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 계신 아빠 친구분께서 올해도 어김없이 과메기를 보내주셨다. 초고추장과 마늘, 고추, 쪽파 그리고 물미역과 마른 김이 나란히 놓인 과메기를 보니 비릿한 바다 내음을 좋아하는 나는 벌써부터 입안에 침이 고인다. 꼬들꼬들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을 상상하며 초고추장을 푹 찍은 과메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드는 순간 엄마가 물으셨다.

“근데 냄새는 왜 맡아?’’
언제부턴가 나는 청국장과 같은 특유의 진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부터 아무런 냄새가 날 리 없는 아이스크림까지, 먹기 직전에 냄새를 맡고, 맛을 상상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요리를 내어 온 사람의 반응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성격이 좀 괄괄하신 분이라면 ‘못 먹을 거 줬을까 봐 ?!’라고 성을 내며 그릇을 도로 가져갈 수도 있고, 조금 소심하신 분이라면 ‘왜, 음식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하며 울상을 지을 수도 있다.

프랑스에서 어학원을 다니던 시절, 한 번은 한국의 음료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막걸리를 가져간 적이 있다. 유럽 남미 아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열댓 명이 빙 둘러앉은 자리에서 막걸리가 위아래 잘 섞이도록 좌우로 흔든 다음 각자 조금씩 따라 마시도록 옆 사람에게 건넸다. 그런데 뚜껑이 열린 막걸리 병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거리더니 다시 그 옆 사람에게 건네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모두가 자기 차례에서 막걸리 냄새를 맡는 것을 숨죽여 바라보던 몇 분의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 머릿속은 ‘막걸리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냄새가 영 별론가?’ 이런 걱정으로 손에 식은땀이 났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장면이 너무도 엄숙해서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던 여러 에피소드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음식이란 자고로 입으로 바로 직행(?) 하는 것이지, 지나치게 냄새를 맡는 것은 예의가 아닌 문화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참 낯선 장면이었다. 그리고 냄새 맡지 않는 이러한 습관이 와인의 향을 분별해 내고 이를 통해 와인을 표현하며 평가하는 데에 얼마나 장해가 되는지 깨달은 것은 와인학교에 들어가고 난 이후였으며 그 후로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와인의 향기를 맡는 것이었다.

시음의 핵심인 향을 맡는 수업에서 나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는데 내가 탐지(?) 한 가장 황당한 향기는 숙성된 레드 와인에서 나는 ‘간장 냄새‘였다. 도대체 간장 냄새가 웬 말이란 말인가! 한번 뇌리에 ‘간장‘이란 단어가 박힌 이상 그것을 표현할 다른 단어는 생각나지 않고, 시간에 쫓기는 테이스팅 카드 작성 시간 동안 나는 벌게진 얼굴로 내 어이없는 후각을 탓하며 별 소득도 없이 와인잔에 거듭 코를 박아야 했다.

예민한 감각을 타고나지 못했다면 훈련을 하는 수밖에 없다. 거금을 들여 아로마 키트를 샀는데 이는 와인에서 날 수 있는 여러 향들을 작은 유리병에 액체로담아 놓은 것이었다. 집에서도 수시로 맡고 심지어 외출할 때에는 낯설거나 헷갈릴 수 있는 몇 가지 향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며 향을 외우곤(?) 했는데 화학적으로 제조된 향이니 실제 와인의 향과는 다를 수가 있고 무엇보다 머리가 너무 지끈거렸다.

인공의 향으로 후각을 훈련시키는 것에 한계를 느낀 나는 가능한 한 자연 그대로의 향기를 찾아 맡아보고 싶었다. 길가의 풀과 꽃 냄새, 마트의 과일들과 이국적인 향신료들을 지나치지 않고 직접 손에 들어 냄새를 맡아보던 경험은 꽤 도움이 되었을 뿐더러 머리가 맑아지는 명상의 효과까지 있었다.

▲ 와인의 향을 맡기 노력은 책을 볼 때에나 음악을 들을 때에도 계속 된다 <그림=송정하>

하지만 이국에서 이국의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수많은 향기들에 익숙해지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럴 땐 만약 서양인들이 한국 어느 지방의 저명한 술도가나 음식 명인의 집에 머물며 그들에게는 생소한 한국 토속의 향기들, 이를테면 알싸한 쑥과 깻잎, 국화 등의 향을 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쩐지 위안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와인에서 간장 냄새가 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후에 오랜 병숙성을 거친 레드 와인에서 맡을 수 있는, 말린 자두의 농축된 향을 간장 냄새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들이 과연 비슷한 냄새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서양식 향에 대한 무지와 시음과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가 과장되고 왜곡된 후각을 만들었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그리하여 음식을 먹기 전 냄새를 맡는 습관이, 섬세하지 못한 후각을 극복하기 위한 내 나름의 노력의 결과였음을 말해주고 싶다. 다만 오해를 낳기 전에 한마디 덧붙이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음식이 먹음직스러워 보이더니 과연 냄새도 끝내주네요!’’
 

▲ 송 정 하

법대를 나왔지만 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 프랑스 보르도로 떠났다. 보르도 CAFA에서 CES(Conseiller en sommellerie:소믈리에컨설턴트 국가공인자격증), 파리 Le COAM에서 WSET Level 3를 취득했다. 사람이 주인공인 따뜻한 와인이야기를 쓰고 싶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송정하 noellesong05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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