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반에 한두 명은 꼭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친구들이 있었다. 목소리 크고 활발한 아이들이 동급생들의 관심을 받았다면, 이들은 뒤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거나 그런 친구들을 웃으며 바라보는 역할을 했다. 선생님이 발표를 시킬 때 맨 마지막에 눈길을 주는 곳도 이런 친구들이었다. 겉으로만 흘긋 봐서는 이들의 매력을 알아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조용한 친구들은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그들만의 매력이 있다. 이들은 보통 침착하며,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안다. 그래서 이들의 옆에 앉는 순간 긴장된 마음이 저절로 풀리기도 한다. 요란한 친구들에게 묻혀 이들의 진가가 널리 알려지지 못했지만, 나는 오히려 소수만 알아볼 수 있는 모습 같아서 묘하게 기뻤다.

이탈리아 중부에는 이탈리아의 토착 포도로 만든 와인이 가득하다. 키안티 클라시코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처럼 고급 와인의 반열에 오른 것도 있지만, 뛰어난 품질에 비해 아직 조명을 받지 못한 와인이 많다. 베르나차와 베르디키오라는 생소한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마셔봤다. 라벨에는 잘 모르는 지역, 품종이 적혀 있어 손이 가지 않게 생겼다. 그런데 일단 병을 열어보니 기대하지 않은 상큼한 맛이 들어있었다. 이 와인들을 마시고 있자니 조용히 자신의 매력을 뿜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자세히 보면 사랑스러운 와인이 많은 곳, 중부 이탈리아 와인을 소개한다.

토스카나(Toscana)

1. 산지오베제(Sangiovese)&키안티(Chianti)

▲ 마체이 폰테루톨리 키안티 클라시코(Mazzei Fonterutoli Chianti Classico) 2015 <사진= 김지선>

산지오베제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품종으로, 주 재배지가 중부 이탈리아에 몰려있다. 브루넬로, 프루뇰로 젠틸레(Prugnolo Gentile), 니엘루초(nielluccio) 등 다양한 클론이 있는 포도인데, 토스카나에서는 키안티와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수퍼투스칸 와인을 만들 때 널리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움브리아와 마르케, 라치오 지역에서도 다뤄지는 품종이다.

G.몰론(G.Molon)의 1906년 연구 결과로 인해 산지오베제는 산지오베제 그로소(Grosso)와 산지오베제 피콜로(Piccolo) 두 가지로 나뉘었다. 산지오베제 그로소는 브루넬로와 프루뇰로 젠틸레, 산지오베제 디 라몰레(Lamole)를 포함하는 품종이고, 산지오베제 피콜로는 토스카나의 나머지 지역에서 재배되는 품종이 되었다. 품질이 더 좋은 포도는 전자다.

토스카나와 움브리아에서는 단일 품종으로 또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블렌딩되어 품질 좋은 산지오베제 와인이 많이 생산된다. 반면 품질보다 생산량에 치중한 로마냐(Romagna) 지역에서는 가벼운 조기 소비용 와인이 만들어진다.

산지오베제는 매우 늦게 익는 품종이다. 그래서 9월 말이 되어야 재배를 시작하는데, 뜨거운 해에 재배되면 풍부하고 장기 숙성력이 뛰어난 와인이 된다. 대체로 산미가 높고 타닌이 많은 편이다.

붉은 과일: 체리, 딸기, 말린 토마토, 구운 토마토, 라즈베리
검은 과일- 블랙 베리, 플럼
허브- 타임, 마조람, 말린 꽃, 후추
오크- 계피, 정향, 모카, 에스프레소, 담배
기타- 가죽, 화분, 발사믹

키안티는 13세기 중후반 발리아차(Baliaccia)와 몬테 루코(Monte Luco) 언덕 사이에 있는 키안티 산맥에서 따온 DOC 산지다. 품질 낮은 저렴한 키안티 와인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오래 전부터 키안티 지역 전체는 와인 세계에서 등한시되었다. 지금도 키안티라고만 표기된 와인은 비슷한 특징을 보여주지만,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 및 키안티 콜리 세네시(Colli Senesi), 키안티 루피나(Rufina)를 포함한 키안티 내의 일곱 지역에서는 우수한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키안티 DOC 등급을 표기하기 위해서는 최소 70%의 산지오베제를, 키안티 클라시코 DOCG 등급을 표기하려면 최소 80%의 산지오베제를 사용해야 한다.

2. 브루넬로(산지오베제 그로소)&몬탈치노

브루넬로는 한때 몬탈치노 지역 사람들이 이 지역만의 토착 품종이라 믿었으나, 1987년 연구 결과 산지오베제 품종으로 밝혀졌다. 자세히 들어가자면, 브루넬로는 산지오베제의 우수한 클론 중 하나인 산지오베제 그로소다. 이탈리아에서 손에 꼽는 프리미엄 와인에 속한다.

