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생산하는 국가마다 대표 포도품종이 있다. 예를들어 독일은 리슬링, 스페인은 템프라니오, 뉴질랜드는 소비뇽블랑, 아르헨티나는 말벡, 남아공은 피노타쥐 등이 주로 대표품종으로 알려져 있는 것들이다. 물론 해당 품종 외에도 우수한 품종이 있을 수 있으나 보편적으로 대표 포도품종은 수확량도 많으며 인지도 또한 높은 품종이 거론된다.

일본의 대표 포도품종으로는 고슈(甲州)가 있다. 고슈 품종은 1300년전 일본땅에 들어와 토착화된 일본 고유의 포도품종으로 2010년 6월 일본의 와인양조용 포도로서 국제와인기구(OIV)에 등록되었다. 과립은 크고 껍질은 핑크색을 띤다. 산미나 과실미에 있어 돌출나게 개성이 있는 품종은 아니라 예전에는 스위트한 타입으로 주로 생산되었지만, 최근에는 고슈만의 시트러스계 특유의 향미를 잘 살려낸 산미 좋은 타입으로 만드는 생산자가 점점 늘고 있다.

일본에서는 10여년전부터 고슈 품종의 잠재가능성에 본격적인 브랜드 개발이 진행되었고 실제로 근래 몇 년간 해외 유수 품평회에서 입상을 거두는 등 좋은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현재 일본내에서 와인 양조용으로 재배되는 포도 중 고슈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16%(3,416t)로서 매년 가장 많이 생산되어지는 대표품종이라 할 수 있다.

▲ 고슈(甲州) 품종 <사진출저: 야마나시현 와인주조조합(山梨県ワイン酒造組合)>

고슈(甲州)의 기원
고슈의 원산지는 유럽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 내에서의 발견에는 야마나시현 고슈시(甲州市) 가츠누마 마을의 카미이와사키(上岩崎), 시모이와사키(下岩崎)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2가지 전승설이 있다.

첫 번째는 교키설(行基説)이다. 일본의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년)의 고승 교키(行基)가 대선사(大善寺)를 건립하던 즈음, 수행 도중 꿈속에서 오른손에 포도를 든 약사여래를 만난다. 교키는 그 꿈을 기뻐하여 약사여래상을 목각으로 만들어 대선사에 안치했는데 이 때 포도나무를 발견했고 그 포도나무를 약초로 길러 마을에 전파하였는데 이것이 ‘고슈포도’의 시작이라는 설이다.

▲ 대선사(大善寺) 본당(사진 좌측) 과 포도를 들고있는 약사여래상(薬師如来像) <사진출처: 일본 대선사 홈페이지>

두 번째는 아메미야카게유설(雨宮勘解由説)이다. 1186년, 카미이와사키에 사는 아메미야카게유(雨宮勘解由)라는 사람이 매년 3월에 행해지는 석존제(石尊祭)에 참가하기 위해 산길을 걷고 있던 중 진귀한 덩굴식물을 발견하고선 이를 집으로 가져간 뒤 잘 키워 5년 뒤에 과실을 맺었는데 이것이 ‘고슈포도’라는 설이다.

이 두가지 설은 모두 설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일본의 고슈품종이 1000년이상 일본땅에서 토착화되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 외에도 고슈포도의 발견에 대한 자료로는 전국시대(戦国期)에 일본의 포도재배를 기록한 선교사의 일기, 고고학적으로는 야마나시 분지의 서부지역 대사동단보(大師東丹保) 유적으로부터 중세의 야생종 포도가 출토된 사례가 있다. 문헌사료에 나타난 고슈지역의 포도를 살펴보면, 에도시대(江戸期)에는 포도를 비롯하여 내륙성 기후에 적응한 여덟가지 과수재배가 이루어져 지역산물로 정착되어 있다고 나오며, 『고슈기행』 등의 기행문과 『카이국지(甲斐国志)』 등의 지역잡지에도 가츠누마가 포도의 산지로 기록되어 있고, 음식도감인 『본조식감(本朝食鑑)』이나 농학자로도 알려진 사토노부노부(佐藤信淵) 등의 기행문 중에서도 고슈지역의 포도가 첫 번째로 꼽힌다고 나와있다. 에도시대 후기에는 재배지가 고후 근교로 확대되고 메이지(明治)시대에는 정부의 식산흥업(殖産興業) 정책에 의해 포도재배 및 와인생산이 산업화되기 시작했다. 

