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추천해 달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와인을 배웠다고 하는 내게 많은 기대(?)를 하고 조언을 구할 텐데 내가 그 기대에 부응해서 상대방이 원하는 와인을 찾아낼 수 있을지 어떨지 몰라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와인은 고작 마시는 음료일 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다고 말하고 다니는 내가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인생의 커다란 해답이라도 내놓아야 하는 것 마냥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나 자신이 뭐라 말할 수 없이 어이없을 때가 많다.

와인은 그 종류가 너무도 방대해서 조심스러운 나는 대답을 내놓기 전에 상대방에게 최소한의 몇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유럽의 식문화와 사고방식을 토대로 만든 책과 유럽인의 가르침을 보고 배운 나는 당연하게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늘어놓게 된다. 어떤 음식과 함께 드시려고요? 화이트와 레드 중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산도가 어느 정도 있는 상큼한 타입? 타닌이 풍부하면서도 농익은 과일 향이 돋보여서 밸런스를 이루는 풀 바디 레드 와인? 특별히 선호하는 포도 품종이나 지역의 와인이 있나요? 등등.

나의 장황한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은 매우 간단하면서 또 어렵다. 특히 레드 와인의 경우가 그렇다. ‘와인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어요’라고 말하는 이들 중 많은 사람은 대체로 둘 중 하나의 답을 한다. ‘달지 않은 레드 와인이 좋아요.’ 혹은 ‘저는 입맛이 초딩이라서요, 좀 달달한 레드 와인은 뭐가 있어요? ‘라고 말이다.

나는 이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 꽤 당혹스러웠다. 와인을 공부하고 마시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레드 와인의 기호에 대한 구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째서 드라이한 레드 와인만 생각한 걸까? 음료의 취향을 물으면서 친근함의 원천인 단맛이라는 원초적인 맛을 잊은 채 바디와 타닌, 포도 품종 등의 용어만 늘어놓았으니 어떻게 보면 참 편협하다.

달달한 레드 와인을 찾는 경향은 우리나라의 와인 소비 문화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이들 중 대부분이 어떤 음식과 함께 마실 거냐는 질문에 관심이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양에서 와인은 식욕을 돋우고 음식을 보완하는 것으로서 음식의 일부인 반면에 우리나라는 와인이 식탁에 매일 오르내리는 음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개는 식사와 별도로 식후에 간단한 안주와 함께 마시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서양의 기준으로 보면 디저트 와인인 셈이다. 단맛을 매우 사랑하는 서양인들은 식사가 끝나면 초콜릿이든, 케이크든, 달콤한 와인이든 무조건 단 걸 먹어줘야 하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달콤한 디저트는 식사를 개운하게 마무리해 준다고 한다. 그러니 초딩 입맛이라며 너무 수줍어할 필요는 없다. 지치고 고단한 하루의 끝에서 단맛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익숙하지 않아 씁쓸할 정도로 느껴지는 레드 와인을 굳이 마시려고 한다면 삶이 더욱 씁쓸해 질지도 모른다.

▲ 적당한 단 맛은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림=송정하>

그런데 와인의 단맛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달콤한 와인이라고 해서 와인에 설탕을 들이붓지는 않는다는 건 모두 알 것이다. 와인의 당도는 효모가 당분을 알코올로 전환하는 발효 과정에서 좌우된다. 단 맛을 잔당(Residual sugar)이라고 하는데, 잔당은 발효가 끝난 와인 안에 발효되지 않고 남아 있는 포도의 당분을 말한다. 대개 리터당 4~9g의 잔당을 가지고 있는 와인은 드라이하다고 하며 스위트 와인은 보통 35g 이상의 잔당을 함유하고 있고, 그 중간 정도의 잔당을 가진 와인은 오프드라이(off dry)로 분류된다.

과거에는 와인의 발효 과정에서 효모가 충분히 활동하지 못해 자연적으로 당도가 높은 와인이 만들어지곤 했지만 현대에는 생산자가 의도적으로 스위트 와인을 생산한다. 즉 모든 당분이 알코올로 변화되기 전에 발효를 일찍 중단 시켜 잔당은 많고 알코올 도수는 낮은 와인을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약 16~23%의 만만치 않은 알코올 도수를 가지고 있는 레드 와인도 볼 수 있다. 이는 발효가 진행되는 중간에 발효 균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와인에 특별한 향이 없는 증류주(브랜디)를 넣는 주정강화 와인으로서 포트(Port)가 대표적이다. 이렇듯 스위트 레드 와인의 경우 알코올 도수가 꽤 극단적이다.

