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르 강이 흐르는 모젤의 작은 마을 빌팅겐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이너리가 두 개나 있다. 하나는 지난번에 소개한 에곤 뮐러(Egon Müller)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소개할 반 폭셈(Van Volxem)이다. 동네가 작다보니 두 와이너리는 차로 5분도 채 안 걸릴 정도로 가까이에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둘이 추구하는 와인 스타일은 정반대다. 에곤 뮐러는 스위트 와인만을 만드는 반면, 반 폭셈은 오직 드라이 와인만 생산한다. 둘 모두 포도밭의 땅과 하늘, 즉 테루아를 와인에 담아내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심지어 샤츠호프베르크라는 아주 좋은 밭을 나눠 갖고 있기도 하다. 여러 공통점이 있음에도 이 둘이 다른 길을 걸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 폭셈의 오너인 로만 니보드니잔스키(Roman Niewodniczanski)씨를 만나자마자 이 의문은 금세 해소되었다.

▲ 반 폭셈 대표 로만 니보드니잔스키 <사진= 김지선 기자>

니보드니잔스키씨가 풍기는 분위기는 뮐러씨와 아주 달랐다. 푸근한 삼촌같았던 뮐러씨와 달리, 깔끔한 정장 차림의 니보드니잔스키씨는 영락없는 사업가였다. 빠른 걸음걸이와 훤칠한 외모,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술술 대답하는 모습은 성공한 사업가와 연예인의 모습을 합쳐놓은 것처럼 보였다.

요리사인 어머니와 독일의 3대 맥주 회사 비트부르거(Bitburger)를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부모님이 바쁜 탓에 어릴 적부터 요리를 해야 했다. 그가 열여덟살에 집을 독립하기 전까지 가족을 위해 요리를 했다는데, 뛰어난 맛을 향한 그의 고집스러움은 이런 환경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니보드니잔스키씨는 경제지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후 브루어리 운영이 아닌 와인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석사과정에서 '와인생산지역 모젤의 성공전략'을 논문으로 써낼 만큼 와인을 향한 관심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 니보드니잔스키씨는 100년도 넘은 유명 레스토랑 및 호텔의 와인 리스트에서 모젤 리슬링의 위상을 확인했다. <사진= 김지선 기자>

20년 전 반 폭셈을 인수한 후, 그는 와이너리 소유의 밭을 열 배 넘게 확장했다. 높은 품질로 세계의 전문가와 애호가의 주목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의 꿈은 이제 막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번 인터뷰는 독일 최대의 리슬링 와이너리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로만 니보드니잔스키씨를 소개한다.

니보드니잔스키씨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 반 폭셈의 두 번째 와이너리 <사진= 김지선 기자>

저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절대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죠. 그래서 어릴 적부터 뛰어난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게 저의 꿈이었습니다.

요리사인 어머니를 두었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나요?

아시아 음식을 좋아합니다. 특히 일본 요리를 좋아하는데, 약간의 매콤함이 있으면서도 섬세함이 있거든요.

취미는 무엇인가요?

자전거나 필라테스, 요가 등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5시 반부터 7시 반까지 필라테스를 합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필라테스는 거의 빼먹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견디지 못할거에요. 제가 직접 와인을 소개하고 파트너를 만나다보니 출장이 일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부하가 걸릴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를 잘 해결해야겠는데요?

▲ 반 폭셈 대표 로만 니보드니잔스키 <사진= 김지선 기자>

그래서 요가, 필라테스, 음악 감상, 시가로 스트레스를 풉니다. 저는 시가를 많이 피우면서 운동도 열심히 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스트레스를 푸는) 제 방식이죠.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저의 아이들이 태어나던 때입니다. 세 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모두 2009년에 태어났어요. 그래서 2009년은 제게 마법같은 빈티지입니다.

힘들었던 때는 1년 반 전에 함께 일하던 건축 책임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였습니다. 오는 7월 7일에 오픈할 반 폭셈의 두 번째 와이너리 건설을 담당하는 분이었는데, 그가 떠난 이후 공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제가 맡아야 했습니다. 이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습니다.

와인을 만들때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연적으로 와인을 만드는 게 제 철학입니다. 좋은 와인은 늘 테루아를 반영합니다. 이를 위해 자연 비료를 사용하며 화학 비료는 일체 쓰지 않습니다. 또 접목하지 않은 올드 바인에서 포도를 재배하기도 하고, 자연 효모로 포도즙을 발효합니다. 고대에 아무런 첨가제 없이 와인을 만든 것은 물론이고, 20세기 문서에도 '내추럴 와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만큼 오랫동안 지켜진 고전적인 방법이죠. 

그러나 동시에 정교한 작업도 중요합니다. 좋은 포도알을 선별할 때 많은 신경을 쓰는 것처럼요. 제게 와인을 만드는 일은 스위스 시계를 만드는 것만큼 섬세함이 필요한 일입니다. 한 병의 와인은 아주 많은, 작은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뛰어난 테루아에 섬세한 작업이 따라줘야 최고의 와인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 다 마시고 난 올드 빈티지 와인이 가득한 반 폭셈 응접실 <사진= 김지선 기자>

반 폭셈의 응접실에는 유명한 부르고뉴 생산자들의 올드 빈티지 와인병과 100년도 더 된 서적들이 말그대로 ‘널려’있다. 고문서 수집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니보드니잔스키씨도 역사가 깊은 자료와 와인에 굉장한 열정을 보였다. 그가 보여준 한 문서는 1902년에 세계에서 가장 큰 호텔에서 사용된 와인 리스트였는데, 여기 적힌 가격들이 흥미롭다. 여기서 샤토 레오빌 라스카즈는 3 골드마크, 샤토 디켐은 10 골드마크인데 반 폭셈의 와인은 무려 15 골드마크에 판매되고 있었다. 유명 보르도 와인보다 많게는 5배 비싸게 판매된 것이다. 그가 보여준 또 다른 유명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서도 모젤 리슬링은 샤토 디켐이나 몽라셰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니보드잔스키씨는 리슬링의 풍부한 과일향과 가벼운 바디감이 당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20세기 중후반, 물처럼 쏟아진 저가 와인 때문에 독일 와인의 이미지는 큰 타격을 받았으나, 지역 생산자들의 노력으로 고급 리슬링 와인의 공급과 수요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반 폭셈의 성장세가 가파른 것도 품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니보드니잔스키씨의 전략 덕이다. 이들의 와인은 드라이하고, 섬세한 과일향이 가득하면서 알코올 도수가 낮다. 더 좋은 것, 더 건강한 것을 추구하는 요즘 시대에 딱 맞는 와인인 것이다. 이제 웰빙은 한 번의 유행이 아닌 중요한 생활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드라이 리슬링만으로 독일 최대의 와이너리를 만들겠다는 그의 목표가 현실적으로 들린 이유다.

소믈리에타임즈 김지선기자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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