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성환 밥소믈리에

‘서툰 목수가 연장 나무란다’는 말이 있듯이 맛있는 밥이 지어지지 않는다고 밥솥 탓을 할 수 없다. 정확한 밥 짓기 원리와 밥솥의 특성을 이해하면 어떤 솥이든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다. 그런데 밥 짓기의 도구인 솥 종류가 너무나 많다.

어느 가정이나 다 있는 IH 전기압력밥솥은 손쉽게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직접 불에 솥을 올려 밥을 지어보면 그 밥맛은 전기압력밥솥 보다 훨씬 더 맛있다. 이번에는 다양한 밥 짓는 솥(취반기)에 대해 알아보자.  

1) 식품제조공장

요즘 편의점 도시락 품질이 정말 좋아졌다. 유명 쉐프나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우며 엄청나게 성장했다. 오죽하면 도시락의 열풍에 ‘혜자스럽다’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럼 우리가 먹는 도시락이나 냉동 볶음밥 등 식품 회사에서는 어디에 밥을 지을까?

열원은 직화, 전기, 스팀을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생산방식에 따라 연속식이거나 배치 식(Batch)이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취반기 종류는 다음과 같다

① 연속 가마솥 방식

▲ 아이호 연속식 취반설비 <사진=AIHO>

아래 사진처럼 사각형의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합금으로 제작된 솥을 터널형의 긴 직화오븐설비에 넣고 밥을 짓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2층이나 3층 구조로 만들고, 취반 기기의 표면을 완전히 둘러싸 효율을 높인 형태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우리가 보았던 무쇠 가마솥과는 다르지만 한 식품회사에서 이걸 가마솥 방식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가마솥 방식이라 광고하는 것들은 다 이런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기에서 발열체가 다르듯 가스에서는 버너의 종류가 다르다. 메탈니트버너(MFB), 스테인리스 버너(SB) 등 다양한 버너가 있다.

쌀 세척, 침지, 계량, 밥솥(가마)이송, 밥 짓기(취반), 세척, 밥솥 투입 등 전부 전자동으로 이루어 진다.

② 개별 가마솥 방식

▲ 개별가마식 취반기 <사진=KYOHO>

연속식 생산 방식은 잡곡밥이나 요리 밥 등 다양한 종류의 밥 생산이 어렵다. 연속식에 전자동설비다 보니 한번 기계가 움직이면 손댈 일이 없다. 생산 효율을 위해서도 다양한 종류의 밥 짓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밥 짓기가 가능한 설비가 주목받고 있다. 개별 가마솥 방식은 로봇 팔이 하나하나 솥을 들어 화구로 옮겨 밥을 하는 배치 식이라 다양한 상품의 밥 짓기가 가능하다.

③ 연속 스팀 컨베어 방식

▲ 연속 스팀식 취반기 <사진=ACE>

열원이 직화냐 스팀이냐 각각 장단점이 있다. 다시 말해 어떤 밥 상품을 할 것인지에 따라 적합한 방식이 다르다. 고온의 스팀으로 밥을 짓기에 위생적인 측면에서 품질 안전성이 높은 밥을 지을 수 있다. 가마솥을 매번 세척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밥이 눌어붙지 않으며, 가스식보다 수율도 좋다. 고온 고압의 스팀을 직접 분사하기에 쌀의 알파화가 더 잘 이루어진다. 최근에는 직화로 밥을 지은 후 한 번 더 스팀공정을 거치는 복합식 취반설비도 있다.

이 외 간단히 전자레인지에서 데워 먹을 수 있는 ‘햇반’과 같은 즉석밥을 생산하는 ‘개별식 무균포장 취반기’도 있지만 이건 또 다른 이야기이기에 다음번에 하도록 하겠다.

