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은 단 한 번이지만 우리는 평생을 두고 기억한다’.

감독의 유년 시절을 그린 반 자전적 영화, 리버티 하이츠(Liberty Heights, 1999)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불과 몇 달 전 일도 기억 못 하면서 옛날 일은 생생하게 떠오르는 나의 경우를 보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어릴 적, 지금 생각하면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누군가를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녀,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의아한 장소에 있곤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 대상은 우리 할머니였다. 아침을 드시고 소일거리를 하시다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파트 경로당(그 당시 나는 노인정이라고 불렀다)에 가시는 할머니의 스케줄대로, 유치원이 끝나고 내가 귀가하는 곳은 당연히 그 경로당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밥도 얻어먹고 할머니들의 화투 놀이를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다 피곤이 밀려오면 경로당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도 아닌 뽕짝 리듬에 맞춰 앞뒤로 사뿐사뿐 걷는 게 다인 할머니들의 춤 판 한가운데에 그대로 누워 자빠져 잠을 자곤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행동의 폭이 넓어지고 사회성을 발휘하는 능력이 생겨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 즉 친구를 사귄다. 그렇다면 졸졸 따라다닐 대상이 이번에는 바로 그 친구다. 그 친구의 집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은 기본이고, 친구 가족의 각종 나들이 및 행사(?)에 늘 참여하는 형태였다. 주말이면 그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 참석해 교회에서 주는 점심을 먹고(늘 밥을 얻어먹는다), 심지어는 친구의 아버지가 하시는 부동산 사무실에서 방과 후를 보내기도 했다. 유치원 시절 경로당에서의 뻔뻔함이 더욱 진화한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초등학교 3학년의 어느 날도 나는 친구 미애와 그 동생 미란이,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와 함께 천호동 어딘가의 쇼핑몰에 있었다. 자영업을 하셔서 비교적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친구의 아버지는 두 딸과 그 딸의 친구까지 객식구 삼아 데리고 다닐 정도로 너그러운 분이셨던 것 같다. 당시의 쇼핑몰은 지금의 그것들 보다 천장이 낮아 사람들로 붐비면 동네 시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촌스러운 분홍색과 빨간색으로 꾸며진 장난감 코너 사이로 ‘징글벨’이며 ‘울면 안돼’ 같은 경쾌하고 동화스러운 느낌의 캐럴이 왁자지껄한 소리와 섞여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나는 두 딸과 함께, 사람만 한 인형이 서 있어 일종의 포토존 역할을 하는 작은 무대에 올랐다. 그러고는 가짜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하는 척하기 시작했다. 대문짝만 한 안경을 꼈던 미애가 가운데 서고, 병아리처럼 귀여운 동생 미란이와 타이어만큼 둥실둥실한 빨간 파카를 입은 내가 양쪽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역시 대문짝만 한 안경을 낀 미애 아버지께서 무뚝뚝한 얼굴로 열심히 우리의 사진을 찍어댔다. 그때의 사진을 나는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굳이 꺼내 볼 필요가 없다.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서랍처럼, 연말이면 떠오르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졌다가 또 다음 해 연말이면 다시 나타나는 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별것도 없는 어릴 적 한순간이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크리스마스’ 였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비웃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기억이 만들어 내는 동심(童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그 때의 행복한 추억을 다시 재현하고자 한다면 역시 오감 중 하나를 끌어오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늘 밥을 얻어먹던 내가 그때 뭘 먹었는지 기억을 못 하는 거 보면, 그날의 요란했던 크리스마스 캐럴(청각)과 원색의 시각적 장식들이 미각을 압도했나 보다. 그런고로 역시 연말은 떠들썩해야 한다. 캐럴은 뭐니 뭐니 해도 조금 촌스럽고 들뜬 기분을 주어 약간 길거리 음악(?) 같은 느낌을 주는 곡, 예를 들어 ‘펠리스 나비다(Feliz Navidad)’나 왬!(Wham!)의 ‘라스트 크리스마스’ 같은 노래가 제격이다. 차분하고 세련된 변주로 가득해 약간 멜랑콜리한 느낌을 주는 노래를 듣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크리스마스는 휘황찬란해야 한다. 초록색 바탕에 빨간색, 그리고 화려한 금빛, 은빛의 장식품과 번쩍이는 전구는, 돌이나 명절 때 아이들에게 입힌 알록달록한 색동옷에서 보이는 오방색의 깊은 뜻만큼이나 내게는 중요한 의미를 준다. 요즘은 톤 다운된 혹은 파스텔 톤의 색이 유행인 듯 보이지만 그래서는 영 행복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트리와 벽 여기저기를 각종 색들로 덕지덕지 채우곤 하는데, 가끔 나의 장식을 본 사람들이 던지는 한마디가 상처가 될 때가 있다.

