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와인을 소개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와인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당당하고 자신감 있어 보인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외모는 또 얼마나 깔끔한 지. 잘 빗은 머리, 단정한 얼굴, 와인병을 다루는 섬세하고 능숙한 손과 당찬 눈빛 그리고 분명하고 확신에 찬 말투까지.

아무리 와인이 그저 먹고 마시는 음료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주는 대로만 마실 게 아니라 내가 마시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진열된 와인 선반에 붙은 와인의 이름과 그와 관련한 가격의 합리성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들을 아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 평소에 와인을 진득하게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인터넷을 뒤지든, 누군가에게 묻든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 이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런데 이토록 바쁜 세상에서, 5분 내로 와인을 골라야 하는 소비자 혹은 1시간짜리 와인 강의의 수강생 앞에서 명확한 결론을 내려주지 못하는 와인 숍 직원, 와인 강사는 그 능력을 쉽게 의심받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교실 한구석, 그늘진 곳에 자리 잡아야 마음이 편한 사람으로 살았으니 남 앞에 나서는 것은 내 인생에 전혀 일어나지 않을 일 같았다.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걸 좋아하며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조차 말이 없기로 유명한 사람이, 이렇게 와인에 대해 말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게 참 아이러니다. 그러나 역시 천성은 어디 가지 않나 보다. 특별히 질문을 받거나 그 주제에 대한 자리가 아닌 이상 와인에 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게 되니 말이다.

특히 와인을 마시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해서 그렇다. 이것은 어떻게 해야 와인을 제대로 마시는가 즉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가의 문제일 텐데 솔직히 말하면 아무렴 어떤가 싶다. 너무 차게 나온 와인이지만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와 따뜻한 실내 온도로 인해 와인의 온도는 금세 올라가지 않겠는가. 레드 와인으로 기분이 좋아진 친구가, 갑자기 생각난 화이트 와인을 마셔보고 싶다는데, 정색을 하고 와인을 마시는 순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등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말이다. 리슬링의 나라에서 16년간 총리를 지낸 메르켈도 만찬 자리에서 레드 와인을 한가득 채운 잔을 들고, 상대인 오바마 전 대통령도 놓칠 세라 화이트 와인이 담긴 잔의 볼을 움켜쥔 채 건배를 한다. 그러니 친구도 나도, 레드 와인 후의 화이트 와인을 맛있게 마실 게 분명하다.

입을 쉽게 열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사실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와인은 발효시킨 포도 즙으로서, 나무를 심고 포도를 수확한 후 발효와 병입, 숙성 등을 거치는 일련의 과정과 그 이후 우리가 마시는 순간까지의 모든 흐름이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 시음에서 흔히 ‘부싯돌’ 향이라고 묘사되는 ‘미네랄 풍미’는 지질학적 의미의 화합물인 ‘미네랄’에서 오는 것인가? 포도 재배와 관련된 모든 자연환경을 일컫는 ‘테루아’를, 정말 내가 마시는 와인 잔에서 느낄 수 있는가? 타닌은 왜 산소와 만나면 부드러워 질까? 와인은 언제 마셔야 가장 좋을까? 어느 해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이 가장 숙성 능력이 좋을까? 등등 ‘왜’라는 질문은 끊임이 없다.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직접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거나 지질학, 화학, 생물학 등에 정통한 사람, 혹은 오랜 세월 와인을 접하고 진지하게 연구한 사람들에 한정될 것이다. 고백하건대 학창 시절, 단 한 번도 과학에 소질을 보인 적이 없던 나는, ‘레드 와인병의 타닌은 시간이 지나면서 색소나 산과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화합물과 더 큰 분자를 만들고 침전물로 가라앉아, 결국 부드러운 풍미로 변한다’는 설명을 해야만 할 때에, 내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당신, 제대로 이해하고 하는 소리야?’

과학은 내게 다가가기 힘든 진리이기 때문에 신비하고 경이롭다. 그래서 와인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연구 결과와 통계, 저명한 전문가들의 의견, 거기에 나의 작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여전히 계속 와인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하는 타입인 나는 말 한마디 내 뱉을 때마다 늘 조심스럽다. 겁을 한껏 먹었을 때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라고 한 공자의 말까지 떠올리며 조금이라도 자신감을 가져 보려 안간힘을 쓴다.

▲ 포도가 와인이 되기까지, 내겐 너무 어려운 주제다. <사진=송정하>

그럼 어디선가 누군가가 또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이게 무슨 철학도 아니고, 그냥 잘 먹고 잘 살자는 건데,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아? 배웠으면 아는 대로 최소한의 결론은 내려 줘야 할 것 아니오, 이 답답한 양반아!

그래서 말입니다. 그동안 사람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와인에 대한 두 가지를 잠시 이야기해 보려 한다. ‘그건 그렇지 않을 텐데요’ 하며 감히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썰렁하게 할 수 없어 차마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사소해 보이지만 명쾌한 대답이 힘든 것들이다.

미리 와인을 오픈해야 하는가?

