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기훈의 와인 스토리텔링, 와인이 도대체 뭐기에? <사진=Pexels>

와인은 발효된 포도즙입니다.

포도 한 송이, 그 자체가 양조공장입니다. 다른 술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이런 점이 와인을 종교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한 이유입니다. 와인을 마실 때 우리는 언제 와인을 마셔야 하는지가 항상 궁금하고 어려워합니다. 또한, 언제가 와인의 절정인가도 알고 싶어 합니다.

이 문제를 한번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다만 염두에 둘 것은, 와인은 다양성이 매력이며, 맛과 즐거움을 느끼는 부분은 개개인의 정서적, 감각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와인은 생명을 가진 술입니다.

생명을 가졌다는 뜻은 발효 과정에서부터 오크통이나 병 속에서 끊임없이 생화학적 반응 때문에 다른 맛으로 진화한다는 말입니다.

와인을 만드는 방법은 포도즙을 짜고, 단세포 식물인 효모가 포도 주스 속에 들어 있는 당분을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효모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은 당분이지요. 효모가 당을 알콜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합니다. 탄산가스를 날려버리면 거품이 없는 와인이 되고, 막아놓으면 발포성와인이 되지요.

발효의 신비한 현상은 우유로 유명한 파스퇴르가 1859년에 <알콜발효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발효의 비밀을 풀어냈습니다. "발효는 산소 없이 나타나는 생명 현상"이라는 폼나는 말도 남겼지요. 

이런 과정을 거쳐 와인이 완성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발효와 숙성을 헷갈립니다. 발효는 와인이 되는 과정, 숙성은 와인이 맛 들어가는 과정쯤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제부터는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또 하나 아셔야 할 것은, 와인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신앙 같은 정설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와인은 식품이라, 적당한 음용시기가 따로 존재합니다.

제가 20년 만에 유럽에서 귀국해 보니, 친구도 가족도, 사랑도,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도 있는 것이지요. 변화하는 대상을 그대로 인정하고, 매 순간을 즐기는 것이 삶의 기술이 아닐지요?

자, 이제부터는 조금 복잡해집니다.

와인이 숙성된다는 것은 산화와 환원 작용이 관여하게 됩니다. 1856년 파스퇴르는 나폴레옹 3세의 명을 받아 연구를 한 결과 와인이 숙성하고 변질되게 하는 주범은 산소라는 것을 규명하게 됩니다.

산소는 와인에게 계륵 같은 존재입니다. 없어서도 안 되지만, 많아도 안 되는, 그렇다고 없앨 수도 없는.

와인이 숙성된다는 것은, 산소분자를 잃거나(환원) 수소 또는 전자를 얻는(산화) 과정을 반복하면서, 와인 속에 존재하는 알콜, 당, 산 등 여러 물질이 화학적인 변화를 겪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에스테르(esters)같은 오묘한 향이 생겨나지요.

우리는 이런 과정을 거쳐 와인이 맛있는 상태가 되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면 언제 와인을 마셔야 제일 맛있는 상태일까요?

이 점에서 약간의 오해가 있습니다. 숙성된 맛있는 와인이라는 말에는 좀 어폐가 있고,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변화된 와인입니다. 숙성과 성숙의 차이라고 할까요? 장기숙성능력과 품질은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오래 숙성된 와인이 반드시 숙성 초기 와인보다 더 우월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오래 숙성시킨 와인은 더 부드럽고, 원숙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세월을 이겨낸 와인의 특성이지 반드시 고결(高潔)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개인의 다양성과 개성이 개입하게 됩니다.

우리는 확실히 우리의 선조들에 비해 시간에 대한 참을성이 없어졌고, 구체적이고 확인 가능한 것 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와인 시음의 적기도 눈으로 확인 가능한 전문가들의 그래프를 확인하고 싶어 하고, 머리 속에는 그래프의 꼭짓점을 상상합니다.

사실 와인 숙성의 정점은 이집트의 피라미드 모양이 아니고 봉덕사 신종 같은 모양입니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 기대하거나 우려하는 만큼 잘되거나 잘못되지는 않습니다.
부모들은 인내를 가지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볼 뿐이지요. 와인의 숙성기간이나 절정도 그렇습니다. 자연의 요묘한 부분이 관여하도록 지켜볼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 인생의 절정도 누가 정하나요? 20대의 청춘이 절정일까요? 저는 지금의 저가 제일 마음에 듭니다. 십 대는 십 대의 풋풋함이, 오십 대는 오십 대의 원숙함이 있겠지요.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Domaine de la Romanėe-Conti)의 공동소유자인 라루 비즈 르루아(Lalau Bize Leroy)는 "와인은 매순간마다 달라요. 와인은 병입되는 순간부터 제각기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기 때문이죠"라는 근사한 말을 남겼지요.

인간이든 와인이든 이 세상에 나와서 생명을 다할 때까지 절정의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 어찌 한순간뿐일까요?

자, 이제 와인을 마실 차례입니다.

저는 키스를 할 때마다 머릿속의 상상과 부속기관이 따로 놉니다. 가장 취약한 부분입니다. 사랑을 나눌 때 우리는 오감을 동원해서 느끼고, 몸과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고, 오롯이 상대에만 집중합니다.

와인을 즐기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와인은 시고 떫습니다. 화이트와 레드와인의 특징이지요. 시고 떫은 맛에 우리의 감각기관은 본능적으로 옴츠리게 되고 방어기제를 발동시킵니다. 온몸의 긴장을 풀고 오감의 돌기를 동원하여 와인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느껴보십시오.

"너의 삶에 가장 쓰라린 경험은 무엇인가?
마신 것이 쓰다면 너 자신이 와인이 되어라"

~ 마리아 라이너 릴케 <소네트 29>

와인과 나 사이에 행복한 쾌락을 누리는 즐거움에 간섭할 어떤 이론이나, 편견을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권기훈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의대를 다녔고, 와인의 매력에 빠져 오스트리아 국가공인 Dip.Sommelier자격을 취득하였다. 이후 영국 WSET, 프랑스 보르도 CAFA등 에서 공부하고 귀국. 마산대학교 교수, 국가인재원객원교수, 국제음료학회이사를 지냈으며, 청와대, 국립외교원, 기업, 방송 등에서 와인강좌를 진행하였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권기훈 a90049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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