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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윤의 보이차 커뮤니케이션] 보이차의 역사인 명품 의방(倚邦) 보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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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1.07.21  22: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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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방 보이 차나무가 있는 차산

필자가 보이차산을 연구한 지가 10년이 넘었지만 의방 차산은 겨우 2번을 다녀왔다. 다른 차산을 연구하고자 미룬 핑계도 있지만 찾아 가는 길도 너무 험했다. 그러나 중국의 운남다운 토속적인 마을 풍경 때문에 좋은 추억도 만들수가 있었다. 최근에 갔을 때 마을 전체가 현대식 주택으로 탈바꿈하고 있어 주민들의 생활은 매우 편한 반면에 유구한 보이차의 역사가 사라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향후 관광상품의 가치가 떨어질 때 주민들이 후회 할수도 있을거라 생각했다.

보이차를 즐기는 마니아들은 차마고도(茶马古道)의 기점인 서쌍판납주 맹랍현(勐腊县)에 있는 이무고진(易武古镇)에 갔다가 의방(倚邦)을 가야 비로소 구(古) 6대차산(六大茶産)을 이해할 수가 있다. 이무(易武)는 그 유구한 역사와 “서공천조(瑞贡天朝)”의 영예에 의해 한때 보이차(普洱茶)의 성지로 알려졌었다. 중국의 운남성 이무(易武)의 의방(倚邦)을 빼고는 보이차의 역사를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인 지역이었지만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한낮 유명 보이차 산지로 남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 의방 마을의 중심지 과거 모습

의방(倚邦)차산은 서쌍판납주(西雙版納州) 맹랍현(勐腊县) 상명향(象明鄕)의 가장 북쪽에 있다. 경홍시에서 자동차로 약 3시간 정도를 가면 이무(易武)가 나타나고 다시 꼬불꼬불한 산길을 돌고 돌아 1시간 30분 정도를 가면 상명향이 반겨준다. 상명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4륜 지프로 약 2시간 정도 좁은 깊은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면 구름 아래 산 중턱에 과거의 명성에 비해 초라한 30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 의방이다.

청나라 시대의 의방 일대는 19개 마을에 인구가 9만 명이 살았다. 차를 채집하는 봄철에는 외지에서 온 상인과 노동 인력까지 가세해 20만 명이 의방차산에 모였다고 한다. 현재는 의방을 포함한 13개 마을에 220가구에 950명 정도가 살고 있다. 의방은 동서 방향으로 길이 250m이고 너비는 12~16m의 번화가였으며, 동쪽은 이무, 서쪽은 혁등, 남쪽은 만전, 동남은 만송과 이웃하고 있으며 동북 방향은 사천성, 서쪽은 사모의 차마고도로 연결되었다.

▲ 의방 마을의 중심지 용목이 있는 계단(현재 모습)

청나라 정부는 의방가(倚邦街)를 용의 모양으로 설계하였는데 용머리에는 관청, 용등은 도로, 도로 옆으로 소수민족의 집, 용 꼬리에는 큰 느티나무를 심었다. 의방 옛 거리는 건물을 지었던 주춧돌, 용의 목을 상징했던 돌계단 퇴락한 관아 건물 앞에 방치된 돌사자, 세월을 풍파를 맞고 살아남은 느티나무만이 옛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 의방 마을의 관가 앞에 있는 사자상

보이차가 청(淸)나라 옹정 10년에 공차로 지정되면서 의방 차산은 명성을 떨쳐왔다. 이 지역의 정치, 경제, 행정, 정치의 중심지였던 의방은 명나라 초기에 이미 차산이 형성되었고, 태족(泰族), 합니족(哈族尼), 이족(彝族), 포랑족(布朗族) 등 소수민족들이 거주하면서 차를 생산했다. 명(明)나라 말기에 사천성(泗川省)의 한족(漢族), 이족(彝族)이 의방으로 이주하면서 사천성의 소엽종을 재배했다. 소엽종 찻잎으로 만든 만송(曼松) 보이차는 청나라 황실에 공차가 되었고, 의방은 구(古) 6대 차산의 중심이 되었다. 청나라 옹정 7년 1728년에 지방의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서쌍판납에 개토귀류(改土歸流)를 시행하였고, 의방은 조당제(曹當齋) 때문에 황궁으로 진상되던 금과공차(金瓜貢茶)의 주요 산지가 되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의방 지역의 보이차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이 황폐되었고 보이차의 명맥도 맹해(勐海)지역으로 옮겨 가면서 이무를 중심으로 하는 구(古) 6대 차산과 맹해를 중심으로 하는 신(新) 6대 차산으로 구분하는 계기가 되었다. 찬란하게 발전했던 의방의 고수차원은 1856년 무고한 회교도 4,000여 명을 참살한 ‘곤명 대학살’로 일어난 회족의 판데(Panthay)의 난, 중일 전쟁, 중국의 내전 그리고 중국 문화대혁명으로 명성이 사라지는 듯하였지만, 지금까지 의방 차산의 보이차가 명품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자 노력한 조당제(曹當齋) 후손들과 소수민족의 강한 생활력 때문이다.

의방은 조당제(曹當齋)의 이야기를 빼고는 보이차의 역사를 말할 수가 없다. 필자가 조당제의 흔적을 찾기 위해 조당제의 집과 무덤의 비석을 찾았다. 과거 조당제의 집은 흔적만 남아있고 보기에도 초라한 집에 주민이 살고 있었다. 현지인에게 물어서 밀림같은 산속의 무덤을 찾았는데 도굴되어 겨우 형체만 알아볼 수 있었다. 조당제가 사망한 후 청나라 황제가 내려준 비석도, 화려했던 무덤도 누구도 돌보지 않아 산속에 버려져 있어 역사적 가치를 잃어가고 있어 안타까웠다.

