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샹파뉴는 비가 오고도 바로 하늘이 맑게 갠다. <사진= 김지선>

샴페인은 샴페인 내에서만 생산된다. 무슨 말이냐고? 샴페인이라 불리는 와인은 '샴페인(불어로 샹파뉴)'이라는 지역에서만 생산된다는 뜻이다. 와인에서는 이렇게 지명과 와인 이름이 같은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이탈리아의 아스티나 바롤로, 포르투갈의 마데이라 등도 같은 방식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그러나 샴페인 지역에서 생산되었다 해도 모든 와인이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받진 못한다. 샴페인 AOC(원산지 명칭 통제) 지역에서 샴페인을 만드는 방식에 따라 만들어야만 '샴페인'이라는 단어를 와인병에 쓸 수 있다.

샴페인 AOC가 법으로 규정되기 전에는 우후죽순으로 샴페인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그러다 1927년에 샴페인 AOC 지역이 법으로 규정되고 나서야 가짜 샴페인들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2011년에 한·EU FTA가 체결되면서 샴페인 명칭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스파클링이 들어간 음료수 또는 술에 샴페인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이다.

▲ 샹파뉴로 가는길 <사진= 김지선>

법으로 규정된 AOC는 오브(Aube), 코트 데 블랑(Côte des Blancs), 코트 드 세잔(Côte de Sézanne), 몽타뉴 드 랭스(Montagne de Reims), 발레 드 라 마른(Vallée de la Marne) 총 다섯 곳이었고,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이 지명은 와인 생산지로만 쓰이는 이름이기 때문에 실제로 국도를 달릴 때 표지판에서는 볼 수 없다. 또 '샴페인' 자체도 AOC 명칭이며, 이 생산지 대부분은 샴페인-아르덴(Champagne-Ardenne)이라는 행정 지역에 속해 있다. 샴페인 아르덴은 아르덴(Ardenne), 마른(Marne), 오브(Aube), 오-마른(Haute-Marne)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절대다수의 AOC가 마른에 있으며, 그랑 크뤼와 프리미에 크뤼는 전부 마른 내에서 생산된다.

타지의 스파클링 와인 생산자들이 그토록 빌리고 싶어했던 이름, 샴페인. 샴페인을 샴페인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를 꼽으라면 여러 개가 떠오르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만 꼽는다면 단 두가지다. 하나는 서늘한 기후, 다른 하나는 백악질 토양이다.

샴페인의 서늘한 기후

▲ 샹파뉴의 날씨는 보통 서늘하고, 비가 자주 온다. <사진= 김지선>

서늘한 곳에서 포도는 신맛을 간직하면서도 달게 익을 수 있다. 높지 않은 기온 탓에 포도가 산미를 잃지 않으면서 천천히 당분을 만들기 때문이다. 풍부한 당도와 산도는 와인에 복합적인 풍미를 불러일으킨다. 샴페인은 위도 49.31도에 위치하는데, 와인 생산이 가능한 위도가 30도에서 50도 사이임을 생각하면 위도상으로 가장 서늘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자란 포도들을 스틸 와인으로 만들기에는 산도가 너무 높지만, 샴페인에서는 신선함을 가미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또 추운 날씨는 나무뿌리가 땅으로 깊게 파고들어 영양분과 물, 미네랄을 흡수하게 한다. 최근에는 지구의 평균 온도가 높아지는 까닭에 샴페인의 평균 산도가 낮아지고, 위도 50도를 넘기는 영국에서 샴페인을 따라잡는 스파클링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몇십 년, 몇백 년 후에는 지금과 사뭇 다른 샴페인이 생산될 수도 있겠다.

샴페인만의 백악질 토양

▲ 샹파뉴에는 백악질이 주된 토양으로 있다. <사진= 김지선>

백악질(chalk) 토양도 샴페인의 독자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 독특한 토양 덕에, 비슷하게 서늘한 다른 지역과는 다른 샴페인만의 매력이 생겨난다. 약 7천만 년 전에는 유럽 대부분이 바다에 잠겨 있었는데, 이때부터 조류와 바다 생물의 잔해가 서서히 퇴적되며 백악질 토양이 만들어졌다. 4천만 년이 지나고는 물에 잠겨있던 지역이 융기하며 땅이 생기고, 다시 천만 년이 지나 지형이 변하며 샴페인 지역에 포도를 재배하기 가장 좋은 언덕이 형성되었다. 백악질은 석회질의 한 종류인데, 석회질은 배수가 좋아 물이 순환하기 좋다. 물을 머금는 능력 또한 뛰어나서 비가 적게 오는 해에는 뿌리가 깊이 들어가 수분을 보충할 수 있다. 또 석회질에 포함된 탄산칼슘이 흙속의 이산화탄소와 결합하며 중탄산염을 만드는데, 이는 포도나무가 영양분을 흡수하기 가장 좋은 pH 농도를 유지해 준다. 이것이 파삭파삭하여 척박하기 그지없는 백악질 토양에서 포도나무가 자랄 수 있는 이유다. 최고의 샴페인은 백악질 토양 중에서도 미네랄이 가득한 벨렘나이트 백악질(belemnit chalk)에서 주로 생산된다. 이 특이한 토양의 이름은 제삼기(신생대 전반기, 약 6500만 년 전부터 200만 년 전)에 활동하며 많은 퇴적물을 남긴 오징어류 벨렘나이트에서 차용되었다. 벨렘나이트 백악질은 코트 데 블랑을 포함한 그랑 크뤼 지역에 넓게 퍼져있다. 반면 샴페인 중심지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남쪽의 오브 지역에는 백악질보다 훨씬 오래전에 형성된 키메르지안(Kimmeridgian) 점토가 많아 그랑 크뤼와 프리미에 크뤼 밭이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키메르지안 토양의 독특한 미네랄리티를 살리려는 몇몇 샴페인 하우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지선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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