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기술 백그라운드 이야기

필자는 현재의 회사를 창업하기 이전에 크게는 비정형 데이터 관리 분야, 좁게는 콘텐츠 관리 시스템(CMS, Content Management System)이라고 하는 분야에서 20년 가까이 일을 했습니다. 고객군으로는 통신회사나 방송사 등과 같은 큰 규모의 웹사이트를 관리하는 백엔드(Back-end) 시스템부터 전력회사의 다양한 센서에서 발생하는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관리하는 기업에서 일을 했습니다.

이런 백그라운드를 가진 저와 저의 동료들이 와인 업계에 들어서게 된 이유는 바로 기존에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와인 업계인데 무슨 소리냐 하실지 모르겠지만, ‘와인’을 하나의 컨텐츠 종류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발생하는 다양한 데이터 정도의 수준이라면 ‘도메인 지식 (Domain Knowledge)’은 필요하더라도, ‘와인’이라고 하는 분야로 한정해서 본다면 기술력 있게 그리고 업계에서 어려워 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와인은 소위 말하는 ‘견적이 안 나오는' 분야이고, ‘감각/감성/인문학' 등이 연결되는 아주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러한 부분은 제 전문이 아니니 제외하고, 이번 칼럼에서는 ‘와인과 데이터’ 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와인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와인 관련 데이터

IT 분야에서는 ‘생태계(Ecosystem)’이라는 단어가 자주 인용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연 그 자체를 생태계라고 하는 것처럼 와인 업계에서의 생태계 역시 와인 업계를 구성하고 있는 '생물, 무생물의 모든 것'을 가리켜 생태계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저는 이러한 와인 관련 생태계 구성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다음의 4가지를 꼽았습니다.

생산자 - 수입사 - 소매점 - 소비자

이러한 구성 요소로부터 발생될 수 있는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실제로는 본 컬럼에서 이야기하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데이터가 있지만, 내부 데이터이거나 획득할 수 없는 데이터는 제외하고 이야기를 진행 하겠습니다.

‘생산자’로부터 발생되는 데이터

‘와인을 생산한다’라는 개념에서 보면 다양한 분야의 관계자들이 해당되지만, 일단 여기에서는 ‘와인을 병입하는 사람'만을 최종적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즉, 와인을 병입한다고 하는 행위 자체를 와인을 최종적으로 생산했다고 가정하고, 그 단계에서 판매라는 행위로 이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다음과 같은 ‘데이터시트(Datasheet)’가 그것입니다.

▲ 보편적인 와인 데이터시트의 모습. 일반적인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음.

위의 데이터시트는 아주 일반적인 것으로 대략 다음과 같은 구성요소를 갖습니다. 

  • 이름

  • 와인 라벨 및 병 사진

  • 빈티지

  • 캐릭터

  • 와인메이킹

  • 품종 구성

  • 테크니컬 데이터

  • 기타 마케팅 요소 (소셜URL이나 웹사이트 주소 등 연락처)

아마 구성 요소에 대한 세세한 차이가 있겠지만 아마 이런 형태를 가지고 배포가 될 것입니다. 위의 데이터시트에서 나오는 내용 이외에도 아주 세세한 데이터까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내용이 표준안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이 데이터시트를 볼 때마다 '왜 표준이 없고 생산자 별로 다르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즉, 와인 생산자 단계에서 표준안을 가진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야 하지, 어떤 생산자는 어떤 항목을 제공하고, 어떤 생산자는 해당 항목을 제공하지 않고 다른 항목을 제공한다고 한다면 해당 데이터를 활용해야 하는 수입사에서는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 와인 분야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인 와인특강. 저자는 와인 데이터시트에 오크통 사용에 대한 부분이 꼭 명기되었으면 한다고 언급한다.

실제로 와인 분야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인 ‘한권으로 끝내는 와인특강’의 저자 전상헌 저자는 필자에게 본인이 와인을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와인의 오크 사용 관련 정보'라고 하시더군요. 해당 와인이 오크를 사용했다면 어떤 오크를 사용했고, 오크 사용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그 와인의 스타일을 알 수 있는데, 대부분의 수입사에서 제공되는 데이터시트는 그러한 정보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아쉬움을 토로하시더군요.

수입사는 와인메이커에게 최대한의 정보를 요구해야 합니다. 최대한 많은 항목을 받아내시고, 불가능하다면 수입사에서 직접 그 데이터를 수집해서 데이터시트를 제대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작성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가까운 일본 와인 수입사에서 제공하는 데이터시트를 보면 '이것까지 알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데이터가 존재하더군요.

특히, 라벨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인데,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와인에서 얻어질 수 있는 데이터시트에 대한 아주 상세한 내용을 만들어가는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와인에 대한 메타데이터(Meta data), 일종의 표준안이죠. 그때 수입사분들의 많은 협조 부탁 드립니다.

‘수입사'로부터 발생되는 데이터

저는 개인적으로 와인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와인 관련 데이터 영역에서 와인 수입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와인 생산자는 아무래도 ‘농부'이기 때문에 농사 짓는 일에 관심이 많지, 이러한 ‘데이터' 관점에서는 아무래도 '능력 부족' 내지는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 수입사는 이러한 부분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셔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해당 와인 산지 현지에서의 와인 성분 분석표, 각국 식약처에서 행해지는 분석표 등의 ‘정량적' 테크니컬 데이터와 와인 라벨과 이름에 얽힌 ‘정성적' 스토리텔링까지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부분을 해당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곳에 맞춰 적절하게 가공되어 일반인 대상 데이터시트와 전문가 대상 데이터시트가 구분되어 작성할 수 있는 일련의 시스템들이 갖춰져야 할 것이라 봅니다.

