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 도시인 베로나가 있는 곳, 베네토. 워낙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어서 누군가는 상큼한 소아베를, 다른 누군가는 짙은 아마로네를, 또 누구는 프로세코를 떠올릴 것이다. 베네토의 한두가지 와인만 마셔서는 이곳의 와인을 한 번에 파악하기 어렵다. 레드부터 화이트, 스파클링, 스위트에 이르기까지 와인 스타일이 다양할뿐더러, 스타일마다 클라시코, 수페리오레 등의 이름이 붙으며 등급도 여러 단계로 나뉘기 때문이다. 베네토의 대표 와인 산지인 발폴리첼라, 소아베, 바르돌리노를 돌아보며 이곳의 주요 와인 스타일을 소개하겠다.

발폴리첼라(Valpolicella)

와인병에 '발폴리첼라 DOC'라고만 적혀있다면 붉은 과일 향이 올라오는 중간 바디감의 레드 와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 로마 시대부터 와인이 재배되던 발폴리첼라 역시 이탈리아에서 한창 DOC 규정이 정립되던 1968년에 DOC 산지로 인정받았는데, 이때 비옥한 평야까지 포함된 넓은 지역이 DOC에 속하며 생산량이 과도하게 증가했다. 생산량에 비해 와인의 품질은 떨어져갔고, 이 때문에 와인이 저렴하게 팔리자 생산자들은 생산비용이 많이 드는 언덕 및 클라시코 지역의 재배를 줄여갔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어 발폴리첼라 와인은 저가의 데일리 와인이라는 인식이 박혀버렸다. 1980년대 이후부터 이러한 인식을 바꾸고자 지역 생산자들이 우수한 발폴리첼라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 발폴리첼라의 운명을 구한 와인은 바로 '아마로네(Amarone)'다. <사진= 김지선>

발폴리첼라의 운명을 구한 와인은 바로 '아마로네(Amarone)'다. 1950년대에 등장한 아마로네는 건포도를 발효한 와인으로, 지금도 발폴리첼라의 최고급 와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마로네에 사용되는 포도는 수확한 포도를 말리거나 독일의 슈패트레제처럼 늦게 수확하여 40% 이상 수분이 빠진 건포도다.

원래는 이 지역의 또다른 유서깊은 와인인 레드 스위트 와인 레치오토(recioto)를 만들려 했는데, 1950년대 즈음 실수로 포도즙을 모두 발효하는 바람에 드라이한 아마로네 와인이 탄생했다. 응축된 향기와 짙은 바디감에 아마로네는 1980년대부터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다. DOCG 등급을 받기 위해 45~95%의 코르비나(Corvina), 5~10%의 론디넬라(Rondinella), 50% 이하의 코르비노네(Corvinone), 15%이하의 베네토 품종이 사용되어야 한다. 정식 원산지 통제 명칭은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Amarone della Valpolicella) DOCG'다.

아마로네의 탄생을 도운, 보다 역사가 깊은 레드 스위트 와인 레치오토의 DOCG 이름은 '레치오토 델라 발폴리첼라(Recioto della Valpolicella)'다. 건포도를 만드는 과정까지는 아마로네를 만드는 것과 동일하며, 발효를 중간에 멈춰 잔당을 남기는 점이 아마로네와 다르다. 달콤한 화이트 와인 버전의 레치오토도 있는데, 이는 소아베와 감벨라라(Gambellara) 마을에서 생산된다.

▲ 아마로네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 껍질 등을 이용해 만든 와인 리파소 <사진= 김지선>

아마로네의 유행은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을 낳았다. 아마로네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 껍질 등을 이용해 만든 리파소(Ripasso)라는 와인이다. 아마로네 와인을 만든 생산자들은 남은 포도 껍질을 발폴리첼라 와인에 넣고 다시 발효하여 알코올 도수와 타닌이 더 강한 리파소 와인을 만들었다. 리파소의 정식 이름은 '리파소 델라 발폴리첼라(Ripasso della Valpolicella) DOC'다.

발폴리첼라의 산지는 가장 서쪽의 클라시코, 중간의 발판테나(Valpantena), 동쪽의 에스트(Est)로 나뉜다. 데일리급인 발폴리첼라 DOC는 이중 무거운 토양에 평균 온도가 높은 평지에서 생산되며, 발폴리첼라 클라시코 DOC, 발폴리첼라 수페리오레 DOC, 아마로네, 리파소, 레치오토는 석회질이 많고 서늘한 언덕에서 생산된다. 발폴리첼라에 사용되는 포도 품종은 코르비나, 론디넬라, 몰리나라(Molinara)다.

