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씻어 물과 함께 넣으면 나머지는 전기밥솥이 알아서 다 해준다. 언제나 비슷한 수준의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밥맛이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지거나, 나빠졌던 적이 있는가? 대부분 못 느낄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는데, 밥맛이 다르다면 무슨 이유일까?

밥맛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많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은 마지막 소비자인 우리가 어찌할 수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선 밥맛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아래와 같다.

▲ 밥맛에 영향을 주는 요인 <자료=일본 농림성 식량연구소>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취반수, 즉 밥 짓는 물이 있다.

위 내용을 살펴보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없는 자연적인 요인들이 매우 많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내 입맛에 맞는 품종으로 가장 최근에 도정한 쌀을 구매해서 밥 짓기를 잘하는 것뿐이다.

여기서 필자의 견해를 더하자면, 쌀의 저장 방법도 품종만큼이나 중요도 ‘최대’라고 생각한다.

가끔 인터넷이나 뉴스에서 가정에서의 쌀 보관에 관해 기사가 나오곤 한다. 필자도 역시 가정에서의 쌀의 보관이나 밥 짓기에 관해 여러 번 이야기하였다.

2주 이내 다 소비하는 것을 권장하지만, 실제 대부분의 가정에서 쌀을 얼마 동안 보관할까? 보통 1달 정도일 텐데 그 보다 오랜 기간 보관한다고 해도 2개월 이상 보관하는 가정은 많지 않다. 가정에서 보관을 말하기보다는 가정에 오기까지의 보관 방법을 철저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9월 추석에 나오는 햅쌀을 빼고는 우리는 RPC(Rice Processing Complex종합미곡처리장)에서 최소 1달에서 최대 1년을 저장했던 쌀을 사서 먹고 있다. 저장기간 중 쌀은 물리화학적인 변화로 밥맛과 가공성이 나빠지기에 저장 조건이 매우 중요하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쌀은 살아있는 생명체로 수확 후에도 호흡하면서 생명 활동을 이어나간다. 계속된 호흡작용으로 인해 산화가 일어나고, 여러 성분도 분해가 되어 양적, 질적 모두 손실이 발생한다. 이런 쌀의 호흡작용에는 온도, 함수율, 가스 환경, 미생물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 온도와 수분함량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중성 지질로 구성된 쌀의 지방은 쉽게 가수분해 및 산화가 일어나 나쁜 냄새를 만들어 내고 산가 증가에도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정에서 잘 보관해본들 RPC나 유통센터 제대로 보관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비자보다는 생산자나 유통업자에서 관리하에 보관되는 기간이 더 길지 않은가? 그래서, 소비자보다 생산자나 유통업자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쌀을 보관해야 한다.

필자가 여러 번 언급했던 밥맛을 측정하는 장치인 [토요 식미기]로 측정해 보면 냉장 보관 쌀은 약 8~10개월 후부터 토요식미치 점수가 나빠졌으나, 상온 보관한 쌀은 2개월 후부터 큰 폭으로 점수가 나빠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RPC나 유통과정에서의 쌀의 보관 수준은 어느 정도 일까?

대부분 쌀 보관의 최적조건은 온도 15℃ 이하, 습도 70~80%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라고 한다. 실제 일본의 경우 현미 상태로 온도 10℃ 이하, 상대습도는 73~75%에서 저온 저장하는 곳이 대부분이며 그 이하인 초저온에서 보관하는 곳도 있다. 이렇게 저온에서 잘 보관하면 용량감소도 적고, 품질보존에도 매우 유리하다. 하지만, 창고 전체가 냉장창고 수준이 되어야 하니, 건축비 및 전기세 등 유틸리티 비용이 증가한다.

다양한 논문 결과를 보더라도 10~15℃ 보관보다는 5~10℃ 보관이 좋고, 그보다는 0~5℃ 구간이 더욱더 좋은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의 RPC중 이런 수준을 만족시키는 RPC가 얼마나 있을까?

최근 발표자료가 없어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2010년 동일 시점 비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쌀 저온저장 비율은 약 28%고, 일본은 약 57%로 나타났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나아졌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고작 벼를 보관하는 사일로(silo, 곡물이나 가축의 조사료를 저장하는데 사용되는 굴뚝모양의 큰 탱크 시설) 시설만 저온상태였지만, 일본은 사일로뿐만 아니라, 벼를 현미로 가공하는 제현 시설 전체를 저온으로 관리한다.

