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나산 차산은 중국의 보이차를 설명할 때 꼭 소개해야 하는 차산마을 중에서 빼놓을 수가 없으며, 가장 많은 전설로 소개되고 있는 남나산 차산은 해발 1,700m 고산 지대에 있다.

▲ 운남성 남나산에서 바라본 공명산

운남성 서쌍판납주(西双版纳傣族自治州) 경홍시(景洪市)에서 맹해(勐海)지역으로 가는 214번 국도를 따라 40분 정도를 가면 도로 양가에 대단위 분지가 나타나고 파인애플, 고무나무 농장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작은 동네가 나타나고 전통시장이 있는 길목 옆으로 첩첩산중으로 따라 올라가면 좁은 포장도로가 나온다. 4륜 자동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꾸불꾸불한 도로를 따라 8Km를 30분 정도 올라가면 10가구 정도 거주하는 반파채(半坡寨) 마을이 반겨준다.

▲ 남나산 보이차 투어

남나산 차산의 마을은 해발 1,400∼1,700m에 고차수가 생산되는 죽림채(竹林寨), 반파채(半坡寨), 고랑채(姑娘寨), 석두채(石頭寨), 아구신채(牙口新寨)가 있다. 남나는 태족어(傣族語)로 ‘절인 죽순’이란 뜻이며, 남나 지명(地名)의 유래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어느 해 태족(傣族)의 토사가 남나산을 순찰하러 왔을 때 합니족(哈尼族) 족장이 산에서 나오는 야생 멧돼지, 사냥한 새고기, 산에서 나오는 나물 요리, 죽순 요리 등으로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토사는 연회에 나온 음식 중에 절인 죽순을 매우 맛있게 먹은 후에 매년 공물로 절인 죽순을 바치게 한 것이 유래되어 ‘남나산(南糯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나산 차산은 차나무 수령이 500년 이상 된 차나무가 무려 12,000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수령 800년 이상 된 나무도 50그루 이상 되는 고차수(古茶樹)의 보고(寶庫)이다. 그러나 과거의 명성보다는 많이 쇠퇴하였지만, 아직도 그 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많은 보이차 애호가들이 지리적으로 쉽게 방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이차 역사에 거슬러 올라가면, 남나산은 수천 년 전 고대 복인(濮人)이 처음으로 차나무를 심었고, 다시 합니족(哈尼族)이 이주하여 차나무를 재배하고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복인과 합니족의 후예들은 자신들이 신으로 모시고 있는 제갈량(諸葛亮)이 남나산에 차나무를 심었다는 전설을 믿고 있다.

▲ 남나산에 살고있는 합니족 여인들

전해 오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촉(蜀)나라 때에 유비(劉備)의 군사(軍師)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펼쳐 삼국시대를 전개한 제갈량이 남쪽을 정벌할 때 남나산을 지나게 되었다. 병사들이 아열대성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아 눈병이 생겨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눈병에 걸린 병사들이 심한 고통을 호소하자, 제갈량은 갖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자 차나무로 변했으며, 차나무에 잎이 돋아났다. 병사들은 그 찻잎을 끓여 마시고 난 후에 기적처럼 완쾌되었다. 이 전설로 인해 남나산 지역의 소수 민족은 남나산을 제갈량의 호를 빌려 공명산(孔明山)이라고 불렀고, 매년 봄이 되면 봄차(春茶)를 따기 전에 제갈량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춘차를 따서 처음 만든 보이차를 제갈량에게 바치는 풍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포랑족은 제갈량을 존경하고 숭상하면서 전설로 내려오고, 보이차의 고장인 중국 운남성에서는 차조(茶祖)로 제갈량을 받들고 있다. 수령 800년이 된 차나무는 제갈량이 심은 원조(元祖) 차나무로 신성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 남나산의 제갈량이 심었다는 차왕수

실제로 남나산의 차왕수로 불리는 수령 800년의 재배형 고차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1994년에 차왕수가 고사하면서 주민들의 실망이 극에 달하였지만, 우연히 차왕수로부터 2m 떨어진 곳에는 큰 차나무 한그루를 발견하고, 차왕수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남나산 반파채(半坡寨)의 주민들이 남나산 보이차를 많이 팔고, 신성시하기 위해 마케팅 차원에서 차왕수라고 불렀다. 남나산 보이차 투어를 오는 사람들에게 차왕수라고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제갈공명이 심은 차왕수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보이차 다큐멘터리나 뉴스에도 제갈공명이 심은 차나무로 소개되어 유명세를 탔다.

