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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하의 와인스케치북] 와인 스노브(Wine Sn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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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21.07.20  10: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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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스노비쉬’(Snobbish, snobby, snob 같은) 한 주(州,state)가 어디인지에 대한 조사를 다룬 기사를 최근에 읽은 적이 있다. 이는 미국의 한 취업사이트가 만든 4가지 영역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취득한 주를 의미하는데, 그 기준이란 것이 다음과 같다. 대학 졸업자의 비율과 예술 혹은 인문학 학위 취득자의 비율, 그리고 해당 주가 보유 한 아이비 리그 대학(미국 북동부에 위치한 8개 명문 대학)의 수,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연간 소비되는 그 지역 와인의 양이다. 그리하여 그 영예의 주인공은 미국의 동부에 있는 매사추세츠(Massachusetts)가 된다는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 누구나 한 번은 들어 알고 있는 그 학교, 하버드 대학이 있는 동네 말이다.

위의 기사는, 그들의 스노비쉬 함을 알기 위해 예를 들어 출신 대학 따위를 묻는 수고는 필요 없다고 이야기한다. 묻지 않아도 그들이 스스로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내가 나온 학교’ 등으로 말하지 않는다. 자랑스러운 단 하나의 고유명사, ‘하버드, 예일’ 등이면 너무나 충분하다. 그 곳의 엘리트 대부분은 스스로가 비 엘리트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는 신랄한 말을 덧붙이며 이 짧은 기사는 마무리된다.

기자가 지적하듯, 스노비쉬 함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들이 공부를 얼마나 많이 하고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어 보이는 와인 소비량이 그 기준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특이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방에 틀어박혀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조용히 마시지 않는 이상, 와인은 누군가와 함께 마시는 경우가 많아 그 무엇보다 사회적이고 사교적인 음료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마시는 와인의 종류와 가격, 와인을 대하는 태도와 이를 둘러싼 지식들이 계속해서 노출된다.

▲ 마시면서 해야 할 것이 많고, 할 말도 많아지는 것이 와인인가 보다. <사진=송정하>

스노브 하면 와인이고, 와인 하면 스노브다. 나의 영어 공부가 늦되어서 그런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부끄럽게도 와인을 알기 전에는 스노브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가치관의 스펙트럼이 극단적으로 다양한 서양에서는 이 와인 스노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은 것 같다. 남의 속을 뜨끔하게 하는 거침없는 말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미국의 작가, 프란 레보비츠(Fran Lebowitz)는 이런 말을 했다.

“위대한 사람들은 이상에 대해 논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저런 일들을 말하지만,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은 와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잔을 돌리는 장면만 봐도 질색을 한다. 그러면 나는, ‘아니요, 그냥 와인 향을 좀 더 잘 맡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 밖의 다른 이유는 조금도 없어요’라며 마치 사무친 억울함을 풀 듯 해명 아닌 해명을 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와인 잔에 코를 깊숙이 집어넣었다 뺀 후 버터 향 혹은 휘발유 향 따위가 느껴지기라도 하면 이 사실을 상대방에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그만두고 말 때가 있다. 이럴 때는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한 것이온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이라고 대꾸하는 어린 장금이의 솔직함이 부럽다. 하지만, ‘이 와인은 뭐랄까, 백단향? 혹은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테루아를 보여주는 덤불 숲 속의 허브 향… 그렇지! 이건 분명 에스트라공이에요. 타라곤 향 말이에요’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다. 백단향을 직접 맡아본 적이 없으며, 선택한 단어들은 내게도 매우 생소하고, 설명하는 방식은 너무도 진부하여 그래서 웃기고, 결국엔 공허해지고 만다.

