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여유를 사랑하는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에 종종 담기는 곳, 남프랑스. 지중해의 온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남프랑스도 매력적이지만, 정작 내 눈길이 향하는 곳은 이보다 살짝 북쪽에 있는 론(Rhone) 계곡이다.

론 계곡은 리옹과 아비뇽 사이에 있는 50km의 세로로 긴 강이다. 보르도와 부르고뉴, 샹파뉴에 버금가는 뛰어난 와인들로 이름을 알렸는데, 품질은 물론이고 역사적으로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와인 역사는 무려 기원전 1세기에 시작되며, 로마에서 프랑스로 교황청이 옮겨진 시기에 교황이 즐겨 마시던 와인 샤토뇌프-뒤-파프(Châteauneuf-du-Pape) 와인도 론에 있다. 중세 시대에는 부르고뉴를 지배하던 독일인이 론 와인의 운송 통로를 막아 파리나 영국 등으로의 수출을 방해하기도 했다.

론의 와인 생산지는 북부 론, 남부 론, 디(Die), 방투(Ventoux)를 포함한 남부 론 동쪽의 여러 마을 등 4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매우 가파른 언덕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북론과, 비교적 평평한 대지의 남론이 론 와인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된다. 그런데 이 두 지역은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날씨도, 토양도, 기르는 포도도 달라서 각자의 개성이 매우 뚜렷하다.

북부 론(Northern Rhone)

▲ 북부 론 지도 <사진= WSET 디플로마 유닛 3 스터디 가이드 발췌>

포도밭이 적기도 하고 험한 산지에 있어 북론의 와인 생산량은 론 전체의 5%를 차지하지만, 이 와인들은 뛰어난 품질로 정평이 나 있다.

북론은 보졸레에서 남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내륙 깊숙이 위치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추운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대부분의 포도밭은 매우 가파른 경사면에 있는데, 모두 수작업이 필요한 어려움이 있지만 햇빛을 강하게 받으면서도 일교차가 커서 세계적인 품질의 와인이 생산된다.

▲ 이기갈 생-조제프 비뉴 드 로스피스(E.Guigal Saint-Joseph Vignes de l'Hospice) 2016 <사진= 김지선>

북론의 AOC 지역은 코트 로티(Côte Rôtie), 콩드리외(Condrieu), 샤토 그리예(Château Grillet), 생-조제프(Sain-Joseph), 에르미타주(Hermitage), 크로즈-에르미타주(Crozes-Hermitage), 코르나스(Cornas), 생-페레(Saint-Péray)가 있다. 에르미타주와 크로즈-에르미타주를 빼면 모든 포도밭들은 강의 왼편에 자리 잡고 있다. 화이트 와인만 생산하는 콩드리외와 샤토 그리예, 생 페레 외에는 레드와 화이트 와인을 모두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레드 와인의 생산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북론 레드 와인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소량의 청포도를 시라와 함께 발효할 수 있는 점이다. AOC 지역에 따라 10%에서 20%의 청포도 블렌딩이 허용되는데, 실제로 이를 따르는 곳은 코트 로티 정도다. 비오니에가 섞인 코트 로티 와인은 검붉은 과실 향에 꽃향기와 열대과일 향이 더해진 덕에 화사한 맛을 뽐낸다.

▲ 이기갈 콩드리외(E.Guigal Condrieu) 2016 <사진= 김지선>

허용되는 포도 품종의 종류는 남론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적포도는 시라만 재배될 수 있고, 청포도는 비오니에(Viognier)와 마르산(Marsanne), 루산(Roussanne)이 허용된다. 시라로 만든 레드 와인은 붉은 과일 향과 검은 과일 향이 골고루 있으며, 호주의 쉬라즈와는 달리 정향, 계피, 후추 등의 향신료 향이 두드러진다. 비오니에는 백합, 리치, 파인애플의 열대과일 향이 강하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으로 만들어진다. 포도의 향기가 강한 품종은 보통 오크 발효나 숙성을 거치지 않는 데 반해, 비오니에는 생산자가 추구하는 바에 따라 오크의 사용이 자유롭다. 덕분에 가뜩이나 바디감 있는 화이트 와인에 한층 더 무게가 더해지기도 한다. 

▲ 알랭 그라요 크로즈-에르미타주(Alain Graillot Crozes-Hermitage) 2013 <사진= 김지선>

산지의 규모가 작아 와인 생산자도 가족 단위인 곳이 많다. 유명한 가족 경영 와이너리로는 샤브(Chave)와 샤푸티에(Chapoutier)가 있고 대규모 와이너리겸 네고시앙은 이 기갈(E.Guigal), 폴 자불레(Paul Jaboulet)가 있다. 워낙 생산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전체 생산되는 와인 중 절반 이상이 자불레, 샤푸티에, 델라스(Delas), 기갈의 와이너리에서 병입된다.