그렇다면 이젠 상온보관 말고 어떤 쌀 보관 기술이 있는지 알아보자.

1) 저온저장

벼의 수분함량이 15%인 벼를 10~15℃, 습도 70~80% 정도에서 보관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일단 15℃ 이하부터 벼의 호흡작용이 줄어들어 쌀의 품질 유지에 도움이 되지만 일반적인 냉장식품의 보관 온도가 10℃ 이하인데, 이걸 저온 저장이라 부를 수 있는 건지, 의문스러운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 온도 구간에서 장기 저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1~2개월 내 보관이 좋다.

2) 중저온저장

5~12℃의 구간에서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저온저장보다는 훨씬 쌀의 저장기간이 길어지며, 품질 변화도 적다. 그러나 이 역시 장기간 보관에는 어울리지 않으며 6개월 이내가 좋다.

저온 저장이라 말하려면 최소 0~5℃ 정도에서 보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온도 구간이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며 쌀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온도도 낮은데 더 낮춰야 할까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맨 처음 말한 것처럼 쌀은 호흡한다. 그 호흡 작용으로 인해 온도가 상승한다. 위 온도로 설정을 한다고 해도, 실제 저장 사일로 심부의 온도는 2~5℃ 정도 높다.

3) CA 저장 / 밀폐식 저장

흔히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파는 샐러드나 과일 간편식들은 유통기한을 연장하기 위해 다 가스치환 포장을 한다. 다시 말해 생명체가 호흡할 수 없도록 포장지 내부의 공기 조건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산소, 이산화탄소, 질소의 비율을 바꾼다. 작물마다 호흡률이 다르기에 최적의 비율을 찾는 것이 기술이다.

우리가 마시는 공기는 산소의 비율이 21%이지만, 쌀 보관의 최적 산소 비율은 3~7%, 이산화탄소 비율은 3~5%다. 아니면 밀폐식 보관으로 쌀이 점점 산소를 소비해 산소 농도를 낮춰 쌀의 호흡을 억제하는 방법도 있다.

4) 스노우 저장

일본의 북부지역에서 하는 친환경적인 보관법으로 쌀의 사일로 창고 전체를 눈으로 덮어버린다. 일본 북해도의 연 평균 기온이 10℃ 정도니 이런 방법으로 연중 5℃ 이하에서 쌀을 보관할 수 있다. 이 쌀은 무려 18개월간 토요 식미치가 떨어지지 않는 결과가 나왔고 [설실미]라는 고급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 설실미 <사진=AJ>

5) 빙온 저장(효온 저장)

고급 백화점에 가보면 고급 한우 나 좋은 수산물을 효온 저장고에서 보관하고, 효온 숙성 한우 이런 식으로 홍보도 한다. 효온이란 ‘빙온’의 일본식 표현인데, ‘빙온’이란 얼기 직전의 온도를 말한다. 냉장과 냉동 사이에 빙온이라는 제3의 온도 구간이 있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보통 쇠고기는 -2℃, 과일인 체리는 -4℃, 생선은 -2.2℃에서 얼기 시작한다. 그래서 보통 -4~0℃ 구간에서 보관한다.

6) 초저온저장

바로 수확한 건조하지 않은 벼의 수분 함량은 약 25%로 이 상태에서는 -15℃부터 얼기 시작한다. 하지만 보관하기 위해 건조하면 수분함량은 약 15~16%가 된다. 이렇게 된 쌀은 -80℃에도 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빙결정을 만들 자유수가 없기 때문이다. 각 자료마다 조금씩 온도의 차이가 있는데 약 -15℃~-5℃ 구간에서 보관한다. 초저온상태에서 보관한 쌀의 발아율과 관능이 햅쌀보다 더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보통 겨울철까지는 보관상태가 좋지만, 특히 따뜻했던 올겨울, 저온저장 시설을 갖추지 못한 곳이라면 품질의 점점 나빠질 수도 있다. 애써 잘 키운 쌀이 잘못된 보관으로 그 품질을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단순히 좋은 품종의 쌀을 개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종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모든 과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술투자와 개발이 필요하다. 그리고, 맛 차이가 명확히 나는 만큼 가격차별화가 이루어져야 생산자들도 고급 쌀을 만들어 내는 자부심도 생기고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생산자나 유통업자들도 더 좋은 쌀을 판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소비자도 쌀값에 너무 인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믈리에타임즈 박성환 칼럼니스트 honeyric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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