그런데 스노브(Snob)가 대체 무슨 뜻일까? 국어사전에서 스노브란 단어를 찾으면, ‘속물, 잘난 체하는 사람, 재물 숭배자’ 등의 표현이 나온다. 세속적인 일과 재물에 관심이 많다 하여 비난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위선자에 가까울 것이다. 여기에 덧붙인, ‘잘난 체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귀여울 정도다. 그럼 스노브에 아무 문제는 없는 것일까?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스노브란, ‘외모를 포함한 사회적 위치와 인간의 가치 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며 또한 교육 수준을 비롯해 자신보다 사회적 위치가 낮은 계층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들은 대개 다른 이들과의 차별성을 두는 것에 민감하며 이는 종종 과시적인 소비 행태로 나타나고, 그중 복잡하고, 어려우며 비싸다는 인식이 많은 와인을 소비하는 일보다 그들의 스노브함을 보여주기에 적절한 것은 없다고 한다.    

와인 스노브란 단어가 꽤 트렌디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사실 이것이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미국의 와인 매거진 <와인 인수지애스트(Wine Enthusiast)>는 고대의 술을 연구하는 고고학자 트래비스 럽(Travis Rupp)의 말을 인용하며, 와인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계층을 구분 짓는 잣대로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로마제국의 수많은 정치가와 학자 즉 ‘진정한 로마인’들은 와인을 마시고, ‘나머지’들은 맥주를 마셨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가 그의 저서 <일리아드(Iliad)>에서, 와인은 특별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자만이 마실 수 있는 음료로 묘사한 걸 보면, 와인과 맥주를 바라보는 인식이 이미 그리스에서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의 지배자가 되어 기독교라는 유일신교를 받아들인 후, 와인은 그리스도의 피 즉 ‘성스러운 것’이 되어 그야말로 ‘신의 물방울’이 되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1%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들은 여전히 맥주 등을 마시는 이단이며, 야만인으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모든 걸 가지고 태어나거나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이 달랐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처한 상황이 사람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결정 짓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특별할 것도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사람의 사려 깊은 마음이 아닌 물질에 너무 많은 의미와 감정을 부여할 만한 감성적인 DNA도 갖추지 못하고 태어났다면, 이를 이용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치의 높낮이를 부여하는 일도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가진 무언가로 타인을 평가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다 최근 길을 걷다가 아는 사람의 메신저 프로필에 올라온 사진을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코로나와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를 피해 지방으로 내려가 가족들과 조촐한 캠핑을 하고,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걸맞게 토마토와 오이 등 알록달록한 채소를 이용한 음식을 준비한 테이블을 사진으로 찍어 올려놓은 것이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샐러드 접시 위에서 가족들과 건배하는 모습의 와인이었다. 이 숨 막히는 폭염에, 어린잎채소로 가득한 한 상에, 와인 잔 밑이 안 보일 정도로 시커먼 레드와인이어야만 했을까? 다른 와인은 없었을까?

또 한 번은 친구가 연락을 해왔었다. 언젠가 한 번 외국에서 정말 맛있게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 찍은 와인병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어딜 가면 이 와인을 다시 맛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여러 곳을 수소문해 보았지만 그것과 똑같은 와인을 파는 곳을 찾지 못해 그녀가 마신 와인과 비슷한 다른 와인 몇 개를 소개해 주었다. 상황에 수긍을 하면서도 어째 내가 추천한 와인을 사 마실 생각은 없어 보이고 그녀가 찾는 와인을 구하지 못해 내내 아쉬운 얼굴이다. 생전에 세상의 수많은 와인을 다 마셔 보지도 못할 텐데 이미 마신 똑같은 와인을 고집하는 그녀가 나는 오히려 더 아쉽고 급기야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외출을 하다가 들린 공중 화장실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 순간, 마치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베어 물었을 때 느꼈을 수치심 비슷한 것을 느꼈다고 하면 너무 호들갑스러운 표현 인지도 모르겠다. 외국의 유명 디자인 학교를 졸업했다는 어느 패션 디자이너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이런 조언을 한다면 어떨까. ‘지금 입고 있는 그 옷이 최선인가요? 각자에게 맞는 옷의 조합이란 것이 있거든요. 그냥 안타까워서 그래요. 당신을 충분히 돋보이게 해 줄 아이템이 있거든요.’