고슈 품종의 DNA
고슈품종의 계통이 명확히 밝혀진 것은 2004년의 일이다. 캘리포니아 UC 데이비스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의 분석에 의해 고슈는 일본에 많이 분포하는 미국품종(Vitis labrusca)이 아닌 유럽품종(V.vinifera)의 교배품종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일본 주류종합연구소의 연구에 의하면 고슈는 유럽품종 중에서도 중국의 「용안(竜眼)」 등의 동양계 유럽품종 그룹에 속하고, 서양계 품종과는 다른 계통인 것도 밝혀졌다. 2013년 주류종합연구소는 고슈 포도의 DNA 감정 결과, 유럽종 포도(V.vinifera)와 중국 야생포도(V.davidii)가 교잡한 것에 유럽종 포도가 교배된 품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용안(竜眼)의 모종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동양계 유럽종 중에서도 용안이나 호탄홍(和田紅)보다도 야생종에 가까운 품종인 것이 판명되었다.

이러한 연구결과에 의해 볼 때, 고슈 품종은 유럽동부 및 코카서스 지역으로부터 인류의 동서교역과 함께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을 거쳐 일본에 상륙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 고슈 품종의 유래 <출처: 일본주류종합연구소 자료>

고슈의 OIV등록 의의
일본에서는 고슈와인의 품질을 향상시키고자 유럽식 재배법과 양조법을 도입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2004년부터 시작된 '고슈와인 프로젝트'는 프랑스 보르도 대학의 양조전문가 드니 뒤부루듀(Denis Dubourdieu)의 지도하에 실시되었는데, 2004년도에는 화이트와인 「KOSHU」가 완성되어 일본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으로서 로버트 파커로부터 높은 평가를 얻었다. 이 외에도 샤토 메르시앙의 「고슈 키이로카(甲州きいろ香)」 와인 또한 로버트 파커로부터 호평을 받는 등 외국 평론가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구축해오고 있다.

또한 야마나시현에서는 ‘고슈 와인을 세계에서 인정받는 와인으로’라는 컨셉으로 2010년부터 「KOJ(Koshu of Japan)」프로젝트’를 추진해 오고 있는데, KOJ는 야마나시현내의 와인 생산자 15사와 고슈시 상공회, 고후 상공회의소, 야마나시현 와인주조협동조합에 의해서 2009년 7월 8일에 설립된 단체이다.

이 단체는 일본을 대표하는 고슈와인의 품질 향상을 도모하고 세계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향상시켜 적절한 마켓 플레이스를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발족되었으며, EU수출을 위해 EU 와인법에 의거하여 고슈와인을 제조한다. 2010년부터 매년 2월에 영국 런던에서 시음회를 갖는 등 EU 각국에서의 다양한 프로모션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KOJ에서는 영국 와인 업계의 세계적 권위자인 '마스터 오브 와인' 자격을 가진 린 셰리프를 컨설턴트로 영입하여 세계 시장에 있어서의 프로모션 방법에의 어드바이스나 기술 지도를 받으면서 활동한다.

