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를 떠나, 샹파뉴에서 와인 여행을 시작한다. <사진= 김지선>

"빨리, 빨리, 빨리!"

이번 여행만큼은 여유롭게 다니리라 굳게 마음먹었으나, 프랑스에서 눈을 뜨는 아침마다 나는 이 말을 되뇌어야 했다. 와인의 본고장에서 느긋함을 만끽하려던 욕심이 과했구나. 약속 시각에 늦을세라 후다닥 겉옷을 걸치고 거리로 나왔다.

프랑스를 들르는 여행자는 다양한 이유로 이곳을 방문한다. 그들은 각자 미술, 요리, 디저트, 쇼핑, 아니면 센 강과 에펠탑이 주는 낭만을 느끼러 온다. 많은 것의 본고장인 이 문화 강국에서 내게는 와인이 가장 큰 방문 목적이다. 그리고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랑스는 꼭 들러보고 싶은, 들러야 할 성지이기도 하다.

▲ 파리의 작은 레스토랑에도 맛있는 와인이 넘쳐난다. <사진= 김지선>

파리에 있는 와인바와 와인샵은 서울에 있는 커피 전문점만큼 많다. 심지어 골목의 작은 레스토랑에도 어김없이 두꺼운 와인 리스트가 준비되어 있다. 전국에서 와인이 생산되니, 포도 한 알 재배되지 않는 파리에서도 와인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먹고 떠난 이번 여행에는 파리를 벗어나 보기로 했다. 포도와 포도밭, 커다란 오크통,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프랑스 와인 산지 전역을 돌아보고 싶었지만, 8일이라는 짧은 기간 대부분을 차에서 보내지 않으려면 한 곳을 선택하는 게 현명했다. 3초 정도 고민했을까, 나는 오로지 개인적인 취향에 이끌려 주저없이 샹파뉴를 선택했다.

여행 첫날, 파리에서 샹파뉴로. 자크송으로.

안도감. 자크송(Jacquesson) 샴페인 하우스에 도착하여 느낀 첫인상이다. 파리에서 샹파뉴까지 가는 길을 헤매느라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었는데도, 자크송 직원분들은 당황한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 겨우 찾아낸 자크송 샴페인 하우스 <사진= 김지선>

자크송 하우스가 있는 마을 디지(Dizy)는 샹파뉴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에페르네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큰 글씨로 자크송이라고 쓰여 있는 벽 옆의 정문으로 들어가면 작은 건물 2개와 그 뒤로 펼쳐진 작은 포도밭을 만나게 된다. 11월 초인데도 바람이 차가워서 리셉션에 들어가 건물 안을 둘러보았다. 혹시라도 너무 늦어 투어를 못할까봐 안절부절못하던 차, 때마침 하우스를 소개해 줄 산드린(Sandrine)씨가 엄마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와 함께 샴페인 하우스 뒤쪽의 포도밭으로 나가 투어를 시작했다.

오랜 방황 끝에 주인을 찾은 자크송

산드린씨는 1헥타르가 조금 안 되는 밭 앞에서 자크송 하우스의 역사부터 짚어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크송은 비교적 최근에야 명성을 되찾은 곳이다. 이 하우스는 1798년 매미(Memmie) 자크송이 설립했다. 그의 뒤를 이어 아들 아돌프(Adolphe) 자크송이 하우스를 운영했는데, 그는 최초로 철로 만든 뮤즐렛을 발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두 자크송 부자의 노력으로 하우스는 순탄하게 운영되는 듯했다. 그러나 아돌프의 두 아들이 모두 스무살 쯤에 세상을 떠나며 자크송은 역경을 맞게 된다. 