지난 글에서 입맛과 취향의 개방성을 강조한 나는, 정작 낯선 것에 대해 얼마나 도전적인가. 늘 마시던 커피만 마시고,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이 그 나라의 면적만큼이나 다양하다는 중국요리점에 가서도, 죽으라고 짬뽕 아니면 짜장면만 먹는다. 신맛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구수한 쓴맛이 일품이라는 로부스타(Robusta) 원두로 만든 커피는 마셔 보지도 않고 내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며, 중국의 모든 음식은 느끼할 것 같다는 이유로 다른 것은 아예 시도해 보지도 않는다. 그런 내가, 더없이 특별한 경험이었을, 외국에서 마신 그 와인의 맛을 잊지 못해 적지 않은 값을 지불하고 마셔야 할 다른 와인을 두고 망설이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프랑스 브르타뉴 출신으로서, 캐나다 퀘백으로 이주한 후 30년간 와인 교육 분야에서 일 한 자크 오롱(Jacques Orhon)은 몇 년 전 <와인 스노브(Le Vin Snob)>란 책을 펴 냈다. 그는 한 기사의 인터뷰에서, 기상학, 지리학, 화학, 생물학 등에 정통한 척하는 ‘스노블리에(스노브(Snob)와 소믈리에(Sommelier)의 합성어)’가 판을 치는 현실을 개탄하며 이들이 와인을 너무 복잡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러고는 와인 앞에서는 늘 겸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와인 앞에서’라는 말을 썼지만, 나는 ‘와인을 만드는 사람과, 와인을 마시는 사람 앞에서’라고 이해하고 싶다. 그러면서 그는 상대방을 가르치려 들면 안 된다고 말한다.

나는 촌스럽건 말건 누가 뭐래도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싶고, 폭염에 머리카락이 이마에 들러붙어 쪄 죽는 한이 있어도 앞머리를 고수하고 싶다. 그게 내 얼굴을 더욱 납작하게 보이게 할지라도 말이다. 한 번 먹어본 커피가 맛있다는 이유로 늘 같은 곳의 커피만 마시고 싶다. 길지 않은 인생에서 나만의 황금비율을 찾지 못할지 언정, 더 많은 세계를 경험할 수 없을지 언정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

와인을 소개하고 마시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은 어릴 적 학교 선생님을 생각나게 하는 일인 것 같다. 책과 친해지려면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 한다. 역사에 흥미가 있으면 역사를 다룬 만화책부터 시작하면 된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나아가 E.H 카(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전혀 다르게 제9의 예술이라는 만화 자체에 관심이 생겨 새로운 영역을 찾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멋있고 가치 있는 일이다. 숭고한 직업을 고르는 일이 이럴진대, 하물며 먹고 마시는 일에 옳고 그름이나 가치의 높낮이 란 있을 수 없다. 오크 풍미가 진동하는 와인만 찾더니 몇 년 후 그는 위스키 매니아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와인을 마시는 즐거움을 알고 그로 인해 잠시나마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들의 입맛이 내 입맛이 아닌 것처럼, 내 취향도 그들의 취향은 아니다.

그나저나 와인은 왜 이렇게 복잡한 걸까? 와인을 그토록 사랑한다는 자크 오롱은, 조금 부끄러운 취미라며 인터뷰 말미에 이런 고백을 했다. 마라톤 과도 같은 기나긴 와인 시음이 끝난 후 한 잔 들이켜는 맥주가 그렇게나 좋다고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와인 학교 시절, 학교 식당에서 만난 교장 선생님의 점심 식사가 떠오른다. 평생을 와인 양조와 교육에 종사하고, 당시 은퇴를 1년 앞두고 있던 그가 식사를 하기 전 마시던 콜라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강의를 끝낸 후 탁! 하며 경쾌하게 콜라 캔을 따는 그 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것 같다. 선생님도 복잡한 와인의 세계로부터 잠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 송 정 하

법대를 나왔지만 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 프랑스 보르도로 떠났다. 보르도 CAFA에서 CES(Conseiller en sommellerie:소믈리에컨설턴트 국가공인자격증), 파리 Le COAM에서 WSET Level 3를 취득했다. 사람이 주인공인 따뜻한 와인이야기를 쓰고 싶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송정하 noellesong0520@gmail.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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