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랭저 샴페인 하우스는 영국 왕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사진= 김지선>

샴페인은 럭셔리 와인의 대명사로 통하는데, 귀족을 넘어 왕족 이미지를 획득한 샴페인이 있다. 바로 '볼랭저(Bollinger)'다. 이 하우스가 왕족의 이미지를 획득한 배경에는 영국의 힘이 크다. 한 세기가 넘도록 영국 왕실은 볼랭저를 향한 애정을 끊임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첫 만남은 1884년에 시작된다. 당시 군주인 빅토리아 여왕이 볼랭저 샴페인을 처음 마시고는 그 맛에 반하여 품질을 보장하는 의미의 왕실 인증서(Royal Warrant)를 수여했다. 이후 20세기에 들어 엘리자베스 볼랭저가 하우스를 운영할 당시, 하우스는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왕실 인증서를 받았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1981년에는 찰스 왕세자의 결혼식 연회에 사용되기도 했다.

볼랭저의 인지도는 고전 명화인 '007시리즈'를 통해 더 상승했다. 1973년 '죽느냐 사느냐' 편에서 제임스 본드가 볼랭저 샴페인을 잔에 따르는 것을 시작으로, 볼랭저에 '제임스 본드의 샴페인'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 볼랭저 샴페인 하우스 <사진= 김지선>

이런 역사가 있는 곳이니 하우스에 들어서면 말이나 행동에 격식을 차려야 하지 않나 걱정이 앞섰다. 붉은색으로 꾸며진 근사한 리셉션 공간은 내 옷매무새까지 돌아보게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틈날 때마다 한국이나 나의 여행 이야기를 묻는 바스티앙 마리아니(Bastien Mariani) 씨가 안내를 해주어 경계하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바스티앙씨는 내가 이곳에 방문하기 약 2주 전에 서울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로 입을 열었다. 그는 한옥에 머무른 일, 한국에서 먹은 음식이나 이태원 거리를 다니며 느낀 것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었다. 샴페인 여행의 끝을 향해가는 와중에 이렇게 하우스 외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은 처음봤다. 특히나 그런 사람을 볼랭저에서 만나니 더 재미있었다.

"그 외에는 손도 안 댑니다. 목마를 땐 빼고요."

볼랭저 하우스는 샹파뉴 지역의 귀족 아타나스-루이-임마뉴엘(Athanase-Louis-Emmanuel)이 와인 분야에서 일하던 폴 르노딘(Paul Renaudin)과 조셉 볼랭저(Joseph Bollinger)와 협력하여 1829년 아이(Ay) 지역에 세운 곳이다. 이후 볼랭저 가문이 대를 이어 샴페인 하우스를 운영했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영국 왕실의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성장해왔다. 또 3대째에 이르어 운영을 책임진 '마담 볼랭저'의 역할로 하우스가 큰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로리스톤 볼랭저(Elisabeth Lauriston Bollinger)'로, 그의 남편인 자크 볼랭저가 일찍 세상을 떠나며 40년 넘게 하우스를 지휘했다.

▲ 볼랭저의 카브는 처음부터 와인 보관용으로 만들어졌다. <사진= 김지선>

엘리자베스 볼랭저는 볼랭저의 대표 샴페인인 R.D( Récemment Dégorgé, 늦은 데고르주망)나 비에이 비뉴 프랑세즈(Vieilles Vignes Françaises)를 출시하고, 이미 영국의 확실한 사랑을 받고 있었음에도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등 여러 미국 도시를 넘나들며 직접 볼랭저를 홍보했다. 미국에서도 볼랭저의 인기가 치솟은 덕에 시카고 사람들은 마담 볼랭저에게 '퍼스트레이디'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의 업적도 놀랍지만, 마담 볼랭저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 있다.

"저는 기쁘거나 슬플 때 샴페인을 마십니다. 가끔 외로울 때 마시기도 해요 … 배고프지 않으면 홀짝이고 배고프면 마십니다. 그 외에는 손도 안 댑니다. 목마를 땐 빼고요"

그의 재치 넘치는 말은 지금까지도 종종 회자되고 있다.

1971년까지 이어진 마담 볼랭저의 활약으로 볼랭저는 고급 샴페인의 이미지를 굳혔다. 긴 역사가 있는 대부분의 샴페인 하우스는 대규모 기업에 속하거나 일부 지분이 대기업에 넘어가기도 하는데, 지금까지 볼랭저는 오직 볼랭저 가문이 소유 및 운영하고 있다. 이는 하우스가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영국 왕실을 포함한 세계의 많은 팬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아이(Aÿ)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계

▲ 카브에는 잊혀졌다가 발견된 20세기 초 빈티지의 샴페인들도 있다. <사진= 김지선>

바스티앙씨는 아이 지역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해주었다. 볼랭저가 위치한 '아이(Aÿ)'의 철자는 주변 마을 이름에도 붙어있는데, 고대 프랑스어로 에페르네는 '아이 뒤(after Aÿ)'를, 베르조네는 '아이를 통과한(through Aÿ)'을, 암보네는 '아이 앞(before Aÿ)'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렇게 아이는 주변 마을의 이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샹파뉴 지역의 핵심지였다. 스파클링이 아닌 스틸 와인을 생산하던 17세기까지는 아이가 와인 생산지로 가장 유명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샴페인으로 유명한 곳이 더 생겨났지만, 스파클링 샴페인을 생산하는 지금도 아이의 모든 포도밭이 그랑 크뤼로 선정되어 과거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필록세라가 비껴간 포도밭

