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밥 짓기의 조리 알고리즘에 관해 이야기했다. 잠깐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 그림과 같은 밥 짓기가 최적의 밥 짓기라는 것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예전 글을 다시 봐도 된다. (밥이 답이다 32번째)

▲ 최적의 밥 짓기 알고리즘 <자료=박성환>

자세히 최적의 밥 짓기 그래프를 보면 대기압 수준, 다시 말해 1기압의 압력으로 지은 밥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주요 밥솥 회사들이 2기압의 초고압으로 밥을 짓는 밥솥을 출시했다고 광고하기 시작했다.

물론 초고압 밥솥은 현미나 잡곡밥 짓기에는 탁월한 밥솥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가장 칭찬받을 부분은 마케팅이지 않나 싶다. 왜냐하면 이미 국산 IH 밥솥은 취반 중 내부 기압이 1.8~1.9기압 정도의 고압으로 밥을 짓고 있었고, 일본 밥솥들(1.2~1.5기압)과 비교해도 더 높은 압력과 온도로 가마솥 밥맛을 구현하는 밥 짓기를 하고 있었다. 전부터 거의 2기압에 근접한 압력으로 밥을 지었던 것을 마케팅적으로 잘 풀어내었다.

잡곡과 현미에서는 확실히 IH 초고압 밥솥이 맛있게 밥이 된다. 하지만 백미로 바꾸면 품종에 따라 꼭 초고압이 최선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무조건 초고압이 좋은 것은 아니다. 흰밥을 짓기 위해서는 초고압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전에 필자가 밥솥 이야기에서 뚝배기로 지은 밥이 제일 맛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뚝배기로 지은 밥 다시 말해 1기압으로 지은 밥이다. 밥솥 회사들이 이제는 무압 밥 짓기가 되는 밥솥이라고 다시 새로운 밥솥을 출시했다. 물론 비약적인 발전과 기술의 차이는 있지만, 그냥 일반 전기밥솥이 다 무압인데 이걸 다시 출시했다는 거다. 엄밀히 말하면 일반 전기 밥솥과 IH 밥솥의 무압은 조금 다르다. 일반 전기밥솥은 전열 마이콤 방식이고, 압력밥솥은 다 IH 방식이기에 가열하는 방식이 다른 거다.

그러니 10만 원 정도의 일반 밥솥 밥맛과 40~50만 원이 넘는 IH 밥솥의 무압 밥맛을 동일한 쌀로 밥을 해 비교한다면 당연히 IH가 밥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럼 이제 식품공학적으로 최적의 밥 짓기의 알고리즘과 IH 밥솥의 초고압과 무압의 알고리즘을 비교해 볼까 한다.

취반 중 밥솥 내부 온도와 압력의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TMI 데이터 로거를 넣고 밥을 지어 보았다. 밥 짓기에 사용한 모델은 C사의 50만 원대 10인분용 고급형 모델이다.

▲ 초고압과 무압의 알고리즘 <자료=박성환>

위 그래프를 보면 초고압 밥 짓기는 위에 소개한 이상적인 밥 짓기 알고리즘과 유사하다. 단지 온도와 압력이 더 높을 뿐이다.

취반 10분 후 정확히 내부의 온도는 100℃에 도달하고 13분 후에 기압은 2기압에 도달했다. 최고 온도는 120.4℃에 최고압력은 2,021mbar였다. 전체 취반 소요 시간은 30분으로 이상적인 그래프였다.

그에 반에 무압 밥 짓기는 취반 후 50℃ 구간에서 약 10분간 머무르다가 다시 온도가 상승한다. 그래서 취반 후 98℃까지 도달하는데 무려 28분이나 걸렸다. 최고 온도는 99.4℃에 최고 압력은 1,010mbar, 전체 취반 시간은 45분이었다.

가열 후 끓기 시작하는 비등점까지 소요 시간이 10분이어야 이상적인 밥 짓기가 된다. 그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경우 밥이 촉촉하지 못하고 좀 마른 느낌이 들 수 있다. C사의 저가형 일반 마이콤 밥솥의 경우 약 19분 만에 비등점에 도달했는데, IH 밥솥의 경우 이보다 더 오래 걸렸다. 

IH 밥솥의 무압 그래프 모양은 레토르트 식품의 살균 알고리즘과 유사했다. 바로 120℃까지 온도를 올려 살균을 하는 식품이 있는가 하면 90~95℃에서 10분 정도 머무르다가 120℃ 이상 온도를 올려 살균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살균기 설정 온도를 120℃까지 올린다고 해도 실제 식품의 심부 온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충분히 중심까지 열을 받아야 원하는 살균 온도와 살균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스포츠의 역도로 비유하자면 인상과 용상의 차이다.

인상보다 용상의 기록이 더 좋은 건 한번 클린 동작 후 들어 올리기 때문이다.

50℃ 구간에서 거의 10분 정도 머무르는 것도 이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 왜 하필 50℃일까? 그건 쌀의 호화개시 온도와 관련이 있다. 쌀은 품종마다 다르지만 약 60~70℃ 호화가 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곡물이 익기 시작한다는 거다. 어설픈 온도에서 익히면 이건 산 위에서 밥 짓는 거와 같으니 맛있는 밥이 될 리가 없다. 그러니 호화 개시 온도 바로 아래에서 충분히 열을 받게 한 후 바로 온도를 올려 제대로 호화가 되게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기업 기밀에 속하는 자료이기에 자사의 조리 알고리즘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자사의 최신 제품이 얼마나 더 빨리 더 맛있게 밥이 되는지를 홍보하기 위해 오히려 알고리즘을 마케팅 자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아래 그래프는 T사의 취반 알고리즘으로 ‘가변W압력’이라는 독특한 취반 알고리즘을 설계했다. 1.25기압에서는 밥알이 찰지게 밥을 짓고 그 후 압력을 1.05기압으로 바꾸어 밥알이 하나하나 살아있게 부풀어 오르게 밥을 짓는다. 2기압에서 밥을 지으면 훨씬 찰지게 지을 수 있지만, 높은 압력으로 밥알을 누르게 되니 하나하나 외관이 좀 나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잡곡밥이나 현미에서 초고압 취반이 유리하지만, 일반 백미에서는 품종에 따라 잘 선택해야 하는 필요도 있다.

▲ T사의 조리 알고리즘 <자료=박성환>

예전에 우리나라 회사마다 무균밥 공정에 대해 설명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자료를 보면 훨씬 이해가 쉽다. (밥이 답이다 46번째)

이제 그 원리를 알았으니 천편일률적인 밥 짓기보다는 다양한 품종의 쌀로 다양한 밥 짓기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내 입맛에 딱 맞는 밥맛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1기압 = 1,013.25mbar

* 마이콤 (Micom) – 단순 전열기를 디지털 센서에 의해 온도를 제어하는 방식으로 바닥만 가열되어 IH보다 화력이 약하다.

* IH (Induction Heating) – 유도가열 방식으로 자력선에 의해 가열되기에 솥 전체를 가열할 수 있어 훨씬 높은 화력으로 밥을 지을 수 있다.

* 역도 경기 인상(Snatch) – 바벨을 잡고 단 한 번의 동작으로 바닥에서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는 경기

* 역도 경기 용상(Clean & Jerk) – 바벨을 잡고 일어서면서 어깨의 쇄골까지만 들어 올리는 Clean과 그 후 무릎 반동과 같이 바벨을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는 Jerk 두 동작으로 들어 올리는 경기

소믈리에타임즈 박성환 칼럼니스트 honeyric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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