‘푸닥거리 라도 하려는 모양이지?’

그 중에서도 핵심은 역시 빨강이다. 12월은 빨간색의 계절이고 빨강은 12월의 색이다. 가장 행복했던 크리스마스에 빨간 파카를 입고 있었다는 이유로 지금도 그것과 비슷한 다홍색 패딩을 15년이 넘도록 입는 내가 참 눈물겨울 때도 있다. 그러나 꼭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일찍 어두워지는 겨울의 밤을 달래려면 빨간색 정도는 돼야 기운이 나기 때문이다.

▲ 파리의 백화점, 갤러리 라파예트의 크리스마스 장식 <사진=송정하>

와인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레드 쪽이냐, 화이트냐 하는 질문을 곧잘 받나 보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과학자이자 소믈리에인 파브리지오 뷔셀라(Fabrizio Bucella)라는 사람은 한 잡지의 칼럼에 이러한 질문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화이트 와인의 제조 과정이 레드 와인과 비교하여 얼마나 섬세하고 까다로운 작업인지, 그리고 레드 와인 없는 식사가 얼마나 공허한 지에 대해 설명하더니, 취하면 됐지 무슨 와인 인지가 뭐가 중요하냐며 사랑하면 됐지, 정부(情婦)는 중요하지 않다는 짓궂은 농담까지 덧붙였다. 술과 사랑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아닐 수 없다. 나로 말하자면 한 겨울에는 역시 레드다. 빨갛지 않은가!

색채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레드 와인이라고 해서 모두 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빨간색이 아닌데 왜 뭉뚱그려 레드 와인이냐 할지 모른다. 하지만 투명함과 초록빛 에서부터 주로 노란색을 띠는 와인을 가리켜 ‘화이트’라고 하는 것에 비하면, 레드 와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럭저럭 봐줄 만한 것 같다. 중세사 학자이자 색채 분야의 전문가인 미셸 파트 투로(Michel Pastoureau)의 말을 빌리면, 모든 문명이 그렇듯 인간은 흰색과 빨강 그리고 검정과 같은 기본이 되는 색을 통해 모든 제도와 의식에 사회적 코드를 부여해 왔다. 예수의 피와 적포도주 식의 연결고리 말이다. 그리고 고대부터 중세까지, 서양에서 흰색의 반대는 검정이 아니라 붉은색이었다고 한다.

각 색깔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은 우리 인간에게 색에 대한 어떤 신화적 의미를 부여해, 나 같은 사람을 12월만 되면 뭔가에 홀린 듯 입술에 시뻘건 립스틱을 칠하도록 충동질하기에 이른 것 같다. 불타는 열정, 에너지, 힘과 확신 같은 것들이 빨간색 하나로 실현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예전 어머니들이 립스틱을 ‘루즈’라고 부르던 때에는 그것이 프랑스어로 ‘빨강’을 의미하는 줄 몰랐다. 입술을 둥글게 모으고 있는 힘껏 호흡을 끌어모아 나른하게 ‘루-즈(Rouge)’라고 발음할 때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단어처럼 들리는 것도 같다.

하지만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파랑이다. 아마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파랑은 자유의 색이다. 깊은 바다와 광활한 하늘을 연상시켜 보고만 있어도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만 같다. 또 빨간색과 달리 파랑은 차가울 정도의 차분함과 고요를 준다. 그래서 사랑받는 색 아닐까? 열정과 에너지만 갖고 살다가는 세상의 가차없는 벽에 부딪친다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평정심을 유지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색과 와인으로 이어지는 문화 전반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보르도 와인 아카데미로부터 몽테뉴 상을 받은 미셸 파스투로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색인 초록빛의 아름다운 와인 즉 화이트 와인만 마신다고 한다. 레드 와인을 마시지 않다니 이 분도 색깔과 와인에 대한 취향이 확고 한가 보다.

아무튼 그래서 나에게 빨간색은 시즌 한정 색이다. 일 년 내내 좋아하기에는 벅차지만, 연말이 되면 미치도록 그립고, 도전해 보고 싶고, 기운을 받고 싶은 색이다. 에너지가 과하게 차오르는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1월이 되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파란색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 송 정 하

법대를 나왔지만 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 프랑스 보르도로 떠났다. 보르도 CAFA에서 CES(Conseiller en sommellerie:소믈리에컨설턴트 국가공인자격증), 파리 Le COAM에서 WSET Level 3를 취득했다. 사람이 주인공인 따뜻한 와인이야기를 쓰고 싶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송정하 noellesong0520@gmail.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