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은 어떤 맛이야? 너무 먹어보고 싶어!"

약 10년 전, 중국인 친구가 필자에게 했던 말이다. 당시 한국 드라마 '환상의 커플'이 중국에서 대히트 중이었는데, 그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짜장면 먹는 장면을 보고 꼭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중국엔 짜장면이 없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중국인에게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외국인들에게 짜장면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다. 특히 한류 드라마에서 짜장면을 본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짜장면 먹기가 한국 관광의 필수 코스다. 하지만 아직까지 짜장면이 우리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약간의 어색함이 있다. 중국엔 짜장면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짜장면은 중국음식점에서 파는 음식이 아닌가. 대체 짜장면의 정체는 뭘까? 우리는 왜 혼란을 느끼게 되었을까?

이번 솜대리의 한식탐험에서는 중국음식점에서 팔지만 그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짜장면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 간짜장면

짜장면은 춘장, 고기, 야채(주로 양파)를 볶고 전분을 넣어 걸쭉하게 한 다음 면에 비벼먹는 음식이다. 사실 짜장면은 어떤 음식인지 설명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음식이다.

하지만 높은 인지도에 비해 짜장면의 역사는 매우 짧다. 짜장면의 조상은 자장미엔(炸酱面, Zhajiangmian)으로, 중국 산동성과 북경지역의 서민음식이다. 콩과 밀가루로 만든 중국식 된장, 티엔미엔장(甜面酱, Tianmianjiang)에 고기를 볶아 소스를 만들고, 이 소스를 면에 비벼먹는다. 

자장미엔이 짜장면의 조상이라고는 하나 우리 짜장면과는 많이 다르다. 검은색이 아닌 갈색의 소스는 걸쭉함이 전혀 없이 다진 고기 볶음에 가깝다. 전혀 달지 않고 짠맛이 매우 강하다. 필자도 자장미엔을 처음 먹었을 때, 짜장면을 전혀 연상할 수 없는 맛에 당황스러웠다. 

자장미엔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19세기 후반, 개항기 무렵이다. 당시 인천 제물포에 중국인 조계지가 생겼는데, 이때 중국인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자장미엔도 함께 들어왔다. 처음에는 중국인 조계지 내 중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길거리 음식에 불과했지만 서서히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이름을 알려나갔다. 저렴한 길거리 음식이었지만 점차 식당에서도 팔게 되었다. 우리나라 짜장면의 원조라고 알려진 공화춘(인스턴트 컵 짜장면/ 짬뽕 브랜드이기도 하다)은 처음으로 짜장면을 판 식당이라고 알려져 있다. 짜장면이라는 이름은 이 무렵에 붙었다. 자장미엔이란 중국어가 한국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짜장면으로 바뀐 것이다.

▲ 중국의 자장미엔 (출처: 百度百科)

짜장면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고,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은 한국 전쟁 이후의 일이다. 6, 70년대 한국 사회의 격변이 짜장면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전쟁 후 한중 관계가 악화된 데다 화교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정부는 화교들의 토지소유와 사회진출을 제약했다. 그 전에는 많은 화교들이 한중 무역에 종사하거나 농사를 지어왔지만 규제 이후 생업을 잃고 중국음식점을 차리기 시작했다. 1948년 332개였던 중국음식점은 1964년 2,307개로 크게 늘었다.(박은경 연구) 한국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중국음식점들은 짜장면을 한국인들 입맛에 맞춰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단맛이 강하고, 걸쭉한 소스의 짜장면이 탄생했다. 

혼분식 장려운동과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도 짜장면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전후 약 30년 간 미국에서 식량 원조를 받았는데, 그중 핵심 품목이 밀가루였다. 정부는 부족한 쌀의 수요를 제한하고, 밀가루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 혼분식 장려운동을 실시했다. 수요일과 토요일은 무미일(無米日)로 지정해 식당에서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게 했고, 언론에서도 적극적으로 밀가루 음식 소비를 장려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과 값싼 밀가루 가격은 짜장면의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짜장면이 점차 대표적인 외식 메뉴로 자리 잡자 정부는 물가 안정 정책의 일환으로 짜장면 가격을 통제했다. 이 때문에 짜장면 품질 하락 등의 이슈도 있었으나, 짜장면이 보편화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 1971년 한국 부인회 혼·분식 장려 궐기 대회 모습 (출처: 서울신문)

보편화되었다고는 하나 6, 70년대까지만 해도 짜장면은 여전히 특별한 음식이었다. 외식 자체가 특별했던 시절, 짜장면은 졸업식이나 생일같이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외식문화가 형성되던 초창기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 잡은 짜장면은 외식 문화가 확산되면서 그 위치를 더더욱 공고히 했다. 지금 짜장면은 옛날만큼 특별한 음식은 아니지만 우리 삶에 깊게 녹아든 음식이다. 이사할 때, 당구장에서 음식을 시켜먹을 때, 햇빛 좋은 날 대학 캠퍼스에서 친구들이랑 둘러앉아 음식을 시킬 때, 짜장면은 결코 빠지지 않는다.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음식인 만큼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 (짜장면 종류가 이토록 다양한 데에는 오랜 정부의 가격 통제 영향이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몇 가지 대표적인 메뉴를 살펴보자. 간짜장은 마른 짜장이란 뜻이다. 일반 짜장은 춘장에 물과 전분을 넣어 걸쭉하게 만드는 반면, 간짜장은 물을 넣지 않고 대신 고기와 야채 등 재료를 듬뿍 넣어 소스를 만든다. 소스 건더기가 일반 짜장보다 더 많다. 삼선짜장은 해산물이 많이 들어간 짜장면이다. 쟁반짜장은 보통 쟁반 2인분씩 나오는데, 소스와 면이 따로 나오는 일반 짜장면과 달리 소스와 면이 함께 볶아져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유니짜장은 재료를 모두 잘게 갈아서 춘장에 볶아 만든다. 어린이나 노인분들이 먹기 편하다. 짜장면을 집에서 손쉽게 먹기 위한 인스턴트 제품도 많다. 1980년대 출시한 짜파게티가 절대적인 선두자리를 차지하고는 있으나, 짜왕, 진짜장, 팔도 짜장면, 갓짜장 등 여러 제품들이 계속해서 출시되고 있다.

▲ 짜왕. 짜파게티로 오랜 기간 짜장 라면 시장을 장악한 농심에서 내놓은 프리미엄 짜장라면이다.

문화관광부는 짜장면을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100대 민족문화 상징으로 선정했다. (2006년) 그 시작이 어떠했고 어디 음식임을 따지기 전에, 이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고 우리 근현대사에 깊게 녹아든 음식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짜장면이 우리 한식의 대표주자임은 분명하다. 

소믈리에타임즈 솜대리 somdae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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