사실 달콤한 레드 와인은 주정강화 와인을 제외하고는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레드와인은 드라이하기 때문이다. 간혹 딸기나 진한 체리처럼 농익은 과일의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마셨는데 달기는커녕 꽤 떫고 씁쓸하게 느껴지는 와인이 있다. 프루티(Fruity)함은 향기와 냄새의 차원이고 달콤함(Sweetness)은 혀로 느끼는 미각 즉 맛의 차원으로서 그 두 감각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달한 레드 와인은 존재한다. 섬세하게 올라오는 기포가 매력적인 스파클링 와인부터 거품이 없고 가벼운 타입의 스틸 와인, 묵직한 감칠맛이 돋보이는 알코올 강화와인 몇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브라케토 다퀴(Brachetto d’Acqui)

브라케토는 포도 품종이자 와인 이름이다.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Piemont) 지역 최고의 스위트 와인으로서 딸기, 체리, 장미 등 화사하고 강렬한 향으로 유명하다. 달콤한 맛이 두드러지도록부드러운 거품이 매력적인 스파클링 스타일로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종종 달콤한 모스카토(Moscato) 스파클링의 레드 와인 버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초콜릿을 베이스로 한 디저트와 신선한 과일과 함께 마시면 더욱 좋다.

람브루스코(Lambrusco)

파르마산 치즈(Parmesan Reggiano)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북동부 에밀리아 로마냐(Emilia-Romagna)에서 생산되는 람브루스코는 사실 여러 개의 품종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스파클링 와인으로 만드는데, 드라이(세코, Secco)에서부터 스위트까지 다양하게 생산된다. 과일 풍미가 강한 오프드라이 스타일인 세미세코(Semisecco), 당도가 40g 이상 되는 매우 달콤한 스타일의 아마빌레(Amabile)와 돌체(Dolce)가 있다. 딸기와 베리 계열의 진한 과일향이 돋보이는 람브루스코는 역시 알코올 도수가 낮고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도른펠더(Dornfelder)

거품이 나지 않는 가벼운 타입의 레드 와인으로서 독일에서는 대중적인 와인이다. 독일의 대표적 품종인 리슬링처럼 드라이에서부터 스위트까지 다양한 타입의 당도가 있는데, 달달한 맛을 원한다면 라벨에서 스위트를 의미하는 쉬스(Süss)를 찾으면 된다. 체리와 신선한 블랙베리, 시나몬 향을 느낄 수 있다.

포트와인(Port)

포르투갈의 북부 도우루 밸리(Douro valley)에서는 토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 틴타 로리츠(Tinta Roriz) 등의 풀 바디 적포도 품종을 사용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저트 와인인 포트를 생산한다. 이는 발효 중간에 증류주를 첨가하여 알코올 농도(약 20%)와 당도를 높인 대표적인 알코올 강화와인이다. 숙성 방법에 따라 여러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가장 가벼운 타입인 루비(Ruby), 장기간 오크통 숙성을 거쳐 부드러운 맛을 지닌 토니(Tawny), 최고급 포트인 빈티지 포트(Vintage Port) 등이 있다. 달콤한 베리 향과 감초 향이 뿜어져 나오는 매우 달달한 와인이지만 풍부한 타닌이 맛의 밸런스를 유지해 준다. 전통적으로 블루치즈나 초콜릿과 완벽한 궁합을 자랑한다.

한편 프랑스 남부 랑그독 루시용(Languedoc Roussillon) 지방에서는, 발효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포도 증류주를 첨가하여 질감이 풍부하고 포도의 단맛이 느껴지는 주정강화 와인을 만드는데 이를 ‘뱅 두 나튀렐(VDN, Vin Doux Naturel)’이라고 부른다. 포트와 비슷한 방법이지만 레드 와인의 경우 그르나슈(Grenache) 품종을 사용하며 최종 알코올 도수는 포트보다 조금 낮은 편이다.

그 밖에 흔하지는 않지만 이탈리아 북부에서 생산되며 달콤한 체리향과 계피향이 나는 라이트 바디 타입의 스키아바(Schiava), 주정 강화된 포트 스타일로서 시라즈(Shiraz)로 만드는 호주식 토니(Tawny) 등이 있다.

적당한 단 맛은 삶에 에너지와 활기를 준다. 그러니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말 해보자. ‘’오늘은 긴 하루였는데 기분 좋게 한 잔하고 마무리 하려구요. 브라케토 다퀴 있나요?’’라고 말이다.

▲ 송 정 하

법대를 나왔지만 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 프랑스 보르도로 떠났다. 보르도 CAFA에서 CES(Conseiller en sommellerie:소믈리에컨설턴트 국가공인자격증), 파리 Le COAM에서 WSET Level 3를 취득했다. 사람이 주인공인 따뜻한 와인이야기를 쓰고 싶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송정하 noellesong05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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