구워먹거나 쪄먹거나 무침으로 곁들이기도 하고 라면에 통째로 넣어 먹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쉽고 맛있게 먹는다.

▲ 수산시장 호래기(반원니꼴뚜기) '오랜만에 보는 작고 귀여운 요즘은 내륙 지방에선 흔하지 않은 식재료'

호래기는 송골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매 오징어 과에 속하는 오징어들이 매 발톱과 유사한 갈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호리기로 불리고 그 후 음이 변화하여 지방마다 조금씩 발음이 다른 것으로 추측된다.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에도 좋은 음식이고 단백질과 타우린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성인병 예방에도 좋은 식재이다.

가끔 시장에서 나올 때면 그날그날 가져와 논현동 주지육림 매장에서 단골손님이 찾아오시면 내어드리곤 했는데 한번 드시고 나면 꼭 오셔서 다시 찾으셔서 곤란한 경우가 많다.

역시나 조금 늦은 저녁쯤,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신 오랜만에 보는 단골손님,

명절을 맞아 서울에 올라 오셨다가 내려 가시기전에 한잔하러 들리셨다고 메뉴판은 덮어두고 주인장이 추천하는 것으로 준비해 함께 술 한잔 기울이자 제안하셨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보께리아시장(Mercado de La Boqueria)에 가면 맛볼수 있는 호래기를 올리브유에 볶아 반숙한 계란프라이 위에 올려 바삭한 빵 등에 올려 먹는 타파스(Tapas)요리를 떠올리며 오늘 사온 싱싱한 호래기를 병아리콩과 함께 볶아 반숙한 계란프라이에 올려 쪽파를 올리고 따뜻하게 대펴진 접시에 내어 드렸다.

▲ 주지육림의 호래기 요리 '스페인 보께리아 시장의 파타스 요리를 떠올리며 만든~'

호래기에서 나온 짭조름하며 감칠 맛 나는 육수에 반숙된 계란 노른자를 수저로 터트려 함께 잘 비벼 한입 크게 물고 씹으면 톡톡 터지는 호래기의 식감과 부드러운 맛은 조금 쌀쌀한 날씨에 몸도 녹이며 마음도 녹이는 좋은 술안주가 된다.

곁들일 한잔 술이 빠질 수 없는 타이밍이다.
와인도 좋겠고 소주도 안성맞춤이다.

다만, 산성인 성질인 호래기에 알칼리성인 소주를 먹는 게 좋겠다는 넉살좋은 웃음을 지으며 차게 보관한 소주 한병을 손님께 내어드렸다.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넣은 희석소주를 권할 이유가 없다고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이유 또한 없다고 본다. 우리네 아버지시절 아니 그 이전부터도 힘든 하루의 노고를 위로하며 작정하고, 수작질하며 동료와 친구와 함께 부담 없이 저렴하게 마실 수 있던 술이 아니던가.

▲ 보해 빈티지 소주 '70년대 레트로 감성을 재현한 보해양조에서 생산하는 전라남도 지역소주'

보해양조에서 생산하는 전라남도의 지역소주이다. 향토기업인 보해양조는 최근 경영악화로 세간에 이야기들도 많지만 지역소주를 살리자는 운동으로 최근 SNS나 유튜브등에 많이 소개되고 있다.

유시민 소주라는 연관검색어가 뜰 정도이다.

50~60년대만 해도 가장 부의 상징으로 인식되던 기업이었고, 89년도에는 국내 최초 무 사카린 소주를 시판하기도 한 곳이다.

70년대 레트로 감성 컨셉이 유행인 요즘 눈을 사로잡은 빈티지한 라벨, 70년대 그대로 재현했다. 소주잔을 부딪치고 한 모금 넘긴 순간 그 깔끔함은 일반 대중 희석소주와 다름을 알게 한다. 고급 보드카에 사용되는 정제 공법으로 희석소주 특유의 역취가 없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소주이다.

음식의 향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지 않아 한국음식에 그야말로 제격인 소주이다.

고풍스럽고 감성이 넘치는 보해소주의 라벨은 한층 더 술자리를 돋보여주는 듯하다. 그렇게 빈 병들은 테이블 한 쪽을 채워가고 단골손님의 표정도 편안해 보인다.

다시 또 찾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다음을 기약하고 가셨다.

이렇게 설 명절이 끝나고 첫 영업을 끝냈다. 부디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셨길 바래본다.

곧 24절기의 하나 입춘(立春)과 경칩(驚蟄) 사이인 우수(雨水)이다. 날씨가 많이 풀려 초목이 싹트는 시기. 밖이 보이는 창 이있는 자리에 앉아 문을 조금 열고 어깨에 들어간 힘 빼고 느슨하게 앉아 제철음식에 소주한잔 곁들이며 좋은 사람과 아주 오래도록 기억할만한 정겨운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소믈리에타임즈 김소희 칼럼니스트 jujiyugr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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