▲ 야마나시현 그레이스 와이너리의「그레이스 고슈」와인

오랜 시간에 걸친 고슈와인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 끝에 일본은 드디어 2010년 6월 고슈 품종을 일본 고유의 양조용 포도로서 국제와인기구(OIV)에 등록시킬 수 있게 된다. 이는 일본 고유의 포도품종이 와인양조용 품종으로서 처음으로 세계에 인정을 받았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으며, 일본이 와인생산국으로서 인지도를 높여가는데 있어 힘이 되어줄 것이다. 또한 이로써 일본은 와인병 라벨에 당당히 ‘Koshu’라고 기재하여 EU에 수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 고슈의 OIV 등록까지의 경위

지역 토착품종으로서의 가치
일본이 고슈 품종에 자부심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고슈가 가지는 지역 토착품종으로서의 가치이다. 고슈는 전세계 어느지역에도 없는 일본에만 있는 품종이기 때문에, 고슈로 만든 와인은 다른 와인에서 가질 수 없는 일본의 떼루아 및 지역의 개성을 담아내는 와인이라는 이유이다. 이는 요즘의 와인 트렌드와도 방향을 같이 한다. 

영국의 와인 저널리스트 젠시스 로빈슨은 세계 와인시장 및 와인 소비자의 취향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풀바디 와인에서 라이트바디 와인으로, 레드와인에서 화이트와인으로, 국제품종에서 지역품종으로 소비자의 선호도가 이동하고 있다. 세계의 소믈리에들은 항상 새로운 와인을 계속하여 찾고 있고 ABC(Anything But Cabernet Sauvignon, Anything But Chardonnay)라는 슬로건 아래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샤르도네 등 국제 품종이 아닌 떼루아를 담아낸 지역품종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감안해본다면 일본의 고슈는 천년의 역사를 가진 ‘지역 품종’이라 할 수 있으며, 타 품종들과 차별화되는 개성을 잘 살려낸다면 국제와인시장에서 충분히 경쟁해볼만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1995년도 세계 소믈리에 챔피언이자 국제소믈리에협회(ASI)의 협회장을 역임한 신야타사키(真也田崎)는 자국의 토착품종 고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드라이하고 퓨어한 스타일부터 스파클링, 농축감있는 스위트 와인까지 다양하게 생산되어지는 고슈와인의 공통적 맛의 특징은 씁쓸한 맛이다. 씁쓸한 맛은 일종의 미네랄감으로 파악이 되나 예전에는 그 씁쓸한 맛을 없애고자 부던한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현 시대는 지역와인의 개성이 존중되는 시대로 오히려 고슈다움, 야마나시다움, 그 토지다움의 개성이 가치를 인정받는다. 더이상 샤르도네, 카베르네소비뇽, 메를로 등의 국제품종에 의존하던 시대는 끝났다. 고슈는 일본에만 있는 유일무이한 품종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 야마나시현 시라유리 와이너리의「카츠누마 고슈」. ‘신의 물방울’만화책에 등장한다.

고슈 와인이 가진 섬세하면서 깨끗한 맛은 일식, 특히 어패류와 야채 등의 소재를 살린 요리와 잘 어울리면서 미네랄감 있는 산미는 스시와도 궁합이 좋기 때문에 해외의 포도 품종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실제 유럽에 있는 무수의 일식레스토랑에서 일본와인을 판매하고 있으며 일본와인의 유럽 수출량도 해마다 증가추세를 보인다.

일본정부는 1960년대부터 일식의 세계화를 추진하기 시작하여 일본 레스토랑 해외보급 추진기구(JRO)를 발족하고, 대외 문화홍보 수출정책인 쿨재팬(Cool Japan)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등 꾸준히 일식의 세계화에 힘써 왔고, 2013년도에는 일식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성과를 가져오며 전세계에 일식문화 보급이 크게 확장되었다.

지금 일본 정부는 그 일식에 어울리는 일본와인의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세계 각지의 대사관과 연계하며 영국을 비롯한 유럽, 나아가 전세계를 향한 일본와인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시행중이다. 와인은 국제경쟁이 치열한 상품이다. 지금 일본정부가 국책으로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일본와인 프로젝트들이 향후 10년, 20년 뒤에 국제와인시장에서 일본와인의 위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소믈리에 타임즈 칼럼니스트 정영경 kisa1006@naver.com
(現,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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