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와의 싸움에 맞서기 위한 일환으로 EU(유럽연합)은 와인 생산에 있어 가장 권위있는 재배 지역에서 포도 ‘하이브리드(잡종)’ 및 ‘저항성 포도 품종’으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도록 허용할 예정이다.

와인전문매체 디캔터지에 따르면 최근 EU 규정이 개정됨에 따라 회원국은 PDO(원산지 표시 보호) 인증을 획득한 와인을 생산할 때 위와 같은 품종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와인 생산이 엄격하게 규제되는 유럽의 많은 지역에는 지금까지 이러한 포도나무로 와인을 만드는 것은 불법이었다.

이는 세계 와인 양조에 있어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일부 하이브리드 품종은 최근 이슈되고 있는 변화하고 있는 기후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혹자는 품질이 떨어지는 와인을 생산한다고 주장한다.

기존에는 EU 내에서 생산되는 PDO 와인의 경우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카베르네 소비뇽, 샤도네이, 메를로, 시라와 같은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 종의 포도나무만 사용할 수 있었으며, 일명 피비(PIWI)라고 불리는 곰팡이에 저항성이 있는 포도와 같은 ‘유전적 특성’이 있는 포도나무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새롭게 업데이트된 규정에 따라 EU의 회원국은 유럽이 아닌 미국 및 아시아에서 온 비티스 비니페라 종부터 하이브리드 품종까지 재배할 수 있게 된다.

EU의 이번 결정은 앞서 말했듯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함은 물론, 유럽의 와인 재배 산업이 보다 지속 가능하도록 돕기 위한 움직임이며, 실제로 이러한 하이브리드 품종들은 노균병, 흰가루병과 같은 질병에 대한 높은 저항성을 가지고 있어 화학 살충제 등의 사용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지금 당장 자신의 비티스 비니페라 포도나무를 제거하지 않고 하이브리드 품종을 심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EU 회원국의 와이너리들은 이러한 결정을 원할 시 국가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러한 EU의 결정을 해당 국가가 동의한다는 보장이 없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같이 와인 산업이 국가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가 이러한 EU의 움직임에 동참할 것인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알토 아디제 지역에서 피비(PIWI) 품종으로 테이블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리젤호프 빈야드(Lieselehof vineyard)의 베르너 모란델(Werner Morandell)에 따르면 저항성 품종 허용의 추가적인 이점으로는 토양 압축 감소와 생산자에게 절약되는 상당한 시간 등이 있다. 그는 “1년에 무거운 트랙터를 15번 또는 20번 사용하는 것은 결국 토양이 마치 콘크리트처럼 압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하며 “나의 포도밭을 걷다 보면 흙이 정말 부드럽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며, 트랙터를 사용함에 따라 생기는 포도밭의 영향을 걱정하는 데 보내는 시간 대신 더 유용한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집중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PIWI 프랑스 생산자 협회의 회장이자 La Columbette의 소유자 뱅상 푸지베트(Vincent Pugibet)은 EU의 이번 결정은 와인 업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말하면서도, 유럽의 수많은 와인 관련 기관 사이의 협력 부족이 이러한 저항성 품종들이 업계에서 받아들여지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어 이탈리아 포도나무 종묘장 ‘Vivai Cooperativi Rauscedo’는 소비뇽 크레토스(Sauvignon Kretos)와 소비뇽 라이토스(Sauvignon Rytos)와 같은 소비뇽 블랑 품종을 기반으로 한 하이브리드 품종을 많이 만들었는데, 이러한 품종들은 저항력과 맛적인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을 지니고 있지만, 프랑스의 경우 자국의 하이브리드 품종을 프랑스농업연구소(INRA)에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 혼종이 아닌 하이브리드 포도를 자신의 국가에 심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테이블 와인을 위해서도 말이다. 이는 마치 르노가 프랑스에서 피아트 자동차의 판매 허가를 담당하는 것과 같다”라고 설명했다.

소믈리에타임즈 유성호 기자 ujlle0201@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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