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긍정을 위한 에로티시즘
카르페 디엠, 와인은 사랑처럼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 Pietra d'Onice Sant'antimo 2003 <사진=WineSearcher>

피에트라 도니체 산탄티모 2003
Casanova di Neri

내가 와인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때가 역삼동에서 가자주류 백화점이 오픈하는 날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얼추 30년쯤 되었습니다.

내 사무실 가까이 와인을 파는 크고 화려한 가게가 생겨서 자주 갔습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마셨습니다. 와인을 아는 사람들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와인을 소개하는 책도 우리나라에는 전무했으니 무식하게 와인을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내 입맛에 맞는 와인이 이탈리아 키안티 와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짚으로 감싸여 피아스코 병에 담겨 있던 키안티 와인을 많이 마셨습니다. 이 향긋한 와인이 산지오베제인 줄도 모르고 마셨던 내 와인의 흑역사였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와인 역사는 향기로운 키안티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와인을 점점 알게 되면서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와인 생산국가는 이탈리아였습니다. 그 어려운 프랑스 와인의 체계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이탈리아는 도저히 정복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그 이유를 알지만 왜 그런지도 모른 채 한동안 오리무중이었지요.

이탈리아 와인은 토착품종만 1,000여 종에 이르고 극도로 복잡한 생산 지역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자유분방한 제조방식과 함께 품종 이름과 지역 이름이 같거나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와인이 생산되는 나라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거의 독학으로 그 난관을 돌파했습니다. 이탈리아는 숨겨져 있는 와인 보석들의 보고였습니다.

이탈리아는 토스카나, 피에몬테, 베네토, 시칠리아같이 유명한 산지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 4대 산지 이외에도 산악지대의 잊혀버린 모퉁이 발레 다오스타, 아펜니노 산맥의 고원 아브루초와 몰리세라든가 세계적인 화이트 와인 산지인 트란티노 알토 아디제를 비롯하여 위대한 무명지 칼라브리아도 있고 남부의 유명한 산지 풀리아, 새롭게 떠오르는 레 마르케 같은 포도 재배지가 산재해 있는 곳으로 전 국토가 그냥 와인 산지입니다. 한마디로 이탈리아 와인은 지금까지도 '엄청난 미스터리' 그 자체입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이탈리아 와인에 특별한 애정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브루넬로 스타일에 섬세한 방점을 찍은 와이너리, 카사노바 디 네리

이탈리아 와인은 언제나 흥미를 끌지만, 그중에서 나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DM)를 특히 좋아합니다. 이 와인은 토스카나에서 생산되는 와인 중에 가장 값이 비싸고 오래 저장할 수 있습니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피에몬테의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와 함께 와인 컬렉터들의 수집 대상이 되는 와인입니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 브루넬로 스타일에 섬세한 방점을 찍은 와이너리가 카사노바 디 네리입니다. 카사노바 디 네리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대표적 생산자의 하나이고 내가 애정하는 와이너리는 비온디 산티도, 아르지아노도, 알테시노도 아닌 바로 카사노바 디 네리입니다.

오늘 마신 와인(Pietra d'Onice Sant'antimo 2003)이 BDM은 아니지만 카사노바 디 네리가 생산하는 또 한 종류의 와인입니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산지오베제의 특수 클론 브루넬로로 만들지만, 이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 90%와 산지오베제 10%로 혼합되었습니다.

15년 숙성된 산탄티모는 아직도 충분히 젊습니다. 루비 빛 컬러가 밝고 투명하게 빛나면서 블랙베리와 블랙체리의 복합적인 과일 향이 치명적으로 달콤한 관능성을 느끼게 합니다.

관능은 기쁨과 쾌락이 뒤섞여 하나가 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쾌락은 그저 만질 수 있는 것과 유한한 것을 필요로 하지 그 너머의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다뉴브>에서 클라우디오 마그리스는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잔의 와인을 앞에 놓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백 마일의 길을 오체투지로 참회하며 기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거대하거나 높은 사유보다는 현실적인 존재에 집중해야 삶이 재미있다고 이 와인은 내게 말합니다. 
'Carpe Diem : 오늘을 즐겨라'

와인은 사랑처럼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삶을 항상 쉽게 풀어주지는 않았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의 발목을 잡고 흔듭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도망칠 수도 없이 언제나 삶에 내재합니다. 어떤 초월성도 신앙도 삶의 바깥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와인이 내게 말해주는 듯합니다.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랑에 삶의 의미를 두어야한다는 듯 입안을 가득 채우는 집중도 높은 타닉함은 부드럽고 세련된 매너를 가진 남성성이 때로는 거친 야성미를 보여줄 줄 아는 매력처럼 섹시합니다.

이 와인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마셔야 온당한 음용입니다. 그래야만 쾌락이라는 파괴적 열망과 창조적 행동을 내포한 사랑의 에너지가 두 사람이 함께 구축한 삶 속에서 활짝 피어나는 관능으로 풍요로와집니다.

피에트라 도니체 산탄티모는 카사노바 디 네리의 뛰어난 두 개의 포도밭 테누타 누오바와 체레탈토에서 수확된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양조 되었습니다. 적당하게 잘 익은 카베르네의 달콤한 카시스와 견고한 탄닌이 고급스럽게 결합된 와인입니다. 카베르네소비뇽의 잠재력을 산지오베제의 아로마와 다채롭게 조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카사노바 디 네리 와인의 최고봉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체레탈토입니다. 이 와인 한 케이스(2004)가 셀러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습니다. 어느 화려한 날 이들을 깨워서 즐거움의 극치를 누려보겠습니다.

천재적인 세기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되어 이 와인 한 모금을 통해서 '에로티시즘이란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을 긍정하는 것'(죠르즈 바타유)임을 확인해보려 합니다.

마숙현 대표는 헤이리 예술마을 건설의 싱크탱크 핵심 멤버로 참여했으며, 지금도 헤이리 마을을 지키면서 `식물감각`을 운영하고 있다. 와인, 커피, 그림, 식물, 오래 달리기는 그의 인문학이 되어 세계와 소통하기를 꿈꾼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마숙현 meehan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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