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호랑이 임인년(壬寅年)이 시작 된지도 이제 한 달이 되어간다. 양력(태양력)을 사용하는 지금이야 1월1일이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다. 하지만 양력이 사용되기 전 1896년까지는 우리에게 새해는 음력 1월1일 이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민족문화와 겨레의 얼을 말살하는 정책으로 음력 설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조선의 음력 명절을 모조리 부정하기 위해 근대화라는 명분을 통해 일본의 양력 명절만을 강요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사람들의 의식 속에 뿌리내린 음력 1월1일(설날)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해방 이후에도 음력 설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국민들은 음력 1월 1일을 휴일로 지정하지 않았어도 여전히 음력 설을 쇠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로 제정되었고 이후 1989년 ‘설날’이라는 명칭으로 명문화된 후 휴일도 3일로 개정되었다. 1998년에는 양력설을 ‘설’이 아닌 ‘1월1일’로 규정하고 공휴일로 하루로 축소되었다.

▲ 서울의 설 귀성객 (1977) @국가기록원

이처럼 음력 설은 오랜 기간 우리의 역사와 함께 이어온 풍습이다. 음력 설날은 새해 첫날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설날에는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고 밝아오는 한 해를 향해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의미를 부여했다. 따라서 평소에 먹지 않던 특별한 음식도 준비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떡국과 도소주(屠蘇酒)이다. 떡국은 흰 가래떡을 썰어서 맑은 장국에 넣고 끓인 음식으로 설날 아침에 조상 제사의 메(밥)를 대신해서 내놓았다. 밥을 떡국이 대신했다면 음료는 도소주가 대신했다. 도소주에서 도소라는 말은 소(蘇)라고 하는 악귀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후한(後漢) 때의 사람인 화타(華陀)가 설날에 마시면 부정한 기(氣)를 피할 수 있다고 하여 만든 술이다.

적출, 계심, 방풍, 도라지, 대황, 산초, 발계, 오두, 팥을 베주머니에 넣어서 섣달 그믐날 밤 우물 밑바닥에 걸어두었다가 설날에 꺼내어 술 속에 넣고 달인다. 식구 모두가 동쪽을 향해 앉아 어린아이부터 시작하여 연장자의 순으로 마신다. 찌꺼기는 우물에 넣어두고 해마다 이 우물을 마시면 살아 있는 동안 무병장수한다고 믿었다.

지금은 설에 도소주를 마시는 풍습은 사라졌다. 오히려 제사가 끝난 다음 ‘음복’이라 하여 제사에 쓴 술이나 다른 음식을 그 자리에서 나누어 먹는다. 이렇게 돌아가신 조상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훌륭한 조상의 덕을 이어받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차례에 사용되는 술들을 면면히 살펴보면 아쉬움이 많다.

▲ 도소주 제품과 한약재 @배상면주가(좌), 발효곳간담(우)

지금 제사에 많이 사용되는 술로는 청주가 있다. 주세법상 청주는 일본식 사케를 이야기한다. ‘정종’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일본 제조 방법으로 만들어진 술들이 오랜 기간 명절 제사 술로 사용되었다. 정종(正宗)은 1840년 일본의 한 양조장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883년, 부산의 이마니시 양조장이 조선 최초의 일본식 청주 공장을 세우고 정종(正宗)이란 청주를 생산했다.

정종이라는 이름을 상표명으로 사용하는 곳이 많다 보니 보통 명사화되어 어느 양조장에서나 사용이 가능했다. 결국 정종(正宗)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운 술들이 지역마다 등장했다. 서울 만리동에 미모토정종(三巴正宗), 마산의 대전정종(大典正宗)과 정통평정종(井筒平正宗), 부산의 히시정종(菱正宗)과 벤쿄정종(勉强正宗), 대구에 와카마즈 정종(ワヵマツ正宗), 인천에 표정종(瓢正宗) 등 외에도 많은 양조장에서 '정종'을 생산했다.

▲ 일제강점기시기 신문에 나온 정종 광고들 @국립중앙도서관

해방 후에도 청주 제조장이 적산(敵産)으로 넘어오면서 일본 청주는 지속적으로 생산되었다. 자연스럽게 정종(正宗)하면 좋은 술을 뜻하는 단어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고 고급술로 인식 되었다. 이후에 명절에 좋은 술을 올린다는 생각에 일본식 '정종'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최근에도 '정종'이라는 단어를 우리의 맑은 술 또는 약주로 잘못 알고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내용을 알고 ‘차례주’라는 이름으로 누룩을 사용해 만든 술의 비율이 늘고는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가정에서는 '정종'을 제사에 사용하고는 한다. 최근 여자는 제사 음식만 만들고 남자는 제사만 지내는 이분법적 형태의 과거 잘못된 제사 문화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많아지고 있다. 술 역시 일본식 술인 '청주=정종'을 사용하지 않고 우리 전통주를 사용하려고 노력 중이다.

제사에 어떤 전통주를 사용할지 큰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술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 조선 시대 왕실의 으뜸가는 행사 중 하나였던 종묘제례에서도 막걸리와 맑은 술(약주)이 사용되었다.

종묘제례에서는 모두 세 차례 술을 올리는데, 첫 번째 올리는 '예제'는 단술(감주)이며, 두 번째 올리는 '앙제'는 술을 여과하지 않고 만든 탁한 술(막걸리)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맑은술(약주)을 올렸다. 아직도 부산·경남 지방에서는 제사상에 막걸리를 사용하는 전통이 남아 있다.

▲ 설 명절에 사용하기에 좋은 2021 우리술 품평회 수상제품 @농림축산식품부

현재 전국에는 800개 정도의 지역 전통주 양조장들이 존재한다. 각 도에 적어도 10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양조장들이 있는 것이다. 지역 양조장들의 술들은 다양하면서도 지역 쌀을 사용하기에 좋은 원료를 이용한 술을 제사상에 올리는 것이 된다. 또한, 제사 술은 '음복'이라는 풍습을 통해 우리도 좋은 술을 마시게 된다.

올 설에는 '정종' 대신 지역에서 생산되는 지역 전통주들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해 본다.

▲ 이 대 형 박사

이대형박사는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전통주를 연구 하는 농업연구사로 근무중이다. '15년 전통주 연구로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 진흥 대통령상 및 '16년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수상, 우리술품평회 산양삼 막걸리(대통령상), 허니와인(대상) 등을 개발하였으며 개인 홈페이지 www.koreasool.net을 운영 중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이대형 koreasool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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