▲ 조당제의 무덤에 있는 청나라 황제가 내려준 비석

조당제는 사천사람으로 의방에서 보이차 사업을 하였다. 그는 성실하고 일 처리를 매우 깔끔하게 처리하고 품성이 뛰어나 소문이 자자했다. 의방의 소수민족 이족(彝族) 두령이 마음에 들자 옥처럼 키운 무남독녀 딸과 결혼시켰다. 장인이 죽자 지위를 승계하면서 의방지역의 발전과 소수민족을 지키기 위해 청나라 편에서 충성을 다하면서 공을 세웠다. 청나라는 개토귀류과정에서 조당제를 의방토천총(倚邦土千總)로 책봉했다. 조당제는 토천총으로 유락·의방·망지·만전·혁등 5대 차산을 관할하였지만, 이무차산은 이무지역 토파총(土把總)이 직접 관리토록 하였다. 청나라 옹정 13년에 운남성의 총독은 조당제에게 공차의 모든 관리를 맡기고 이무 토파총이 협조하도록 명하였고, 토천종의 직위는 세습할 수 있어서 조당제 가문은 11세대 16명이 5대 차산을 약 300년 이상 관리했다.

의방은 크게 번성하였고 전성기에 의방의 거리는 관제묘(關帝廟), 석병회관(石屛會館), 사천회관(四川會館), 초웅회관(楚雄會館), 조가대원(曹家大院) 등 상인회 형성되었고 홍창(鴻昌), 경풍화(慶豊和), 경풍익(慶豊益), 원창(元昌) 등의 차창이 명성을 얻었다.

19세기 후반 의방도 1937년 일본의 침략으로 차의 교역이 중단되면서 모든 차창이 점점 이주하거나 폐업을 하였고, 1942년 모택동과 내전을 한 국민당이 의방을 통치하면서 기낙족(基諾族)에게 부당하게 세금을 많이 거두자 반발하여 국민당이 있는 의방을 공격해 마을에 불을 질러 3일 밤낮으로 타면서 몇백 년에 걸쳐 형성된 아름다운 건축물이 잿더미가 되고 의방은 완전히 소실되었다.

▲ 의방의 마을과 차산

현재 의방은 해발 1,950m에 있으며, 고차수가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차산은 마율수(麻栗樹), 의방(倚邦), 만공(曼拱)이 있다. 현재 만공 차산은 차나무 생장에 가장 좋은 자연환경과 고차수가 많이 있으며, 산속 깊숙이 위치한 대수림(大樹林) 마을은 이족이 20여 가구 살고 있다. 또한 만공에서 4km 떨어진 대흑수림(大黑樹林) 마을은 조당제(曹當齋)의 후손들이 2가구가 살고 있으며, 만공 차산보다 해발 100~200m 이상에 있다. 대흑수림의 마을은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야생 고차수가 많고 고품질의 보이차를 생산한다.

저자는 의방의 느티나무 아래에 사는 이족 농가를 방문하였는데 무우 시래기를 대나무 발에 매달아 놓은 모습이 우리나라의 시골 풍경과 같아 매우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수령 300년 이상 된 고차수에서 채집한 보이차를 산 아래 깊은 계곡을 내려다 보이는 마당 한가운데 앉아서 시음하였다.

▲ 차마고도때 사용한 말의 보이차 대나무 통

2013년 춘차 고차수 소엽종으로 쇄청모차로 외형은 검고 밝으며 비교적 짧고 가늘며, 잎 뒷면에 흰 솜털이 많았다. 산야기운은 신선하고 힘찬 기운이 비교적 강하게 차고 올라왔으며, 깊은 산속에서 힐링하는 기분을 느꼈다. 향기는 산야기운의 향이 뚜렷하고 순수하며, 난향이 그윽하게 올라오고, 찻잔에서 풍기는 난향이 순하고 매력적이면서 비교적 길고 단향이 긴 여운을 남겼다. 맛은 부드러운 쓴맛으로 떫은맛이 쓴맛보다 선명하고, 처음부터 순한 단맛이 강하게 지속되면서 묘한 운치를 갖게 하며, 후운은 회감이 좋고 달고 매끄러우며, 장시간 지속되었다. 찻물 색은 황록색으로 맑고 밝은 것이 매력적이고, 우린 잎은 황록색으로 균일하며 윤택이 있었다.

▲ 의방 고수 보이차

이무로 돌아오는 2~3시간 동안 입안에서 피어오르는 난향과 단맛이 입안 가득히 퍼져오는 것을 느끼면서 의방 보이차의 품질과 매력에 깊숙이 빠져 버렸다.
 

▲ 고재윤 고황명예교수

고재윤박사는 현재 (사)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고황명예교수이다. 2010년 프랑스 보르도 쥐라드 드 생떼밀리옹 기사작위, 2012년 프랑스 부르고뉴 슈발리에 뒤 따스뜨뱅 기사작위, 2014년 포르투칼 형제애 기사작위를 수상하였고, 저서로는 와인 커뮤니케이션(2010), 워터 커뮤니케이션(2013), 티 커뮤니케이션(2015), 보이차 커뮤니케이션(2015), 내가사랑하는 와인(2014) 외 다수가 있으며, 논문 210여편을 발표하였다. 2001년 한국의 워터 소믈리에를 처음 도입하여 워터 소믈리에를 양성하여 '워터 소믈리에의 대부'고 부른다. 2000년부터 보이차에 빠져 운남성 보이차산을 구석구석 20회 이상 다니면서 보이차의 진실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와인, 한국의 먹는 샘물, 한국 차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고재윤교수 jayounk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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