볼랭저가 소유한 밭의 크기는 무려 174헥타르로, 전체 사용하는 포도 중 60%에 해당하는 양을 이곳에서 생산한다. NM 중에서는 가장 많은 비율이고, 그만큼 포도 품질에 자부심이 강하다. 나머지 40%의 포도는 250여 명의 농부로부터 사는데, 그 포도 역시 일정한 품질로 받기 위해 힘을 기울인다고 한다. 볼랭저 포도밭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품종은 단연 피노 누아다. 약 60%를 차지하며, 그래서 샴페인 블렌딩에도 가장 높은 비율로 들어간다.

하우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볼랭저 소유의 밭이 있어 그곳을 먼저 들렀다. 이들이 소유한 밭 중 일부는 기적적으로 20세기 초 필록세라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 바로 피노 누아가 심어진 클로 생-자크(Clos-Saint-Jacques)와 클로 데 쇼데 테르(Clos des Chaudes-Terres)다. 필록세라가 이곳을 비껴간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를 기념하고자 프랑스의 정통 비티스 비니페라 나무에서 나온 포도로 '비에이 비뉴 프랑세즈 퀴베'라는 특별 샴페인을 생산하고 있다.

최고의 샴페인은 오크통 발효에서 시작된다

▲ 사용하는 오크통에 문제가 생기면 하우스 내의 목공소에서 직접 수리한다. <사진= 김지선>

볼랭저의 넌 빈티지 샴페인인 스페셜 퀴베나 로제 샴페인은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발효한다. 그러나 그랑 아니(Grand Anee)나 RD 등 빈티지 샴페인부터는 오크통에서 발효를 진행한다. 나무 틈 사이로 와인이 공기와 미세하게 접촉하며 와인의 복합적인 맛과 숙성 능력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볼랭저에서 사용되는 오크통들은 최소 5년 이상 사용된 것인데, 새것을 쓰지 않는 이유는 나무 자체에서 나오는 향을 와인에 덜 묻히기 위해서다. 현재 부르고뉴에서 가져온 오크통은 3000개가 넘게 있다는데, 이 오크통들을 최상의 상태로 관리하기 위해 독자적인 목공소까지 운영하고 있다.

매그넘 병에서 숙성되는 리저브 와인

건물 한쪽의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5km에 달하는 카브는 아주 대규모의 샴페인 하우스 카브와 비교하면 큰 편은 아니지만, 하우스가 세워진 때부터 와인을 위해 사용된 역사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스페셜 퀴베를 위한 리저브 와인이 매그넘 70만여 병에 담겨 블렌딩될 순서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동안 잊혀졌다가 2004년에 새로 발견된 볼랭저 가문의 개인 셀러도 있다. 볼랭저의 모든 샴페인은 법으로 지정한 필수 숙성시간보다 2배에서 5배 긴 시간 동안 숙성한다. 스페셜 퀴베는 3년에서 4년을, 빈티지 이상은 7-8년을 숙성한 후 출시된다. 

한참 카브를 걸어가던 중 갑자기 화재경보음이 우렁차게 울렸다. 이 미로 같은 지하에서 무슨 일이 생겼나?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처음 오는 손님들의 이런 반응이 익숙했는지, 경보음이 울리자마자 바스티앙씨는 업무시간이 끝났다는 걸 알려주는 소리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시계를 보니 4시 30분이었다. "아직 4시 30분인데요?"라고 되물으니 그는 이 시간에 하우스의 모든 업무가 종료된다고 덧붙여 설명해주었다. 빠른 퇴근 시간에 퇴근을 알리는 친절한 알람까지 울린다니. 한창 일할 시간인 서울과 비교하면 참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덜 바쁘게 살며 삶을 즐길 줄 알기에 와인 문화도 꽃피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볼랭저 하우스를 떠나며

볼랭저는 전통을 지키려 노력한 흔적이 유난히 많이 보인 하우스였다. 오크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 필록세라를 피해간 포도밭의 보존, 손으로 침전물을 제거하는 데고르주망 등 하우스를 돌아보는 2시간 동안 곳곳에서 옛 모습이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노력은 맹목적인 답습이 아니요, 최고의 샴페인을 만들기 위한 이유 있는 보존이었다. 그래서 더 좋은 안이 있다면 지켜오던 일을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았다. 2008년, 하우스 최초로 볼랭저 가문이 아닌 새로운 인물 제롬 필리퐁(Jérôme Philipon)이 CEO의 자리에 올랐다. 전통에서 내려져 온 정체성과 현실감각을 동시에 유지한 덕에, 볼랭저는 현재까지 명품 샴페인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우스의 이미지처럼 힘차고 강한 샴페인의 맛에서 볼랭저의 경영 이념을 배워간다.

김지선 칼럼니스트는 영국 와인 전문가 교육 WSET Advanced 과정을 수료후 WSET Diploma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마셔도 끝이 없는 와인의 세계에 빠져 와인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으며,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아는 날이 오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지선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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