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지자. 99%의 사람들은 와인을 어렵고, 과시하기 좋은 술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와인을 허세라고 생각하며, 소주는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야, 무슨 와인이야. 소주 마셔 소주” 라고 말하며 소맥 원샷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쩌다 와인이 이런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을까? 와인을 시작하며 가졌던 목표 중의 하나였던 와인의 대중화, 이것을 이루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와인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이번 글을 통해 와인이 이런 이미지를 가지게 된 원인 알아보려 한다. 그리고 과연 작금의 유리벽을 깨고 와인이 대중에게 서스름 없이 다가갈 수 있을지 풀어보겠다.

대중들이 와인을 어려워하고 허세라고 생각하는 이유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우선 인간의 과시욕이다. 인간은 그것이 돈이 되었든 지식이 되었든 외모가 되었든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을 때의 그 우월감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이 때, 이 우월적 위치가 정당한 노력의 대가라면 사람들은 칭찬을 하고 인정을 한다. 그러나 부실공사 위에서 소위 말하는 ‘척’ 하는 경우, 우리는 이를 허세라고 부른다. 지미 헨드릭스가 기타를 부시면 그것은 퍼포먼스고, 연예인이 기타를 부시면 그것은 허세다. 그런데 와인의 경우, 대부분 어깨 너머로 들은 이야기를 자신의 지식인양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상대방에게 자랑하곤 한다. 그렇게 허울 뿐인 포장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하고 이것이 쌓이고 쌓여 ‘와인은 허세’ 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잘못은 사람이 하고 욕은 와인이 먹게 된 것이다.

둘째, 가격과 품질의 불일치에서 오는 실망이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은 있을 것이다. 철수네 집의 술 선반에는 아버지의 선물로 들어온,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르겠는 프랑스 레드 와인이 있다. 어느 날 철수는 많은 기대를 안고 와인을 글래스에 따른다. 하지만 벽돌색의 이 음료는 시고 떫기만 하고 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와인은 비싸고 맛있는 술이라니깐 내 혀가 아직 고급이 아니겠거니 하고 이미 식초가 된 와인을 맛있다, 맛있다 세뇌시키며 한 병을 비웠다. 그 날 이후로 철수는 소주 가격의 열 배가 훌쩍 넘는 이 맛 없는 음료를 맛있다고 마시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철수는 오늘도 평소와 같이 항상 같은 맛을 보장하면서 가격이 싼 소주와 맥주를 마신다. 맛 없는 와인을 비싼 돈 주고 마시는 사람들을 마음 한 구석에서는 허세라고 생각하며.

▲ 토미네 잇세의 요리왕 비룡 뺨치는 판타지적인 와인 묘사 <사진=신의 물방울 13권>

셋째, 신의 물방울 만화책과 미디어에 노출된 과도한 이미지 메이킹이다. 신의 물방울은 2005년에 발간된 이 후 한국에 와인 광풍을 몰고 온 만화책이다. 하지만 요리왕 비룡을 연상시키는 과도한 맛 표현과, 디캔팅을 해야만 와인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이미지는 와인을 다가가기 어려운 술로 만들어버렸다. 마치 와인을 마시면 유려하게 향과 맛 표현을 해야만 할 것 같고, 와인 글래스가 없이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술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맥주를, 위스키를, 막걸리를, 칵테일을 마실 때에는 ‘딸기향이 난다’, ‘포도 향이 난다’, ‘고소한 향이 난다’ 이렇게 하나 하나 표현하지 않는다(소주는 향이 없다). 그저 편안하게 마주 앉은 친구와 그냥 마실 뿐이다. 유독 와인만 이렇다. 그냥 즐기면 되는 데 눈으로 아름다운 색을 감상하고, 향을 음미하고, 한 모금 입에 머금은 후 호로록 소리를 내며 마셔야 하는 와인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가? 신의 물방울이 크게 한 몫 했다고 본다. 미디어에 노출 된 와인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고급 레스토랑에는 은은한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고 이곳의 소믈리에들은 항상 정장 차림이다. 주인공은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지만 악역 재벌들은 호텔에서 와인을 마신다. 과도한 일반화라고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들이 와인을 허세라고, 부담스러운 술이라고 생각하게끔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어떻게 하면 얇게, 더 나아가서는 허물 수 있을까. 첫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된다. 쉽지만 가장 어렵다.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한 음악인 돈 스파이크는 거대한 크기의 스테이크를 손으로 들고 뜯어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닭다리도 손으로 뜯고, 갈비도 손으로 뜯느데, 왜 스테이크는 썰어먹나?”

이는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 더 편한 방법일 수 있으나, 반드시 도구를 이용해야 하는 것은 아님을 말해준다. 와인은 어렵고 부담스러운 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와인은 수 없이 다양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고 이 만원, 삼 만원 대의 가격에서 충분히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는 술이라는 것이다. 대형 마트와 백화점에서 담당 직원의 추천으로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다. 우리는 소주와 맥주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같혀있다. 한 발 자국만 선을 넘으면, 수 없이 많은 향과 맛과 색의 경험을 즐길 수 있음에도 우리는 잘 모르니까, 어려우니까, 허세 같으니까 어제와 똑같이 소주를 마신다. 한 번 사는 인생, 무한히 반복되는 이 지루한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사고의 전환 한번이면 충분한다.

둘째, 업계에서 전문인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최전선에서 소비자를 만나는 레스토랑 홀 직원, 마트와 백화적의 와인샵 직원들의 교육에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다. 아르바이트가 음식과 와인에 대해서 무슨 열정을 가지고 소개하겠는가. 최저임금을 받고 주말에도 일하는 직원이 무슨 청사진을 가지고 일에 임하겠는가. 정직원을 뽑고 교육을 시키고, 임금을 올려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차마 입에 담기 부끄러운 높은 이직률을 낮출 수 있고 제대로 된 서비스 제공을 통해 손님에게 올바른 지식과 경험을 전달 할 수 있다. 2호점, 3호점을 내는 것은 일자리 창출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 일자리가 저질이라면 이는 경영 용어로 ‘효율적인 비효과’ 와 같다고 본다. 사업의 확장에 들어갈 자본은 직원의 임금 인상과 교육에 우선적으로 투자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선례를 보고 새로운 젊은 피가 업계로 유입되고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대중들에게 더욱 다양하고 참신한 경험을 전달해 줄 수 있다. 동시에 풍부한 지식으로 이 복잡한 와인을 쉽게 전달해 줄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와인은 더 이상 허세의 아이콘이 아니라 풍부한 향과 맛을 지닌 술의 한 종류로 받아 들여지게 될 것이다.

소믈리에의 역할도 중요하다. 와인의 대중화를 꿈꾼다면, 우선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대학생은 법적으로 성인이지만 술에 대한 경험이 적고 아직 편견이 없는 백지와 같은 존재이다. 대학생이 무슨 돈으로 와인을 마실 수 있는가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와인을 마시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니다. 와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기 전에 그저 와인을 제대로 소개하는 것이다. 이는 소믈리에들이 개인 시간을 조금만 투자하고 조금만 돈을 투자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부분이다. 1인 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유투브를 통해서, 팟 캐스트를 통해서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영상 촬영이 부담스럽다면 대학에 직접 방문해서 짧은 강연을 할 수도 있다. 소믈리에의 전문 지식과 전 세계 와이너리를 다녀온 풍부한 경험이 젊은 세대에게 직접 전달된다면, 신의 물방울과 미디어로 인해 만들어진 허황된 껍질을 벗겨낼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소믈리에타임즈 최태현 칼럼니스트 cth9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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