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나는 유치원 수업이 있다. 당근과 오이가 주제였는데, 많은 어린이들이 싫어하지만 사실은 맛도 있고 몸에도 좋으니 많이 먹으라는 내용이었다. 당근과 오이를 좋아했던 나는 나처럼 당근과 오이를 좋아하는 어린이가 많을 텐데 어른들이 괜히 이런 식으로 얘기해서 애들이 당근과 오이를 싫어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근 케이크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다 큰 어른 주제에 괜히 우쭐했던 기억이 난다. '거봐, 당근 좋아하는 사람 많잖아' 하고.

▲ 제주 당근으로 만든 당근 케익

당근은 우리나라 식단에서 정말 자주 등장하는 야채다. 찌개, 볶음, 카레 등에 많이 쓰인다. 당근의 붉은색은 음식의 색감을 살려주고, 생 당근의 아삭한 식감이나 익힌 당근의 달콤한 맛은 음식에 특색을 더하기 좋다. 

그래서 당근은 음식 좀 해 먹는다 하는 집이면 항상 구비하고 있는 상비 야채다. 아무리 작은 슈퍼라도 야채를 판매하는 곳이면 당근은 사철 진열해 놓고 있다. 요즘에는 서양식 조리법이 많이 도입되어 당근을 활용한 빵, 케이크도 흔히 접할 수 있다. 사철 너무 쉽게 접할 수 있어 잊기 쉽지만 당근도 제철이 있다. 오늘 다룰 제주 당근은 바로 지금이 수확철이다.

▲ 수확 중인 당근밭

제주, 그중에서도 동쪽에 위치한 구좌읍은 우리나라 최대의 당근 산지다. 우리나라 당근의 70%가 제주산이고, 50% 이상이 구좌산이다. 화산재로 이루어진 구좌읍의 흙은 다른 지역의 땅보다 부드럽고 배수가 잘 된다. 육안 상으로 봐도 새까맣고 만져봤을 때 부슬부슬하다. 제주 다른 지역의 토질과 비교해봐도 확연히 다르다. 덕분에 당근이 뿌리를 쭉쭉 뻗으며 맛있게 자랄 수 있다. 실제로 이 곳의 당근이 다른 곳의 당근보다 맛과 향이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한 눈에 보기에도 토양이 검고 부슬부슬하다.

이 맛있는 당근은 (당연히!) 제철에 먹으면 더 맛있는데, 수확한 직후라 아삭아삭한 식감이 살아있고 수분이 가득하며 맛과 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제주는 날씨가 따뜻한 덕분에 당근을 여름에 파종해 겨울에 수확한다. 다른 계절에는 이 당근을 저장했다가 파는 경우도 있고, 가을이 제철인 강원도 당근이나 하우스 재배를 하는 부산 당근을 팔기도 한다.

▲ 갓 수확한 제주 당근

제철 당근을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농장 직구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면 주문 즉시 수확해서 택배로 보내주는 곳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요즘 마트에서 파는 당근도 대부분 제주 당근일 가능성이 크지만 이렇게 주문해 먹으면 더 확실하고 신선한 당근을 먹을 수 있다. 다만 단위가 5kg, 10kg로 큰데, 당근은 다행히 다른 야채에 비해 저장성이 좋다. 흙이 묻은 채로 신문지에 싸서 냉장고나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된다. 신문지에 싸는 것은 건조하게 보관하기 위함이므로 봉지에 넣어 보관할 때는 봉지 안에 키친타월을 깔아준다. 키친타월이 축축해질 때마다 교체해주면 1달 넘게 보관해도 끄떡없다. 마트에서 당근을 골라서 산다면 표면이 매끈하고 올곧으며 만져봤을 때 단단한 것이 좋다. 조리 시에는 보통 껍질을 깎아 내지만, 사실 당근의 항산화물질은 껍질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깨끗이 씻어 껍질 그대로 쓰는 것이 좋다.

▲ 당근은 신문지에 말아 냉장고 야채칸에 보관한다. 장기간 보관할 경우 줄기도 바짝 잘라준다.

올해는 코로나로 전반적으로 소비가 침체된 반면 당근의 생산량은 늘었다. 덕분에라고 할까 소비자가 당근을 접할 기회는 늘었다. 당근의 가격은 저렴해졌고, 현지에서는 가격 폭락을 막기 위해 고품질 당근만 선별 출하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등에서도 제주 당근을 활용한 제품을 한시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몇 안 되는 겨울 제철 야채인 당근으로 맛과 건강을 동시에 챙겨 보는 건 어떨까? 

 

* 지난 4년 간 연재해 온 '솜대리의 한식탐험'은 이번 화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연재는 종료하지만 그간 연재했던 내용은 내년 초 책으로 출간 예정이며, 그 외에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더욱 흥미롭고 맛있는 한식 이야기를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그간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며 앞으로도 솜대리의 다양한 탐험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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