2) 식당

작은 식당에서는 보통 35인용 또는 50인용 전기밥솥을 많이 사용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자제품 회사의 제품이다. 조금 규모가 큰 곳의 경우 3단식 자동 가스 취반기를 많이 사용한다. 열원은 가스, 전기 다 있긴 하지만 가스 타입이 좀 더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솥밥 전문점이나 크게 한 상 차려 나오는 한정식당에서 많이 사용하는 가마솥 밥 기기 등이 있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일본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일본의 유명 프렌차이드 덮밥 전문점을 가보면 자동으로 세척, 취반이 다 이루어지는 전자동 취반기를 사용하는 곳이 많다. 소수의 인원만으로 주방에서 조리해야 하기에 모든 메뉴의 매뉴얼화가 상당히 잘 이루어져 있다. 어느 점포나 똑같은 밥 품질을 구현하기 위해 상당 부분 자동화가 이루어져 있고, 다양한 고객의 니즈에 맞춰 밥을 담아야 하기에 밥그릇에 밥을 담아주는 기계도 있다.

▲ 다양한 식당용 밥솥 <사진= 각 회사 홈페이지>

3) 가정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서는 어떤 밥솥으로 지어야 하나요?’다. 다들 무쇠 가마솥 밥이 제일 맛있다고 하고, 판매하는 모든 전기밥솥이 가마솥 밥맛을 재현했다고 광고한다.

정말 무쇠 가마솥 밥맛이 최고일까?

한국 최고(最古)의 조리서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에 이런 글이 있다. ‘밥 짓는 그릇은 곱돌솥이 으뜸이고, 오지 탕관이 그 다음이요, 무쇠솥이 셋째요, 동노구가 하등이라’ 이걸 쉽게 말하면 첫 번째가 돌 솥, 두 번째가 뚝배기와 같이 구워서 만든 내열자기 솥, 세 번째가 무쇠 솥, 네 번째가 구리 솥이 된다.

이 솥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일단 무겁다. 밥맛의 순서를 보면 열전도율과 관계가 있다. 열전도율이 높으면 그만큼 빨리 높은 화력에서 밥을 지을 수 있지만, 뜸 들이기 과정에서 금방 온도가 떨어져 버린다. 그렇다 보니 오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솥, 즉 열전도율이 낮은 솥일수록 밥맛이 좋다는 거다.

필자 역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내용과 비슷한 생각이긴 하지만 조금은 다르다.

요즘 가정의 현실에 맞게 사용 편리성, 밥맛 등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우선 사용 편리성으로 볼 때는 역시 IH 전기압력밥솥이다.

가격은 10만 원대부터 최고급 모델은 70만 원을 호가한다. 최근에는 2기압까지 내부 기압을 올려 밥을 짓고, 스마트 폰에서 제어가 가능한 스마트 밥솥도 있다. 가까운 일본 역시 IH 압력방식은 기본에 대형취반설비에서 하는 방식을 적용해 220℃ 고온 스팀을 동시에 분사하는 스팀 IH 방식, 진공으로 쌀이 빨리 물을 머금게 해주는 진공 IH 방식, 스팀배출구를 없애 어린이 화상 안전사고 및 냄새가 나는 것을 방지한 스팀레스 IH, 초음파를 이용한 빨리 쌀 침지가 되도록 한 초음파 방식등 다양한 신기술을 접목한 가정용 밥솥이 있다.

이제 가정에 있는 냄비나 솥을 살펴보자.

결혼 살림으로 장만한 유럽의 명품 솥이 하나씩은 집에 있을 것이다. 실리트, 휘슬러, 르쿠르제, 스타우브, WMF, AMC등 브랜드도 다양하다. 그런데 다들 너무나 무겁다. 무슨 어마어마한 요리를 할 때,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 명절 때나 볼 수 있지 그 외는 선반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솥이다. 필자 역시 한 세트 있지만 무거워서 집사람이 사용하기를 꺼려한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IH 압력솥이나 명품솥도 좋지만, 밥맛 하나만으로 볼 때 필자는 뚝배기와 같은 내열자기 솥이 최고라 생각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겠다.

다시 ‘조선무쌍조리제법’에 나온 이야기를 보자.

먼저 돌솥이다. 한정식당처럼 한 번에 1~2인 정도의 밥을 짓는다고 해도 너무 무거워 들고 다니는 것도 설거지도 힘들다.

