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말 (Cheval Blanc)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샤토 슈발 블랑은 보르도의 우안 생떼밀리옹에서 최고의 명주를 빚어내는 와이너리중 하나다. 로비에는 눈부시게 희고 잘생긴 말의 그림이 돋보인다.

▲ 샤토 슈발 블랑 로비에 걸린 대형 흰 말 그림

이 와이너리는 프랑스 역사에서 선량왕으로 불리며, 부르봉 왕조를 개창한 앙리 4세의 전설이 남아있는 곳이다. 옛날 이곳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날 그가 좋아하는 흰 말을 타고 파리로 떠났다는 것이다. 앙리 4세는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왕 중 한 분이다. 그는 본래 신교도였으나, 프랑스내 30년간 이어진 신교와 구교와의 갈등인 위그노 전쟁을 끝내고, 스스로 구교로 전향하였으며 1598년 낭트 칙령을 내려 종교의 자유를 선포함으로써 프랑스내 종교로 인한 내분을 종식시켰다.  

▲ 동이 트는 슈발 블랑의 새벽

앙리 4세는 오랜 전쟁으로 망가진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재정을 개선하고 농민들에게 세금을 낮춰주고 대신 귀족들에게는 세금을 늘렸으며 상업과 공업의 부흥을 도모하였다.

세느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퐁네프 Pont-Neuf 다리도 앙리 4세 때인 1607년에 완성되었다. 퐁네프란 New Bridge란 뜻인데, 역설적이게도 세느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며,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400년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일요일이면 모든 백성들이 닭고기를 먹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경제발전과 민생안정에도 힘써 백성들로부터 크게 인기를 끌었다. 닭 한마리가 뭐 그리 대수냐 하겠지만, 400년 프랑스에서 주말에 닭 한마리 먹는 것은 획기적이고 꿈 같은 이야기였지만, 그는 그 꿈을 실현시켜 국민들의 칭송을 받았다.

닭은 풍요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상징이 된 것이다. 사실은 이천년 전 카이사르가 골Gaul 족들이 사는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땅을 점령했을 때 이들을 Gaullois골루아 라고 했는데, 라틴어로 Gallus(수탉)과 발음이 비슷해서 프랑스인들을 ‘수탉’이라고 자꾸 놀려대니 오기가 나서 아예 닭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 슈발 블랑의 내정 산책

수탉은 다른 의미로 ‘호색한’ 이란 뜻이 있다. 수탉이 바람기 많은 건 어디나 마찬가지이다. 56명의 정부를 가졌던 앙리4세의 별명은 ‘호색한’ 이었는데, 불어로 Le Vert-Galant, 발정난 수탉이라는 뜻이다. 그의 치하에 완공된 퐁네프 다리 중간에 있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조그만 공원이 나오는데 그 공원의 이름이 Le Vert-Galant(호색한) 공원이다. 바람은 많이 피웠지만, 국민들을 잘 살게 해준 왕, 종교갈등을 끝낸 멋진 왕, 선량왕으로 아직도 칭송 받고 있는 것이다. 

▲ 정원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이러했던 그도, 왕과 귀족들에 대한 분노로 가득찼던 프랑스 대혁명의 환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앙리 4세의 머리 유골이 한 민간 컬렉터에 의해 소장되어 있는 것이 알려져 프랑스가 발칵 뒤집어졌었고, 감식 결과 진짜 그의 머리로 밝혀져 큰 화제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기인 1793년 일부 화난 군중들이 생 드니 수도원에 안장되어 있던 왕족들의 묘를 파헤쳐 부관참시하면서 앙리 4세의 목도 잘려져 버려졌던 것이다. 이 머리는 그동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한 컬렉터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1610년 어느 광신도에 의해 암살당했을 때 입었던 얼굴에 입었던 상처, 귀고리 흔적 등 법의학적으로도 일치하고 방사성 연대측정으로도 일치하여 진품으로 확인된 것이다. 한국 같으면 난리 났을 텐데, 프랑스라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해줘서 회수하지는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오직 산 자만 죽은 자를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

▲ 프라이빗 테이스팅 룸 내부

이러한 앙리4세의 전설을 간직한 샤또 슈발 블랑(Cheval Blanc)은 프랑스 보르도의 우안, 생떼밀리옹에 자리잡고 있다.

불과 7년 전만 하더라도 샤또 오존 Chateau Ausone과 함께 생떼밀리옹 최고의 와인등급인 Premier Grand Cru Classé (A) 에 속한 단 2개의 와이너리였으나, 2012년 이 등급으로 승격한 앙젤뤼스 Angelus 와 파비 Chateau Pavie와 함께 4개의 최고 등급으로 알려져있다.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은 생떼밀리옹에서 아주 길고 화려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832년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이곳 백작 부인의 소유하고 있던 샤토 피작 Chateau Figeac 은 무려 200헥타르에 달하는 큰 포도밭이었으나, 이 땅이 여러 개로 쪼개어져 매각되었고 그 중 뽀므롤의 경계선 너머 샤토 페트뤼스에 이르는 좁다란 자갈 능선의 일부를 포함한 15헥타르의 포도밭을 뒤까스 Ducasse 가문에게 넘기면서 슈발 블랑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때 쪼개져 나온 몇 개의 포도원들은 아직도 이름의 일부에 피작 Figeac이란 이름을 달고 있다. 슈발 블랑으로 출발하기 이전에 이 포도밭은 Le Barrail de Cailloux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통이란 의미였다. 자갈이 무성했던 포도밭의 특징을 따서 지은 이름이었다고 한다.