이와 함께, 와인 수입사에게 요청드리고 싶은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소매점 관련 정보입니다. 매출 데이터는 극비 자료이니 알 수 없는게 당연하지만, 어느 소매점에 공급이 되고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알 수 있다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이 와인 어디서 판매하나요' 라는 컬럼에서 언급했듯이 특정 와인을 찾으려고 할 때 굉장히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여차저차 해서 수입사를 알아내고 수입사에게 전화를 해서 제가 현재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소매점이 어디인지를 알아내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 수입사 중에서 자신이 수입한 라인업을 가장 극명하게 그리고 가장 간단하게 드러내는 뱅베 내추럴와인 수입사. 뒷면이 아닌 앞면에 디자인을 해치지 않으면서 수입사 표시를 명확하게 해서 소매점과 일반 소비자에게 각인 시키는 아이디어가 뛰어남.

저는 수입사 웹사이트에서 특정 와인의 구매처를 표시해주는 데이터를 제공해주었으면 합니다. 경쟁사가 보고 해당 와인과 비슷한 라인업을 가지고 있는 곳을 공략하지 않겠느냐 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어차피 금방 알려지는 아니 이미 알고 있는 데이터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보다는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더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가장 궁금한 것은 특정 수입사에서의 특정 와인의 판매수량이나 지역별, 소매점별 매출 데이터 순위인데 그것은 무리겠죠? 그러나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산 정상을 올라가는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요즘에는 POS 데이터를 일반화 해서 얻어내는 방법까지 다양하게 매출 관련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이 존재합니다.

‘소매점'으로부터 발생하는 데이터

와인 생산자와 와인 수입사를 통해서 얻은 기본적은 와인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매점에서 다양한 판촉행위가 이뤄지게 됩니다. 수입사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시트를 일반 소비자들이 알기 쉬운 형태로 바꾸거나 소매점의 컨셉이나 다양한 마케팅 활동 등으로 통해 유의미한 판매 관련 데이터가 얻어지게 됩니다.

▲ 와인수입사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감성적으로 변하는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 와인 소매점, 성수동 리리셀(@re_re_sell)과 삼성동 엔포라(@nfora.seoul)의 인스타그램 포스트.

우선은 판매 데이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데이터와 시기, 성별, 품종 그리고 판매가 이뤄지는 상황 등 다양한 형태의 부분이 처리가 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데이터는 오늘 몇 건을 팔았는지에 대한 마감 건수와 매출 총액 정도로 만족하시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어떤 와인을 왜 샀는지에 대한 부분을 통해서 그리고 외부적인 요소가 이러한 행위를 일으킨 것은 아닌지 그 상관 관계도 생각해보면서 진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서울 남부 중심으로 표기한 와인샵 모습. 4대마트와 각종 와인샵을 표기한 모습.

이러한 부분을 ‘감'이나 ‘요행'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데이터에 의거한 분석이 이뤄졌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재고 관리’라던가 ‘가격 최적화’, ‘신규 점포 위치 선정’, ‘추천’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분야도 나중에 언젠가 Retail 관련된 데이터가 확보되면 한번 언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비자로부터 얻을 수 있는 데이터

소매점의 데이터를 바라 보면 소비자로부터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상당 부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데이터는 구매 의사를 밝혔을 때 데이터로 왜 구매를 하게 되었는지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은 알기 어렵습니다.

즉, 구매 의사를 어느 정도 결정을 하고 난 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매 의사를 밝히기 이전의 데이터를 알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와인 업계에 계신 분들은 왜 소비자가 구매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어떤 데이터를 찾고자 했는지 그 과정을 봐야 하고 그 과정에서 와인 업계가 제공해줄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해외에서도 유명한 비비노나 와인서처와 같은 검색엔진에서 사용자들이 입력하는 키워드나 특정 와인 상세 페이지를 클릭했을 때의 클릭 숫자라던지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데이터는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비비노에서 Cabernet Sauvignon을 입력한 모습. Cabernet Sauvignon 품종을 입력했을 때 나오는 와인은 왜 하필 저 와인이어야 하는 것인가? 궁금하지 않은가?

문제는 이러한 비비노나 와인서처와 같은 서비스가 국내에서 별로 없다는 것이고, 그 데이터가 어떤 식으로든지 공개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매점이 판매 전략을 세우고, 수입사가 수입 전략을 세우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판매된 실제 수량과 여러 가지 고려사항까지 함께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말이죠.

와인 업계도 Retail 분야에서 적용하는 기술 도입 필요

소비자는 자신의 생각을 직접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이야기 해준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왜곡되는 경우가 많고, 우리는 '의식의 흐름'으로 이루어진 행위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자가 인식하지 못한 부분까지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데이터는 'FGI (Focus Group Interview)' 등을 통해서 보완해야 합니다. 저는 와인 업계도 이제는 Retail 분야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IT 기술과 마케팅에서 활용하는 기법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와인 업계를 구성하는 각 구성 요소(Stakeholder) 들에게서 발생되는 데이터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와인 관련 앱에서 와인 라벨이 어떤 식으로 인지되는지에 대해서 그 매커니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필자는 한메소프트,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등 IT 분야에서 비정형 데이터 관리와 일본 전문가로 활동하다 2019년에 와인과 IT의 결합을 주제로 (주)비닛 창업하여 서비스 준비 중인 스타트업 대표이다. WSET Level 2를 수료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양재혁 iihi@vini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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