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룩만의 샴페인 양조 노하우는 다음의 세 가지 요소에 있다. 첫째, 포도밭 구획(plot)의 선택과 그 특징을 잘 살려내는 것. 둘째, 크룩의 셀러 마스터 에릭 레벨(Eric Lebel) 및 테이스팅 위원회의 철저한 와인 블렌딩. 셋째, 아주 천천히 진행하는 숙성과정이다.

하나, 테루아의 특징을 살려라

크룩은 와인을 혼합하기 전까지는 포도밭의 구획과 빈티지별로 엄격하게 나누어 관리한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하더라도 개별 연주자의 실력을 관리하는 것과 같다. 구획 별로 수확된 포도는 모두 개별적인 알루미늄 통에서 발효되고, 각각의 오크통에서 숙성된다. 와인 숙성에 사용하는 오크통은 모두 크룩 하우스에서 직접 제작하는데, 오크통을 만든 후 3년간 통풍이 잘되는 곳에 보관하는 방법으로 과도한 나무 향을 지운다. 이 향이 적어야 포도에 담긴 테루아의 모습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 크룩 샴페인의 핵심 중 첫 번째는 각 포도밭의 테루아를 살리는 것이다. <사진= 크룩>

오크통 숙성을 거쳐 병입의 단계만 남은 와인 중 일부는 크룩의 와인 '도서관'에 있는 다른 리저브 와인과 블렌딩 되고, 블렌딩에 사용되지 않은 나머지는 새로운 리저브 와인으로 보관된다. 이 와인 도서관에는 약 150여 개의 리저브 와인이 있고, 가장 오래된 와인은 숙성 기간이 15년도 더 되었다고 한다. 기후가 안 좋았던 해의 와인이라고 해서 버려지는 일은 없다. 너무 뜨거운 해의 와인은 비교적 서늘했던 해의 와인을 만나 최고의 조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크룩만이 제시하는 새로운 방법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샴페인 생산자들은 변덕스러운 날씨의 영향에서 벗어나 일정한 품질의 샴페인을 내놓기 위해 여러 해의 와인을 블렌딩 해왔다. 혼자서는 부족하지만 함께라면 멋진 와인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샴페인의 오랜 생산 방식으로부터 모두는 그 나름의 역할이 있으며, 여러 개인이 힘을 합치면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교훈을 다시금 새기게 된다.

둘, 셀러 마스터와 테이스팅 위원회의 철저한 와인 블렌딩

▲ 크룩의 셀러 마스터 에릭 레벨 <사진= 크룩>

이러한 샴페인 지역에서 크룩만의 차별성을 말하자면 이들은 각 빈티지 와인의 특징에 따라 혼합 비율을 바꾸며 '최고의 조화'를 찾는다는 점이다. 1999년에 처음 에릭 레벨(Eric Level)이 셀러 마스터로 온 이후, 그는 현 오너인 올리비에 크룩(Olivier Krug) 등이 포함된 테이스팅 위원회와 함께 매년 샴페인의 블렌딩 비율을 결정해 왔다. 이들은 각 구획 별 포도로 만든 와인이 최고의 조화를 보여줄 수 있는 데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는 개별적으로 최고인 와인만을 혼합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다. 크룩이 소유한 포도밭 구획은 250여 개에 달하는데, 이들은 수확 초에 포도 몇 알을 맛보며 그해의 블렌딩을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확 이듬해 4월에서 5월이 되면 블렌딩 비율을 정하기 위해 시음을 하는데, 새로 생긴 250개의 와인에 기존의 150가지 리저브 와인이 모두 시음 된 후에 블렌딩 비율이 결정된다. 에릭 레벨을 포함한 테이스팅 위원회가 모두 테이스팅 노트를 쓰면 매년 5000여 개의 시음 노트가 생긴다고 한다. 이때를 크룩 하우스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크룩의 블렌딩 샴페인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는지 알 수 있다.

셋, 오랜 인내의 시간

▲ 지하 카브와 푸피트르. 크룩 샴페인은 오랜 시간 이곳에서 숙성을 거친다. <사진= 크룩>

블렌딩을 끝내고 병에 담긴 와인은 셀러에서 2차 발효와 숙성을 거친다. 그랑 퀴베의 경우 7년, 로제는 5년, 빈티지 및 단일 밭 샴페인은 최소 10년 숙성한다. 샹파뉴 지역에서 넌빈티지는 15개월, 빈티지는 3년이 법으로 정해진 최소 숙성 기간임을 생각하면 크룩의 샴페인들은 굉장히 오래 숙성함을 알 수 있다. 특히 매년 생산되는 그랑 퀴베가 다른 샴페인 하우스의 최고급 샴페인과 비슷하게, 또는 더 오랜 시간 병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 지하 카브의 한편에는 오래된 빈티지 샴페인 만을 모아두는 공간이 있었다. <사진= 크룩>

술라씨를 따라 들어간 지하 카브의 한편에는 아주 오래된 빈티지 샴페인들이 굳게 닫힌 철장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무려 1800년대 빈티지가 자리 잡고 있으니, 여기서 1980년대 샴페인은 어려 보이기까지 했다. 술라씨는 몇 년 전 자신의 부모님과 같은 빈티지인 1960년대 크룩 샴페인을 마셔봤더니, 부모님보다 훨씬 젊어서 놀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크룩 샴페인

그랑 퀴베(Grande Cuvée)
비록 넌빈티지로 매년 출시되나, 프리미엄 샴페인에 속한다. 빈티지가 다른 10개 이상의 와인이 혼합되어 무려 7년의 병 숙성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랑 퀴베에 사용된 와인 중 일부는 15년이 넘기도 했다. '그랑 퀴베'라는 같은 이름으로 생산하더라도 이들은 매년 생산하는 샴페인에 여섯 자리 일련번호(ID)를 부여함으로써 모든 그랑 퀴베 샴페인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 일련번호를 크룩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베이스 와인의 비율 및 특징과 어울리는 음식, 전문가의 평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랑 퀴베를 포함한 모든 샴페인은 일련번호를 부여받아 출시된다.