▲ 슈발 블랑의 포도밭, 아직 봄이 오기 이른 시기이다  

1852년 뒤까스 Ducasse 가문의 딸이 장 로삭 푸르코 Jean Laussac-Fourcaud 와 결혼하면서 슈발 블랑을 지참금으로 가져가는 바람에 이후로는 Laussac-fourcaud 가문의 샤토가 되었다. 로삭 푸르코는 슈발 블랑의 포도밭을 계속 넓혀나갔고, 1871년에 이르러 지금의 41헥타르에 달하는 포도원을 구축하게 되었다.

▲ 시음실 내부

그 때부터 꾸준한 품질향상에 노력한 슈발 블랑은 30년뒤인 1862년과 1867년 런던과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 우수한 품질로 메달을 획득하게 되는데, 지금도 슈발 블랑의 라벨에는 그 메달이 선명히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1998년 루이뷔통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이 샤또를 인수하게 되었고, 2009년 루이뷔통 회사명의로 바뀌게 되었으며, 샤또 디켐 Château d'Yquem과 함께 LVMH그룹의 자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 포도밭에서 바라본 슈발 블랑 와이너리 건물

포도밭의 1/3은 뽀므롤의 경계에 있고, 또 다른 1/3은 자갈토로 이루어진 토양이며, 나머지 1/3은 전형적인 생떼밀리옹 토양구조를 이룬다. 포도밭 전체면적은 41헥타르로, 37헥타르에는 카베르네 프랑이 57%,  메를로가 40%, 나머지는 말벡과 까베르네 쏘비뇽이 식재되어 있다. 연평균 생산량은 슈발 블랑 72,000병, 세컨 와인인 쁘띠 슈발이 30,000병 생산된다.

영화에도 이 와인이 소재로 다루어지기도 했는데, Sideways에서는 피노누아 예찬자인 주인공이 메를로가 블랜딩된 Cheval Blanc 1961 년 빈티지를 페스트 푸드점에서 마시는 장면이 나오며, 1983년 숀 코네리가 주연한 제임스 본드 영화 '네버 세이 네버 어겐'에서 샤또 슈발 블랑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 테이스팅했던 슈발 블랑 2011빈티지, 1999년산 메를로와 까베르네 프랑   

슈발 블랑은 현재 생떼밀리옹에서 가장 현대적인 와이너리 중 하나로 변모했다. 그동안 몇 번의 개보수 작업을 거친 이 와이너리는 보르도 와인 양조기술 분야의 첨단에 서 있다. 지롱드 강 우안에서는 최초로 포도원 땅밑에 배수 설비를 완료했고, 크기가 다른 52개의 온도 조절 시멘트 발효조를 갖춘 2천만 달러짜리 지하셀러를 보유하며, 포도밭 구획별로 분리 양조를 하고 있다.  

▲ 콘크리트 양조설비

독특한 떼루아를 자랑하는 124,000평 포도밭은 포므롤 경계에 3분의 1이 자리잡고 있는데, 모래가 많은 점토 토양과 푸른색을 띄는 점토 토양의 특성을 지녀 인근 페트뤼스와 유사한 토양성분을 갖는다.

1947년산 Cheval Blanc은 가장 인기있는 최고의 빈티지로, 생산량도 불과 수천 케이스였지만, 가장 비싼 보르도 와인의 신기록을 여러번 갈아치운 바 있다. 2010년에 제네바에서 한 수집가에 의해 임페리얼 싸이즈(6L) 한 병이 $304,000에 낙찰된 바 있다. 

▲ 포도밭에서 동면 중에 있는 포도나무

일반적으로 알콜 도수가 높은 와인이 숙성이 더디다고 알려져 있지만, 슈발 블랑 1947년과 1929년산은 14.4%의 높은 알코올 도수에도 불구, 요즘 마셔도 최고의 숙성 상태를 보이는 와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wine-searcher.com에 따르면, 슈발 블랑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찾는 와인 중 하나이며, Top 10 와인 목록에서 9위를 유지하고 있다.

▲ 슈발 블랑의 내정

세컨드 와인으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데, 르 쁘띠 슈발 화이트는 1988년 첫 빈티지가 나왔다. 2014년 또 다른 세컨드 와인인 쁘띠 슈발 블랑을 출시했는데, 소비뇽 블랑과 세미용을 섞어 만들었다.    

슈발블랑은 또한 영화 속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특히 영화 사이드웨이는 1961년 빈티지를 주요 줄거리로 전개되었고, 숀 코너리 주연의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에서, 그리고 2007년 디즈니 영화 라타투이에도 등장했다

▲ 시음했던 슈발 블랑 2011 빈티지

와인계에서는 1980년대 로버트 파커의 샤토 슈발 블랑 방문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있다. 매니저 자끄 에브라는 1981년 빈티지 배럴에 대해 파커가 낮은 점수를 주자, 반발하여 재 평가를 요청했는데, 슈발 블랑에 다시 찾아온 로버트 파커의 다리를 개가 물었다고 한다. 개에 물린 파커는 와인을 다시 시음하고 평가점수를 상향조정 해줬다고 전해져 온다.

김욱성은 경희대 국제경영학 박사출신으로, 삼성물산과 삼성인력개발원, 호텔신라에서 일하다가 와인의 세계에 빠져들어 프랑스 국제와인기구(OIV)와 Montpellier SupAgro에서 와인경영 석사학위를 받았다. 세계 25개국 400개 와이너리를 방문하였으며, 현재 '김박사의 와인랩' 인기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욱성 kimw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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