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 디캔터(Decanter) <사진=Rod Waddington>

디캔팅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침전물을 제거에 있다. 이 찌꺼기는 입안에서 나쁜 감촉을 주며 쓰거나 떫은맛을 내기 때문에 와이너리에서는 이런 찌꺼기를 미리 제거하여 병에 넣지만, 오래 보관한 레드와인은 침전물이 가라앉아 있을 수 있음으로 이러한 와인을 접대할 때는 침전물을 제거할 수 있는 디캔터(Decanter)를 미리 준비하여, 침전물을 제외한 맑은 와인을 조심스럽게 디캔터로 옮긴 후에 글라스에 따라 마신다. 그래서 촛불을 켜서 병목에 침전물이 딸려 나가는지 살피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디캔팅을 하면 와인이 공기와 접촉하여 향미가 훨씬 더 좋아진다는 통념에 따라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디캔팅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숙성이 덜 된 거친 와인을 공기와 접촉하면서 맛이 부드러워진다는 것인데, 과학적으로 따져 봤을 때 와인을 미리 개봉하거나 디캔팅하여 바람직한 향이 증가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0분이나 1시간가량의 짧은 시간에 무슨 화학반응이 일어나 우리가 인식할만한 좋은 향이 나올 수 있을까? 오히려 디캔팅한다면 바람직한 향이 유실될 우려가 훨씬 더 많다.

▲ 오히려 디캔팅한다면 바람직한 향이 유실될 우려가 훨씬 더 많다.<사진=Haldane Martin>

물론 바람직한 변화도 있을 수 있다. 병 안에 나쁜 향이 가득 차 있을 경우는 그 향이 없어지니까 좋게 느낄 수는 있다. 그리고 이런 조작을 하는 동안 셀러에서 꺼내 올 때보다 온도가 더 올라가서 쓰고 떫은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와인이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오래된 고급 레드와인을 공기와 활발하게 접촉시키면 오히려 급격하게 그 질이 떨어질 수 있다. 정말로 공기와 접촉하여 와인 향이 더 좋아진다면 차라리 와인을 잔에 따르고 난 다음에 흔들어 주는 것이 공기 접촉이 더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다.

공기와 접촉시킨다면서 쓸데없이 냄새나는 촛불은 왜 켜놓고, 공기를 불어 넣어준다면 와인을 콸콸 거칠게 부어야지 왜 명주실 뽑듯이 가늘게 디캔팅 하라고 강조하는 것인지 곰곰이 따져보면 그 답이 나올 것이다. 디캔팅은 쇼일 뿐이다. 디캔팅을 하면 손님은 귀빈 대접을 받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고, 그에 따라 와인 맛도 좋게 느끼는 것이다. 와인은 그 자체의 맛보다는 누구랑 언제 어디서 마셨는가에 따라서 맛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 김준철 원장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준철 winespiri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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