돌솥은 불을 끄고 난 후, 잠열이 오랜 시간 지속되기에 자칫 밥이 아니라 누룽지가 되어버리기 쉽다. 매번 누룽지와 숭늉을 즐기겠다면 돌솥이 나쁘지는 않다.

다음은 무쇠 솥, 요즘 가정용 무쇠 솥들이 나오긴 하는데 실제로는 알루미늄 또는 스테인리스에 테프론 코팅을 한 제품들이다. 그렇다 보니 두께가 얇아서 뜸 들일 때도 약한 불로 계속 불 조절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누룽지 만들기에는 딱 좋지만 가정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솥이다.

구리 솥은 고가의 솥이다. 일단 멋있어 보이는데 딱 거기까지다. 프렌치 레스토랑에서도 소스를 만들 때 사용하긴 하는 게 구리냄비다. 하지만 대부분 레스토랑이 디스플레이용으로 벽에 걸어둔다. 왜냐고? 구리는 열을 받으면 색상이 검게 변하기에 사용하고 나서 설거지 등의 취급이 어렵기 때문이다.
 

▲ 내열냄비 <사진=Acomeya>

그럼, 이제 내화성 점토로 구워 만든 뚝배기와 같은 자기 솥이 있는데. 열전도율이 느리다 보니 열이 오래간다. 보통 찌개들을 여기 많이 끓여 먹는데, 딱 밥하기 좋은 온도까지 열이 올라가고, 딱 뜸 들이기 알맞게 열이 유지된다. 무게도 돌솥에 비하면 가볍고 디자인도 세련되다. 가격 역시 IH 전기압력밥솥과 비교하면 매우 저렴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솥을 제일 좋아한다. 요즘은 밥 전용으로 뚜껑이 2중으로 되어있는 제품도 있다. 그리고 밥 짓기도 쉽다. 불 조절이 쉬운 솥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기에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곳의 의견을 들어보자.

일본에 도쿄 가스회사라고 있다. 우리로 치면 한국가스공사 같은 곳이다. 이 가스회사에서 밥맛이 제일 솥으로 내열자기 솥을 추천했다. 

도쿄 가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금속성 재질의 솥은 금방 가열되고 식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열원이 되는 열을 그때마다 제어해야 한다. 이에 비에 내화성 점토로 만든 내열자기 솥은 가열이 어려운 대신 잘 식지 않는 것이 특징. 강한 불에 올려도 바로 가열되지 않고 천천히 가열되기에 처음 밥을 지을 때 온도 상승이 천천히 이루어지고, 일단 가열되고 나면 장시간 그 열을 유지하기에 솥 안 내부 온도도 균일하다. 밥 짓기에 최적의 솥이다. 아래는 금속 재질의 솥과 내열자기 솥의 온도를 열화상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금속성 재질의 솥에 비해 내열자기 솥 내부의 온도는 균일하고 더 높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밥솥 온도 비교 <자료=Tokyo gas>

그리고 최근 일본에 코끼리 밥솥과 업계 1,2위를 다투는 타이거 밥솥에서 IH 전기압력 밥솥의 내솥을 내열자기솥으로 만든 최고급 모델을 출시했다.

무슨 특수한 코팅을 했다. 숯을 넣었다. 동으로 만들었다. 다 내솥의 기능적 특징에 대해 광고를 하지만, 결국 전기밥솥 회사도 내열자기 솥 밥맛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고 전기밥솥에 적용했다는 것이다.

지난 회에 이야기했듯 정확하게 솥의 특성, 조리 알고리즘만 그리고 그 솥과 어울리는 쌀을 알고 있다면 어떤 솥이든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다. 그걸 다 잘 알 수 없다. 요리에 따라 어울리는 쌀이 있고, 밥 종류에 따라 어울리는 솥이 다를 뿐이다.

오늘은 전기밥솥이 아닌 그냥 솥으로 밥을 지어보면 어떨까?

소믈리에타임즈 박성환밥소믈리에 honeyric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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