소아베(Soave)

1968년 발폴리첼라와 함께 DOC 산지 등급을 받으며 수출량이 많이 증가했다. 소아베 동쪽의 화산토에서 자란 와인들은 서쪽의 석회암 토양보다 철의 미네랄리티가 많이 느껴진다. 소아베의 대표 품종은 토착 포도인 가르가네가다. 70% 이상 들어가야 하며, 와인은 중간 바디감에 산미가 높고 캐모마일 등의 흰 꽃 허브향과 함께 사과 등의 과일 향이 두드러진다. 고급 소아베로 만들 경우 오크통 숙성을 거치기도 하며, 숙성하면서 견과류와 꿀향기가 더해진다. 소아베에 허용되는 다른 품종은 트레비아노 디 소아베(Trebbiano di Soave, 베르디키오와 같은 품종)·샤르도네·피노 비앙코·소비뇽 블랑인데, 이들은 총 30%까지 더해질 수 있다.

▲ 지역 와이너리의 노력덕에 소아베의 전반적인 와인 품질이 높아졌다. <사진= 김지선>

소아베 생산자들은 소아베의 명성을 되살리고자 47개의 세부구역을 만들고 단일 밭을 개발했는데, 그결과 이나마, 피에로판, 수아비아 등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와이너리들이 생겨나고 소아베의 전반적 와인 품질이 높아졌다.  

소아베의 DOC 및 DOCG 등급은 4개로, 기존의 소아베 DOC, 소아베 클라시코 DOC, 클라시코 지역 바깥의 언덕을 포함하는 소아베 콜리 스칼리게리(Soave Colli Scaligeri) DOC, 2002년에 생긴 소아베 수페리오레 DOCG가 있다.

레치오토 화이트 와인은 발폴리첼라 레치오토보다 보기 어려운 편이다. 가르가네가 70% 이상, 트레비아노 디 소아베(Trebbiano di Soave)·피노 비앙코·샤르도네 30% 이하로 만든 '레치오토 디 소아베(Recioto di Soave) DOCG', 가르가네가 100%로 만든 '레치오토 디 감벨라라(Recioto di Gambellara) DOCG'가 있다. 

바르돌리노(Bardolino)

발폴리첼라처럼 가벼운 레드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다. 발폴리첼라, 소아베처럼 클라시코라는 전통 와인 산지가 지정되어 있으나 워낙 클라시코 지역의 범위가 넓고 품질 관리가 느슨하여 데일리 와인이 많이 생산된다. 코르비나, 론디넬라, 몰리나라가 주로 사용되며, 최대 20%까지 베네토에서 허용된 기타 품종이 들어갈 수 있다. 특히 메를로가 자주 사용되는데, 메를로가 블렌딩 될 경우 바르돌리노 DOC의 최저 알코올 도수(10.5%)보다 높은 11.5%로 와인이 만들어져야 한다. 따라서 메를로가 들어간 바르돌리노 와인에서 일반 바르놀리노보다 응축된 풍미를 기대할 수 있다. 바르돌리노 DOC, 바르돌리노 수페리오레 DOCG가 생산된다.

레 프라게(Le Fraghe) 와이너리는 이곳의 다수 생산자와 달리 바르돌리노 와인의 장점을 잘 살려내 주목받고 있다.

* 클라시코(Classico)

▲ '클라시코'와 '수페리오레'가 동시에 붙는 와인도 있다. 발폴리첼라 클라시코 수페리오레 DOC는 클라시코 지역 내에서 알코올 도수 11도를 넘고 1년이상 숙성한 와인에 표기될 수 있다. <사진= 김지선>

DOC 또는 DOCG 와인에 쓰이는 용어로, 포도를 재배하기에 토양과 기후가 이상적인 역사가 오래된 와인 산지를 의미한다. 1930년대 키안티에서 처음 클라시코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는 1960년대에 다른 와인 산지들이 따라하는 선례가 되었다. 바르돌리노, 칼다로, 오르비에토, 발폴리첼라, 소아베, 베르디키오, 텔라노 등에서 와인 산지가 확대되며 기존 와인 산지를 클라시코로 구분하여 쓰고 있다. 클라시코 지역은 일반적으로 클라시코로 지정되지 않은 산지보다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한다.

* 수페리오레(Superiore)

'우수한'이라는 의미로, EU의 제안으로 2008년부터 이탈리아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다. DOC 또는 DOCG 지역에서 최소 알코올 도수가 0.5도에서 1도 높거나, 숙성 기간이 길거나, 포도밭 면적당 포도 생산량이 적은 규정을 따르면 표기할 수 있다. 이 용어는 베네토를 포함한 피에몬테, 프리울리 등 북부 이탈리아에서 주로 사용되며, 프라스카티 수페리오레(Frascati Superiore) DOCG, 바르베라 달바 수페리오레(Barbera d'Alba Superiore) DOC 등이 있다.

김지선 기자는 국제 와인 전문가 자격증 WSET 어드밴스드 과정을 수료후 WSET 디플로마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와인 강의와 컨텐츠를 통해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느끼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김지선기자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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