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현재를 잡아라’ 혹은 ‘오늘을 즐겨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격언으로 자주 인용된다. 원래는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가 라틴어로 쓴 시 「송가(Ode)」에서 유래한다. 이 격언은 1989년에 개봉된 피터 위어(Peter Weir) 감독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에 등장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윌튼 아카데미 출신으로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괴짜 선생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 분)은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시(詩)에 대한 비평 이론을 서술한 교과서의 서론 부분을 찢어버리게 하고, 세상을 떠난 졸업생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한다. 이를 통해 키팅은 학생들에게 참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시간을 아끼라고,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라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카르페 디엠이라는 이름을 가진 와인도 있다. 동유럽의 몰도바(Moldova)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몰도바는 서쪽으로 루마니아와, 다른 세 방향에서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이다. 전체 면적이  33,846㎢인데 이는 남한의 약 1/3에 해당하며, 인구는 약 350만 명이다. 아주 작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와인강국에 속한다. 와인생산량 기준 세계 20대 와인생산국에 속하기 때문이다.

와인산업은 몰도바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와인과 연관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약 25만 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약 15%에 해당하며, 와인산업은 국내 총생산(GDP)의 3.2%를 차지한다. 전체 국토에서 포도밭이 차지하는 면적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국민 1인당 포도나무 그루수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카르페 디엠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는 가족 운영의 카사 비니콜라 루카(Casa Vinicola Luca)인데 오너인 루카 패밀리는 1924년부터 4대째 와인을 생산해오고 있다. 몰도바의 떼루아를 가장 잘 반영하고 전통적인 양조를 존중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와인을 생산해왔지만 소비에트연방 시절에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여러 해 동안 시베리아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시베리아에서 돌아온 후에는 국영화된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생산함으로 인해 양조의 기술과 지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침내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었고 루카 가족은 2011년부터 카르페 디엠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다. 현재 이 와이너리에서 양조와 운영을 맡고 있는 사람은 이온 루카(Ion Luca)이다. 그는 몰도바의 수도인 키시너우에 카르페 디엠 와인샵도 운영하는데 이곳에서 본인이 생산한 와인뿐만 아니라 몰도바의 대표적인 다른 와인들도 판매하고 있다.

▲ 카르페디엠의 양조와 운영을 맡고 있는 이온 루카(Ion Luca)

카사 비니콜라 루카는 몰도바의 세 개의 와인산지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코드루(Codru)에 10.5ha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몰도바의 토착 화이트 품종인 페테아스카 알바(Feteasca Alba), 페테아스카 레갈라(Feteasca Regala), 토착 레드 품종인 페테아스카 네아그라(Feteasca Neagra), 라라 네아그라(Rara Neagra), 코카서스 품종인 사페라비(Saperavi), 국제 품종인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피노 누아를 생산하고 있다. 2019년 빈티지부터는 최근 몰도바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토착 화이트 품종인 비오리카(Viorica)를 선보인다.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수확은 모두 손으로 이루어지며, 포도밭에서 셀라로 포도를 옮길 때는 엄격하게 온도를 관리하면서 10kg 박스를 사용한다.

▲ 카르페 디엠 레드 와인들

이온 루카가 생산한 와인은 베를린와인트로피(Berliner Wine Trophy), 문두스 비니(Mundus Vini), 아시아와인트로피(Asia Wine Trophy)와 같은 권위 있는 국제와인품평회에서 많은 메달을 받아 그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작년에 열린 아시아와인트로피의 환영만찬에서는 페테아스카 알바(Feteasca Alba)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 공식 건배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유럽에서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 많은 양을 수출하며 2018년부터는 국내에서 화이트 2종, 레드 3종이 수입되어 판매되고 있다.

카르페 디엠의 와인들은 모두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라벨에 담고 있다. 와인뿐만 아니라 라벨을 통해서도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은 이온 루카 자신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것이다. 사실 이온 루카의 아이디어는 양조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페테아스카 네아그라와 사페라비를 각각 50%로 블렌딩한 레드 와인 Bad Boys, 페테아스카 네아그라 40%, 카베르네 소비뇽 35%, 메를로 25%를 블렌딩한 레드 와인 Breaking RED, 라라 네아그라와 피노 누아를 각각 50%로 블렌딩한 Cuvee 19/11에서 그의 창조적인 양조를 엿볼 수 있다.

▲ 카르페 디엠 화이트 와인들

이온 루카는 본인이 생산한 와인의 국내외 판매에만 열중하지 않고 몰도바의 다른 와인생산자들이 국제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고 있다. 2008년에 몰도바 소와인생산자협회(Moldovan Small Wine Producers Association)를 설립하여 10년 동안 회장직을 맡으면서 회원 와이너리들의 와인을 해외에서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는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8년부터는 몰도바 와인소매협회(National Wine Retailers Association)를 회장으로 이끌고 있다. 다수의 국제와인품평회에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국제적인 교류, 와인산지 방문과 여행을 중요시하는 몰도바의 진정한 ‘국제 와인맨’이다. 어쩌면 자신이 만든 와인 브랜드 카르페 디엠의 의미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아시아와인트로피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면서 이온 루카를 처음 만났으며, 2016년에 베를린와인트로피에서 그와 함께 같은 그룹에서 와인심사를 하면서 친구가 되었다. 베를린에서 그에게서 선물로 받은 카르페 디엠 와인을 처음 경험하며 몰도바 와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작년 여름에는 전주에 있는 같은 이름의 명문 와인 모임에서 이온 루카가 참가한 와인 메이커스 디너를 주최하기도 했다.

이 디너에 참가한 사람들은 카르페 디엠 와인의 품질과 가성비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작년 10월 몰도바 정부의 초대로 국경일인 내셔널 와인 데이(National Wine Day, 10월 5일과 6일) 행사에 참가하게 되어 몰도바를 방문하고 싶던 소원을 성취하게 되었다. 이 행사장에서 그리고 이온 루카가 운영하는 와인샵 카르페 디엠에서 그를 다시 만나 우리의 우정을 돈독히 하고 그가 생산하는 와인을 더 친밀하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영원히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다.

▲ 몰도바에서. 왼쪽에서부터 필자, 이온 루카, 아시아와인트로피의 박찬준 디렉터

카르페 디엠 와인 한 잔 마시며 이 글을 쓰는데 호라티우스의 「송가(Ode)」 끝부분이 내 귀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현명하게 살게나, 너의 와인을 마시게, 짧은 인생, 먼 미래에 대한 기대는 줄이게(Sapias, vina liques et spatio brevi spem longam reseces).

지금 우리가 말하는 동안에도, 질투하는 시간은 우리를 시기하며 흐르고 있다네(Dum loquimur, fugerit invida aetas).

현재를 붙잡게, 미래에 대한 기대는 최소한으로 하고(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소믈리에타임즈 박형민(전주와인문화아카데미 원장) stpress@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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