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명치유신을 전후하여 정부 관리들을 해외로 파견하여 선진문물을 배워올 수 있도록 장려하였다. 이때 일본 관리들은 서구 선진문물을 배우기도 했지만, 와인을 마시면서 식사하는 모습에 반하여, 일본에서도 와인을 만들어서 유럽과 같은 와인문화를 정착시키려고 와인용 포도재배와 와인양조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 메이지(明治, 1868-1912)시대에는 식산흥업(殖産興業)의 일환으로 포도재배와 와인양조를 장려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주식인 쌀이 부족하여 쌀로 술을 만드는 것보다 과일로 술을 만드는 것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 1870년 야마니시에 야마다히로노리(山田宥教)와 다쿠마노리히사(詫間憲久)가 책과 외국인에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포도주공동양조장(ぶどう酒共同醸造所)’이라는 와이너리 설립 → 기술수준이 낮고 와인 부패에 대한 대책 부족으로 1876년 폐업

* 1873년 삿포로에 양조용 포도원 설립 → 풍토에 맞지 않은 유럽 포도 전멸

* 1876년 야마나시 권업시험장 설립 → 1884년 폐업

▲ 프랑스에 파견된 (왼쪽부터) 다카노 마사나리(高野正誠)와 츠치야 류겐(土屋竜憲)

* 1877년 일본 최초의 민간 와이너리인 ‘대일본야마니시포도주회사(大日本山梨葡萄酒會社)’ 설립, 다카노 마사나리(高野正誠)와 츠치야 류겐(土屋竜憲) 두 사람을 프랑스에 파견 → 판매부진, 병충해, 품질의 불안정 등 기술적인 문제와 일본인의 와인에 대한 기호가 맞지 않아 실패, 1886년 해산

* 1880년 효고(兵庫)현에 프랑스식 포도재배시험장인 ‘국영 반슈우포도원(國營播州葡萄園)’을 개설 → 풍토에 맞지 않은 유럽 포도 전멸

이렇게 관 주도의 식산흥업정책은 야마나시 등 여러 곳에서 실패하는데 이는 유럽종 포도의 적응실패, 양조기술 미숙, 일본인의 기호에 맞지 않은 정통 와인의 맛, 즉 시기상조로 영업실패 등으로 보지만, 이는 일본 와인 발전에 초석이 된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준철 winespiri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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