남부 론(Southern Rhone)

▲ 남부 론 지도 <사진= WSET 디플로마 유닛 3 스터디 가이드 발췌>

넓고 평평한 대지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자라며 받은 와인이 가득한 곳이다. 남론은 지중해와 지리상 가까이 있기에 겨울에 주로 비가 내리는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에 속한다. 여기에 포도밭 위에 널리 깔린 큰 자갈들은 낮의 온기를 흡수한 후 밤에 방출하여 차가운 밤공기를 누그러트린다. 덕분에 포도가 잘 익고, 이 포도로 만든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14도를 넘는 일이 많다.

북론이 시라 100%로 단일품종 와인을 만든다면, 남론은 그르나슈, 시라, 무르베드르를 필두로 한 블렌딩 와인을 만든다. 남론의 대표 와인 블렌딩은 이 세가지 품종의 첫 알파벳을 가져와서 GSM 블렌딩이라고 부른다. 그르나슈가 시라보다 두 배 이상 많이 재배되며, 무르베르는 셋 중 가장 적게 재배된다. 그러나 생산자에 따라 이 세가지의 비율이 달라지기도 한다. GSM 다음으로는 카리냥(Carignan), 생소(Cinsaut), 무르베드르(Mourvèdre)와 같은 토착 품종이 뒤를 잇는다. 청포도 품종 중에는 그르나슈 블랑, 부르불랑(Bourboulenc), 위니 블랑(Ugni Blanc), 클라렛(Clairette), 비오니에, 마르산, 루산, 베르멘티노, 마카베오 등이 사용된다.

▲ 셀리에 데 프랭스 샤토뇌프-뒤-파프(Cellier des Princes Châteauneuf-du-Pape) 2016 <사진= 김지선>

남론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은 단연 샤토뇌프-뒤-파프(앞 철자를 가져와 CDP라고 부름)다. CDP는 불어로 '교황의 새로운 성'이라는 뜻인데, 교황청이 아비뇽에 있던 시절 아비뇽에서 북쪽으로 16km 떨어진 교황의 여름 별장에서 따온 이름이다. 교황 클레망 5세가 아비뇽에 거처를 마련한 1309년 이후, 그가 현재의 CDP 지역에 포도를 심도록 지시했으며 실제로 포도밭을 일구어낸 자는 클레망 5세의 계승자인 교황 존(John) 22세다. 이렇게 약 70년간 교황청이 아비뇽에서 소비한 와인의 3분의 2는 가까이에 있는 론 와인이었다. 이 때문에 14세기 와인 무역에서 론 와인은 보기 힘들 정도로 희귀했다고 한다. 교황청의 론 와인 사랑은 교황청이 로마로 돌아간 후에도 계속됐다. 남론의 AOC 지역은 샤토뇌프-뒤-파프, 코트 뒤 론(Côtes du Rhône), 코트 뒤 론 빌라주, 지공다스(Gigondas), 바케이라(Vacqueyras), 리락(Lirac), 타벨(Tavel) 등이 있다. 발효중 높은 도수의 주정을 넣어 만든 주정강화 와인 산지인 봄-드-브니즈(Beaumes-de-Venise)와 라스토(Rasteau)도 남론의 AOC 중 하나다.

CDP 와인에는 최대 13가지의 포도 품종이 사용될 수 있다. 역시나 레드 와인이 전체 생산량의 93%를 차지하고, 화이트 와인은 7%만 생산된다.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은 그르나슈다. 남론의 따뜻한 날씨에서 햇빛이 많이 필요한 만생종 그르나슈가 가장 잘 자라기 때문이다. 덕분에 CDP를 포함한 남론의 레드 와인은 북론 와인보다 무거운 바디감에 푹 익은 과일 향이 많고, 향신료 향도 강하다. 이전에는 높은 온도에서 포도 줄기를 넣어 발효하며 타닌이 강한 스타일을 만들었다면, 점차 오래 숙성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과실향 많은 스타일의 와인이 많아지고 있다. 다른 따뜻한 와인 산지들과 마찬가지로 기후 변화와 현대인의 선호도가 양조방식 변화의 큰 원인이다.

▲ 장 루이 샤브 셀렉시옹 코트 뒤 론 몽 쾨르(J.L. Chave Selection Cotes du Rhone Mon Coeur) 2015 <사진= 김지선>

남론의 생산 구조 또한 북론과 차이를 보인다. 남론은 협동조합이 전체 와인 생산량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러나 요즘은 CDP지역 위주로 개인 생산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생산자에 따라 와인 생산하는 스타일이 다양하다. 어떤 곳은 탄산 침용을 거치기도 하고, 어떤 생산자는 아주 낡은 오크통에서 와인을 발효하기도 한다.

유명 생산자들은 CDP에 밀집해 있다. 샤토 드 보카스텔(Chateau de Beaucastel), 클로 데 파프(Clos des Papes), 앙리 보노(Henri Bonneau), 도멘 뒤 비외 텔레그라프(Domaine du Vieux Télégraphe)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생산자다.

김지선 기자는 국제 와인 전문가 자격증 WSET 어드밴스드 과정 수료후 WSET 디플로마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와인 강의와 컨텐츠를 통해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느끼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김지선 기자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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