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환 밥소믈리에

[칼럼니스트 박성환] 맛있는 쌀의 기준에 관해 이야기할 때 맨 처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완전립 비율이 높을 것, 수분함량은 15~16%, 아밀로스 함량과 단백질 함량이 낮은 쌀이 맛있는 쌀이라 한다. 이 외에 여러 가지 요소가 더 있지만 제일 먼저 손꼽는 요소는 이 정도다.

양곡표시 가이드에도 단백질 함량에 대해 표기하게 되어 있다. 단백질 함량에 따라 등급을 수, 우, 미로 나눈다. 생산자는 단백질 함량이 높아지지 않도록 질소질 비료의 사용에 주의한다. 질소질 비료를 많이 사용하면 단백질 함량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맛있는 밥에 관해 이야기하면 맨 처음 이런 표현을 한다. 색이 하얗고 광택이 있으며 혀에 닿는 촉감은 부드럽고 적당한 찰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필자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쉽게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건 ‘개나 줘버려’라며 상식을 뒤엎는 특이한 쌀이 하나 있다.

그게 바로 ‘신동진’이다.
 

▲ 신동진...거칠고 투박한 ‘마초(Macho)’같은 쌀 <사진=국립종자원>

밥을 지어 먹어보면 찰지지도 촉촉하지도 부드럽지도 않다.

이런 특이한 신동진을 이해하려면, 먼저 쌀의 주요 특성에 관해 알 필요가 있다. 

* 숙기 – 중만생종
* 현미 천립중(g) – 27.7g (쌀알이 큰고 긴 중대립종)
* 아밀로스 함량(%) – 18.6%
* 단백질 함량(%) – 7.6%
* 재배지 – 호남 내륙 평야
* 기타 – 동진벼와 비교해 도정율은 높고, 백미 완전립율은 낮다.
* 개발 스토리 – 1992년 호남농업연구소에서 개발 시작. 화영벼와 중대립종벼의 인공교배로 세대를 진전시킨 품종이다. 익산 438호로 계통명이 부여되었고 1999년부터 농작품 직무육성 신품종 선정심의에서 ‘신동진’이라 명명하였다.

위 자료에서 아밀로스와 단백질 함량을 보면 함량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숫자 만으로만 보면 ‘신동진’은 절대 밥맛이 좋은 쌀이 아니다. 밥맛이 좋다고 하는 품종들은 거의 다 단백질 함량이 6.0% 정도다. 그런데 신동진은 7.6%이니 꽤 높다. 그래서 등급도 ‘수’가 아닌 ‘우’다.

태어난 태생부터 맛있는 쌀이 될 수 없는 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많이 재배된다. 이런 밥맛도 없는 쌀이 6번째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단백질 함량이 낮을수록 맛있는 쌀이라고 한다. 하지만 100%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라 한다. 이것이 다 ‘신동진’ 덕택이다. 태생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은 쌀이다.

신동진으로 지은 밥을 보면 외관부터 다르다. 일단 쌀알이 크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일반품종 중 제일 크다. 밥을 지어 먹어보면 전혀 찰지지 않다. 약간 푸석거리며 단단한 느낌이다.

그 결과 ‘신동진’은 볶음밥이나 리소토에 어울리는 쌀이 되었다. 잘한다는 중식당을 가보면 다 신동진으로 볶음밥, 덮밥을 만든다. 중식당에서 흰밥만 따로 달라고 해서 먹어본 적이 있다면 밥이 찰지지 않고 맛이 별로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신동진으로 지은 밥으로 강한 불로 조리하는 볶음밥이나, 뜨거운 소스와 같이 먹는 덮밥에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 중식당뿐만 아니라 마트에서 판매하는 냉동 볶음밥도 ‘신동진’을 사용하는 회사가 많다.

쌀알이 크기에 신동진을 선호하는 초밥집도 있다.

찰지고 부드러운 ‘고시히카리’ 같은 품종으로는 질어서 맛있는 볶음밥을 만들기 어렵다.
 

▲ 청량리 냄비밥 식당 모습 <사진=박성환>

필자가 자문을 담당했던 ‘수요 미식회 44회’에서 청량리에서 냄비 밥으로 유명한 식당이 하나 나온다. 이곳의 밥을 먹고 한 패널은 감동해서 울고, 다른 한 명은 쌀이 좋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이곳은 신동진을 사용하기에 그런 것이다.

강력한 화력을 사용한 냄비 밥을 한다.
 

▲ 청량리 냄비밥 식당 모습 <사진=박성환>

거칠고 마초(Macho) 같은 ‘신동진’ 이기에 어울리는 밥 짓는 방법이다. 쌀은 찰지지 않지만 강하고 거칠게 구수한 밥을 짓는다. 투박한 밥이기에 투박하며 크리미한 청국장과 조화롭게 맛이 어울린다. 대부분 고객이 청국장을 말아서 청국장 비빔밥으로 해 먹는다. 그때 이 신동진 쌀로 지은 밥이기에 진가를 발휘한다. 이 식당의 사장도 고객도 쌀의 푸드 페어링(Food Pairing)이란 것이 뭔지도 모르지만 오랜 시간 경험으로 어떻게 먹는 것이 제일 맛있는지 정확히 알고 그렇게 페어링 해서 먹는다.

참고로 푸드페어링 (Food Pairing)이란? 간단히 설명하면 음식 간의 궁합을 맞추는 것을 말한다. 레드 와인에 스테이크, 화이트 와인에는 해산물처럼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이 와인과 음식의 페이링이다. 이 외에도 물, 맥주와 음식과의 페어링, 커피, 차와 디저트의 페어링이 있으며 샘표에서는 ‘장 페어링 맵’을 만들어 발표했다.

소믈리에타임즈 박성환밥소믈리에 honeyric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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