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음 와인
Casanova di Neri Brunello di Montalcino Cerretalto 2004

와인애호가들이 흠모하는 까사노바 디 네리가 만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체레딸또 2004 한 케이스(12병)가 구입한지 10년이 넘도록 셀러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시음적기를 기다렸다기보다는 숨겨져 있는 선물처럼 부동의 기다림 속에 누워있다가 언젠가 조용히 깨어나면 나의 욕망을 충족 시켜 주리라 믿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나를 만나러 오는 여인에게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라'는 폴 발레리의 충고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10년을 기다렸던 와인을, 오늘 2019년을 보내고 2020년을 맞이하는 내밀한 시간에 한 병을 오픈합니다.

▲ 까사노바 디 네리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체레딸또 2004(Casanova di Neri Brunello di Montalcino Cerretalto 2004)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 내 몬탈치노 지방에서 생산되는 브루넬로 품종(산지오베제의 특수 클론)으로 만들었다 하여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라 부르고 흔히 BDM이라는 줄임말로 표현되는 이 와인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대단합니다.

세련된 맛과 향기를 잘 표현하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숙성 잠재력으로도 유명하여 그 이름만 들어가면 높은 가격표가 부착됩니다.

이 지역의 BDM 생산자 중에서 최고의 서열에 꼽히는 까사노바 디 네리는 모던 스타일을 추구하는 대표적 생산자입니다. 이 체레딸또는 그가 만드는 라인업 중에서 최상급 와인입니다.

▲ 체레딸토 포도밭은 최상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사진=casanovadineri.it>

체레딸토 포도밭은 Asso 강을 끼고 있으면서 원형으로 발달한 해발 250~300m에 위치하여 미세기후의 영향을 받는 등 최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체레딸또는 유기농방식으로 재배한 포도를 손수확하여 와인을 만듭니다. 좋지 않은 빈티지에는 체레딸또를 만들지 않고 대신 한 단계 아래에 위치하는 떼누따 누오바로 양조합니다.

체레딸또는 시장에 나갈 때까지 오랜 시간을 와이너리에서 보냅니다. 발효와 양조를 거친 이 와인을 오크통에서 31개월을 숙성시킨 후에도 30개월을 더 병 숙성시키니까, 대략 6년이 지나야만 와이너리를 벗어나 시장으로 나가는 셈입니다.

양조 된 지 16년의 세월을 보낸 이 와인은 과연 어떤 빛깔일지? 어떤 향과 풍미를 선사할지? 자못 궁금합니다.

진한 루비컬러가 보여주는 체레딸또는 아직 농익은 색상이 결코 아닙니다. 젊음을 보여주는 색상이 그대로 투영됩니다. 너무 일찍 따버린 과일처럼 단단합니다.

▲ 체레딸또는 오랜시간을 와이너리에서 보낸다. <사진=casanovadineri.it>

그럼 도대체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까요?

오픈하고 하루를 더 기다려서 다시 시음해봅니다. 블렉베리, 플럼, 스모키한 담배향에 허브향이 상큼하게 스치면서 꽃의 슬픈 살갗을 가진 제비꽃 설탕절임 같은 여인이 내 앞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연약함이 아니라 섬세하고도 미묘하면서 우아한 힘을 지녔습니다. 한 모금을 입안에 넣고 굴려보면 플로라 아로마를 머금은 스윗함과 쓴맛의 드라이함을 풍기는 맛의 모순형용이라니! 꽃잎의 스윗함과 경쾌한 쓴맛, 이 두 영역의 뚜렷한 대비는 무언가 관능적인 느낌으로 존재합니다.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든 까사노바 디 네리의 혁신과 유연성, 그리고 자신만만한 낙관성이 느껴지는 이 와인은 대단히 유혹적입니다. 섬세하지만 강하고 우아하고 화려하지만, 직접적이기 때문입니다.

▲ 까사노바 디 네리(Casanova di Neri) 와인들

"성욕과는 달리, (몸의 아름다움이 아닌) 몸의 섹시함은 누군가가 머릿속에 에로틱한 행위의 대상으로 두었을 때 식별할 수 있다는 사실로 볼 때 고유하다. 이와 유사하게, 텍스트 내에서 식별되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섹시한 문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사람의 몸과 문장만이 아니라 분명히 섹시한 와인도 이처럼 존재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는 쾌락의 힘으로 사람들은 늘 이런 와인을 그리워하게 마련입니다.

이 와인 한 모금을 또 꿀꺽 넘기면 향기가 몸 전체로 퍼져나갑니다. 금방 몸이 회복되는 착각에 빠지듯이 행복한 시간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마숙현 대표는 헤이리 예술마을 건설의 싱크탱크 핵심 멤버로 참여했으며, 지금도 헤이리 마을을 지키면서 `식물감각`을 운영하고 있다. 와인, 커피, 그림, 식물, 오래 달리기는 그의 인문학이 되어 세계와 소통하기를 꿈꾼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마숙현 meehan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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