빈티지(Vintage)와 크룩 컬렉션(Krug Collection)
빈티지 샴페인은 조셉 크룩이 만든 두 번째 샴페인이다. 이 하우스의 빈티지 샴페인은 한 해에 수확한 포도 중 최고만을 골라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해당 빈티지의 특징이 잘 드러난 포도를 혼합하여 만들어진다. 평소보다 날씨가 따뜻했다면 농익은 과일 향을, 서늘했다면 신선함을 강조된다. 빈티지 샴페인부터는 최소 10년의 숙성 기간을 거친다. '크룩 컬렉션'은 빈티지 샴페인을 훨씬 오래 숙성한 후 내놓는 샴페인이다. 샴페인의 숙성 잠재력을 보고 데고르주망을 늦게 한 것이다. 크룩 컬렉션 중 1985년 빈티지는 30년 후인 2014년에 출시되었고, 1989년 빈티지는 22년 후인 2011년에 출시되었다.

로제(Rosé)
1970년대를 휩쓴 로제 와인의 유행에 맞추어, 크룩 가문의 5대손인 앙리(Henri), 레미(Rémi) 크룩이 1983년에 출시했다. 역시 샴페인 간의 서열을 부정하는 크룩의 철학을 따라 만들어졌으며, 로제는 약 5년간 셀러에 잠든 후 출시된다.

클로 뒤 메닐(Clos du Mesnil)
밭의 이름이자 샴페인 이름인 클로 뒤 메닐은 크룩이 설립한 지 한참 후인 1979년에 탄생했다. 클로 뒤 메닐은 르 메니 쉬 오제(Le Mesnil-sur-Oger)에 있는 밭인데, 이곳에서 자라는 샤르도네의 뛰어난 품질에 놀란 앙리, 레미 크룩은 단일밭 블랑드 블랑 샴페인을 생산하기로 했다. 최소 10년의 숙성을 거치며 1.84헥타르에서 평균 10,000병만 생산한다.

클로 당보네(Clos d’Ambonnay)
클로 당보네는 피노누아로 유명한 앙보네(Ambonnay)에 있는 밭이다. 크룩 가문이 1994년에 구매한 후, 1995년에 포도를 처음 수확했다. 첫 빈티지는 2007년이며, 이후로도 클로 당보네는 최소 10년간 숙성을 거친 후에 출시되었다. 이 샴페인은 클로 뒤 메닐보다 작은 0.68헥타르에서 약 3,500병에서 5,000병 정도를 생산한다. 그나마도 매년 생산되지 않으니, 이 희소성 때문에 클로 당보네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상승한다.

음악의 옷을 입은 샴페인, 크룩

▲ 음악과 함께 마셔본 크룩 샴페인 <사진= 김지선>

술라씨는 샴페인을 마실 때 음악과 함께 한다면 느끼는 맛이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얼마 전부터 크룩은 음식과 와인을 함께 내놓는 것처럼 음악과 샴페인의 페어링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음악과 함께 샴페인을 즐긴다면 아주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선곡된 음악들은 샴페인을 만들 때처럼 철저한 비교에 따른 게 아닌, 유명한 음악가가 크룩 샴페인을 마신 후 추천하는 방식으로 선택되었다. 그랑 퀴베는 베토벤의 'Piano Concerto No. 5 "Emperor"' 한 곡이 추천 음악이고, 빈티지가 있는 샴페인은 빈티지마다 추천곡이 다르다. 테이스팅 룸으로 돌아와 2004년과 2002년 빈티지 샴페인을 추천 음악과 함께 시음해봤다. 추천곡은 리앤 라 하바스(Lianne La Havas)의 '언스토퍼블(Unstoppable)'과 장 필립 콜라드(Jean Philippe Collard)가 연주한 '차이코프스키 3악장 교향곡 제6번 (Symphony No.6, Tchaikovsky's 3rd movement)'이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긴장된 마음이 풀리기는 했으나 이 음악 덕에 와인의 맛이 더 뛰어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진 못했다. 같은 마리아주를 만나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동이 크기가 다르듯이, 음악과 샴페인의 마리아주도 사람마다 온도 차가 있을 것이다.

크룩 하우스를 떠나며

음악과 샴페인의 연결처럼 샴페인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하는 크룩 하우스의 시도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선두의 위치에서도 끊임없이 변화와 발전을 추구해 왔기에 이들의 명성이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 이들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크룩의 끝나지 않는 인기는 여러 연주자가 모여 하나의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한 결과일 것이다.

소믈리에타임즈 김지선 칼럼니스트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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