▲ 자크송은 과거에 랭스에서 운영되기도 했다. <사진= 김지선>

이후 상속자가 없어 하우스의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다가 1925년에 들어 자크송은 유명 와인 브로커인 레옹 드 테시니(Léon de Tassigny)의 손에 들어가 랭스에 본사가 세워졌다. 그리고 그는 50년 후에 자크송을 시케 가문에 팔았다. 하우스를 산 장 시케(Jean Chiquet)는 현재 자크송 와이너리가 있는 디지로 본사를 옮겼고, 그의 두 아들 장-에르베(Jean-Hervé) 와 로랑(Laurent) 형제가 1988년부터 가업을 잇기 시작했다. 장 시케는 매년 같은 특징을 보여주는 샴페인을 만들고자 했으나, 장-에르베와 로랑은 그러한 방식에서 벗어나려 했다. 같은 품질의 와인을 위해 포도밭에 인위적인 화학 물질을 쓰는 대신, 유기농 재배를 통해 매년 변화무쌍한 자연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길을 추구했다. 2017년 지금도 이 형제는 같은 철학으로 자크송을 이끌고 있다.

포도밭의 농부가 가장 중요합니다

▲ 마을별 토양 단면을 들고 있는 자크송 사람들. 이들은 샴페인에 테루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고자 한다. <사진= 김지선>

자크송 하우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포도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하나의 샴페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작업은 다양하다. 포도를 재배하는 것부터 포도즙을 발효하고, 와인을 숙성하고, 병입하는 일 등 대략 세어보아도 얼마나 많은 노동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높은 품질의 와인을 추구할수록 일하는 과정과 그에 필요한 인력은 더욱 많아진다. 이 중에서도 자크송은 샴페인의 품질이 포도밭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자크송의 철학과 연관 지어 생각하면, 이들의 샴페인은 매해 주어진 자연의 모습을 최대한으로 담아낸 포도의 결과물인 것이다.

▲ 일반 샴페인 하우스와 달리 자크송은 오직 2개의 마디만 남겨놓고 가지치기한다. <사진= 김지선>

많은 샴페인 생산자는 매년 열매를 맺은 가지를 잘라내고 새로 싹트는 가지를 기른다. 그러나 자크송 하우스는 열매를 맺었던 가지를 다시 사용한다. 갑자기 산드린씨가 아래로 웅크리고 앉아 포도나무에 있는 마디를 세어주었다. 일반적으로 피노 누아는 5마디 정도를 남겨두고 가지를 자르는데, 자크송은 단 2개의 마디만을 남기도 다 자른다고 한다. 잎이 나는 부분이 줄어들어, 햇빛을 덜 가리는 것이다. 그 덕에 열매는 햇빛을 더 많이 받고 열매 사이에 공기가 잘 통하게 된다. 

▲ 자크송 본사 뒤편에는 1헥타르의 포도밭이 텃밭처럼 가꿔지고 있었다. <사진= 김지선>

현재 자크송은 그랑 크뤼와 프리미에 크뤼 밭에서만 포도를 생산한다. 이들이 소유한 그랑 크뤼 밭은 아이(Aÿ), 아비즈(Avize), 오리(Oiry) 마을에 있으며, 프리미에 크뤼는 디지(Dizy)와 오빌레(Hautvillers) 마을에 있다. 다른 토양과 달리 아비즈와 오리에는 흰색의 백악질 토양이 표면에 드러나 있다. 소유밭 전체를 합하면 총 36헥타르 정도 되는데, 그중 50%는 샤르도네, 30%는 피노 누아, 20%는 피노 뫼니에를 재배하고 있다. 자크송 샴페인을 만드는 포도의 80%는 자크송이 직접 생산한 것이고, 나머지 20%는 같은 크뤼에 속한 인근 포도밭에서 구매한다. 2000년대 초부터는 구매한 포도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꼭 옆에 있는 자크송 와이너리에서 압착한다고 한다. 연간 샴페인 생산량은 매년 작황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약 25만 병이다. 장 시케가 33헥타르에서 35만 병을 생산하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 36헥타르를 소유한 장과 로랑이 얼마나 포도를 섬세하게 선별하여 와인을 만드는지 알 수 있다.

▲ 김지선 칼럼니스트

김지선 칼럼니스트는 영국 와인 전문가 교육 WSET Advanced 과정을 수료후 WSET Diploma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마셔도 끝이 없는 와인의 세계에 빠져 와인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으며,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아는 날이 오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지선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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