▲ 남나산의 석두채 마을

우리나라 다도문화(茶道文化)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부산 차인들이 다성(茶星)으로 모시는 금당 최규용(錦堂 崔圭用)선생은 일찍이 남나산의 차왕수를 찾아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저자도 반파채(半坡寨) 마을에서 산속으로 걸어가는 산 중턱에는 고차수 차나무밭이 계속 이어졌고, 40분 정도 갔을 때 작은 움막집과 흐르는 맑은 개울물 소리가 나는 곳에서 제갈량이 심었다는 차왕수를 보는 순간 신성하게 느껴지고 겸손해졌다.

청나라가 쇠하고 장개석의 국민정부가 의방(倚邦) 지역을 통치하면서 많은 세금을 징수하여 소수민족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기낙산(基諾山)에 사는 소수민족 기낙족(基諾族) 이 의방을 침입한 후에 불을 질러 의방 마을은 황폐하고, 풍토병이 돌면서 소수민족들이 맹해 지역으로 이주하여 남나산이 부상하였다.

▲ 제갈량이 심었다는 남나산의 차왕수

현재 남나산에는 교목 고수차, 왜화고수차, 대지차의 3종류의 차나무가 공존하며, 떼루아를 살펴보면 평균 해발이 1,400∼1,700m로 연간강우량은 1,500~1,750mm이며, 연평균 기온은 16~18℃이다. 운무가 끼는 날이 연평균 221일에 달하기 때문에 차나무의 생장에 유리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남나산의 소수 민족은 봄에 어린잎을 따서 만든 춘차 고수차는 외부에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황편(보이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큰 찻잎을 골라내어 만든 것)이나 혹은 다 자란 찻잎을 따서 대나무 통에 넣어 만든 죽통 보이차를 즐겨 마신다.

남나산 고차수 차산은 넓게 분포되어 있어 각 지역의 보이차 맛에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외형이 비교적 길고 단단하게 말려있으며, 찻물색이 금황색을 띠며 맑고, 찻물의 구조감도 풍부하며, 쓴맛은 약하고 회감이 비교적 빠르고, 떫은맛은 쓴맛보다 더 오래 지속되며, 침이 고여 나오고, 향기는 꽃향, 난초향, 장향 등이 느껴지며, 산야 기운이 비교적 좋다.

▲ 새롭게 건축한 남나산 차앙수 옆의 다실

필자는 매년 남나산 차산을 방문했는데, 차왕수가 있는 곳에 옛 오두막 집은 사라지고 새롭게 단장을 하였고, 졸졸 흘러내리는 작은 계곡물도 파헤쳐 문명의 이기(利器)를 피부로 느끼곤 했다.

▲ 합니족이 사는 집의 주방 거실

합니족이 사는 전통 가옥에 들어가 2019년 남나산 고수 춘차(古樹 春茶)를 마셨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보이차 외형은 검고 밝으며 단단하게 말려있어 야생적인 풍채를 느꼈다. 찻물색은 금황색이며, 맑고 투명하다.

▲ 남나산의 고수 춘차

산야 기운이 비교적 강하며, 여행 중에 힘들었던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기분이 맑아졌으며, 향기는 순수하고, 난초 향과 단향 등이 올라오고, 찻잔에 남아 있는 자연 꿀의 잔향이 오랫동안 입안에 머물러서 좋다. 맛은 쓴맛이 약하고 회감이 조금 빠르고 길며, 떫은맛은 조금 길게 지속되지만, 떫은맛이 없어진 후에 바로 입안에 침이 고이고, 회감은 비교적 오래 지속되고 매끄럽고 부드럽다.

고재윤박사는 현재 (사)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고황명예교수이다. 2010년 프랑스 보르도 쥐라드 드 생떼밀리옹 기사작위, 2012년 프랑스 부르고뉴 슈발리에 뒤 따스뜨뱅 기사작위, 2014년 포르투칼 형제애 기사작위를 수상하였고, 저서로는 와인 커뮤니케이션(2010), 워터 커뮤니케이션(2013), 티 커뮤니케이션(2015), 보이차 커뮤니케이션(2015), 내가사랑하는 와인(2014) 외 다수가 있으며, 논문 210여편을 발표하였다. 2001년 한국의 워터 소믈리에를 처음 도입하여 워터 소믈리에를 양성하여 '워터 소믈리에의 대부'고 부른다. 2000년부터 보이차에 빠져 운남성 보이차산을 구석구석 20회 이상 다니면서 보이차의 진실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와인, 한국의 먹는 샘물, 한국 차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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