가장 많이 들은 소리는, ‘마시기 전 날 와인을 열어 놨더니 맛이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갓 개봉한 병에서 나오는 신선한 향을 맡는 순간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들을 때마다 의아했던 부분이다. 침전물이 있는 와인을 찾아보기 힘든 오늘날, 디캔팅의 주된 역할은 와인을 숨 쉬게 해 마시기 수월하게 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디캔팅(Decanting)이란 병에 든 와인을 다른 용기에 옮기는 것으로, 용기의 안쪽 면에 와인을 강하게 쏟아부어 되도록 많은 공기와 접촉 시켜 닫혀 있는 와인의 향을 발산 시키고, 떫은 타닌을 부드럽게 해 준다. 그래서 타닌이 많거나, 거친 맛을 가진 어린 레드 와인의 경우 유용하다.

그렇다면 단순히 병의 마개를 마시기 몇 시간 전, 혹은 전 날에 열어 놓는 것은 어떨까?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디캔팅의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데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다. 즉 병 목이 너무 좁아 산소와의 충분한 접촉이 힘들고 오히려 와인 고유의 향만 날아간다는 것이다. 와인을 부드럽게 즐기기 위해서는 잔을 몇 번 가볍게 돌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디캔팅 반대론자들(?)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 타당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코르크와 스크류캡

다른 하나는, 스크류캡으로 밀봉된 와인병을 볼 때 나오는 흔한 말, 무슨 와인을 손으로 돌려 여냐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은 와인의 고장인 프랑스에서 더 한 것 같다.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와인병의 80% 이상이 코르크 마개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상큼한 산미와 신선도 유지가 필수적인 일부 화이트와 로제 와인의 경우 스크류캡 마개가 허용되지만 아직도 레드 와인과 장기 숙성용 고급 와인에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코르크마개는 17세기에 유리병과 함께 탄생하고 발전한 역사적인 발명품 중 하나다. 코르크 참나무의 껍질에서 나오는 코르크마개는 가볍고 깨끗하며 와인이 새는 것을 막아주고, 무엇보다 특유의 탄력성 덕에 이상적인 와인 마개로서 기능해 왔다. 그런데 이 코르크 참나무는 20년 이상 자라야 외피를 벗겨낼 수 있고, 이마저도 10년에 한 번 주기로 벗길 수 있는데 그러는 동안 병입 되는 와인의 양이 증가하여 나무껍질을 지나치게 자주 벗겨내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와인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곰팡이에 오염된 코르크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스크류캡 이다.

스크류캡은 당연히 이 곰팡이 오염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거의 완벽히 밀봉되어 산화 방지제 역할을 하는 이산화황의 양도 줄일 수 있고, 코르크보다 대체로 저렴하다. 무엇보다 병을 열고 닫기 쉬우며 보관하기 편하다. 숙성할 실익이 있는 와인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지만, 요즘은 상단의 라이너에 산소 투과율을 조절할 수 있는 스크류캡도 개발되어 연구가 계속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재료가 되는 알루미늄의 생산 과정과 폐기물 문제 등 스크류캡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옥스포드 대학에서 심리학을 연구하는 찰스 스펜스(Charles Spence) 교수가 코르크 마개와 스크류캡을 두고 진행 한 연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즉 그는 몇몇 시음자들에게 코르크 마개를 한 와인을 주고, 나머지 시음자들에게는 스크류캡을 사용한 와인을 건네어 각각 와인을 평가하도록 했다. 그 결과 코르크로 막은 와인의 시음자들이 스크류캡 와인을 마신 사람들 보다 더 높은 점수를 줬는데, 알고 보니 그들이 마신 와인은 마개만 다를 뿐 둘 다 같은 와인이었다는 다소 뻔한 이야기이다. 이거 어째 또 와인 스노브의 문제로 귀결되는가 싶지만 꼭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이 마음이 하는 일이듯 정서적인 문제를 빼놓을 수 없으니 말이다. 편리한 디지털 도어록을 거부하고 굳이 무거운 열쇠를 주렁주렁 들고 다니는 유럽인들의 심리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이렇게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고, 와인에 대한 지식을 차곡차곡 쌓는 만큼, 그만큼 와인이 맛있으면 좋겠다. 그럼 얼마나 좋을까. 몇 주 전, 엄마가 레드 와인 두 병의 사진을 보낸 적이 있다. 결혼식 답례품으로 받은 거라며 어떤 와인인지, 가격은 얼마나 하는지에 대해 궁금하셨던 거다. 주량이 적은 나는, 비싸고 유명하다는 와인이 생기면 항상 부모님과 함께 했고 그때마다 엄마는 와인의 맛과 특성을 거의 정확히 표현하여 나를 놀라게 하곤 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보내 준 사진의 와인은 모두 마트에서 초저가로 팔리는 것이었고, 그 맛에 대한 사람들의 평도 좋지 못했다. 이제는 엄마가 어느 정도 와인의 품질도 가려낼 줄 안다고 생각했기에, 혹시나 실망하실까 와인의 맛이 어땠냐는 질문부터 했다. 그랬더니 말씀하시길, ‘아주, 아주’ 맛있게 드셨 단다. 그러고 보면 ‘아는 게 힘’이 아니라 ‘모르는 게 약’인 걸까?
 

▲ 송 정 하

법대를 나왔지만 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 프랑스 보르도로 떠났다. 보르도 CAFA에서 CES(Conseiller en sommellerie:소믈리에컨설턴트 국가공인자격증), 파리 Le COAM에서 WSET Level 3를 취득했다. 사람이 주인공인 따뜻한 와인이야기를 쓰고 싶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송정하 noellesong05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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