▲ 탈렌티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Talenti Brunello di Montalcino) 2012<사진= 김지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 BDM)라는 이름을 걸고 최초로 와인을 만든 생산자는 1888년 페루키오 비온디 산티(Ferruccio Biondi-Santi)다. 비온디 산티는 브루넬로를 사용하여 독자적인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1968년에는 DOC 등급을, 1980년에는 DOCG 등급을 받았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지금과 같은 명성에 놓은 와이너리는 미국 회사 반피(Banfi)로, 1970년대에 이 지역에서 와인을 대량으로 생산하며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세계에 알리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 그덕에 1960년대에 겨우 11명이던 지역 생산자들은 2012년 258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BDM 와인의 특징은 클론에서 나오는 성격보다는 기후와 포도밭의 방향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대부분의 토스카나 지역보다 따뜻하고 건조한 몬탈치노의 기후, 밤에 불어오는 서늘한 남서풍이 포도의 숙성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몬탈치노는 토스카나 지역에서 가장 따뜻하고 건조한 지역이다. 그래서 인근의 키안티 클라시코와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보다 거의 1주일까지 수확기를 앞당기기도 한다. 이런 뜨거운 날씨 탓에 신선하고 향기가 풍부한 와인은 주로 북향의 언덕에서 나온 포도로 만들어진다.

1만 7천 헥타르에 달하는 키안티의 재배면적과 비교하면 몬탈치노는 2천 헥타르에 불과한 작은 산지다. 그러나 석회암, 진흙, 편암, 화산암, 이회토 등의 다양한 토양이 몬탈치노 전역에 퍼져있다.

BDM 와인 생산자들은 침용기간을 길게 하여 색과 풍미를 많이 추출해낸다. 발효가 끝난 와인은 보테(Botte)라는 슬라보니아산 오크 캐스크 또는 프랑스 바리크에서 2년 이상 숙성해야 한다. 보티에서 숙성될 경우 와인에 오크향은 적게 더해지고 타닌은 부드워지지만, 일부 생산자들은 바닐라 향을 넣기 위해 바리크를 사용하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많은 생산자들이 다시 보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많은 와이너리는 노말레(Normale)와 리제르바(riserva)스타일로 나누어 와인을 만든다. 노말레 스타일은 포도 수확 후 50개월이 지나 판매되고, 리제르바 스타일은 그보다 1년이 더 지나서 판매된다. 생산자마다 다양한 스타일을 사용하지만, 최고의 BDM와인은 모두 붉은 과실에 구조감이 탄탄하고 우아하다.

3. 베르나차(Vernaccia)&산 지미냐노(San Gimignano)

▲ 몬테니돌리 피오레 베르나차 디 산 지미냐노(Montenidoli Fiore Vernaccia di San Gimignano) 2016 <사진= 김지선>

베르나차는 지역마다 이름을 조금씩 달리하여 청포도 또는 적포도로 불리고 있다. 마르케에서는 그르나슈와 같은 품종을 베르나차 네라(Vernaccia Nera)라고 부르는데, 가장 유명하고 인정받은 와인은 산 지미냐노에서 사용되는 청포도 베르나차다. 이 품종은 높은 감귤류 향을 뿜어낸다.

산 지미냐노는 토스카나의 시에나 지역에 있는 토스카나의 유일한 화이트 와인 DOCG등급 산지다. 20세기 말, 베르나차 디 산 지미냐노 와인이 수출 호황기를 맞으며 지역 생산자들은 신선한 베르나차 와인 생산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후 국제 품종이 이탈리아 곳곳에 들어오고 산지오베제의 인기가 올라가며 베르나차 와인 소비는 하강세에 접어들었다.

움브리아(Umbria)

북쪽에 있는 토스카나와 지리 및 기후가 비슷한 생산지다. 움브리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적포도 품종은 산지오베제로, 재배 면적이 2010년 기준 2천 460헥타르에 달했다. 그 다음으로는 국제 품종인 메를로(1천 297헥타르), 토착 품종 사그란티노(Sagrantino), 카베르네 소비뇽 순으로 많이 재배되고 있다. 가장 많이 재배되는 청포도 품종은 트레비아노 토스카노(1천 452헥타르)인데, 움브리아에서는 프로카니코(Procanico)라고 불린다. 이 품종 다음으로 많이 재배되는 포도는 그레케토(Grechetto)고, 샤르도네도 소량 재배되고 있다.

트레비아노, 트레비아노 스폴레티노

트레비아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청포도로, 최소 6 종류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트레비아노로 불린다면 이는 트레비아노 토스카노를 의미한다.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이 트레비아노 토스카노이며, 그 다음은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많이 재배되는 트레비아노 로마놀로(Romagnolo)다. 트레비아노는 산지오베제가 거의 재배되지 않던 1700년대 이전에 말바지아와 함께 토스카나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던 품종이었다. 그러나 산지오베제의 재배 면적이 크게 늘며 현재는 토스카나에서 두 번째로 많이 재배되는 품종이 되었다.

트레비아노 토스카노로 가장 유명한 DOC 산지는 오르비에토(Orvieto)인데, 최소 60%는 트레비아노와 그레케토가 사용되어야 한다. 트레비아노 기알로(Giallo) 또는 트레비아노 스폴레티노와 같은 다른 트레비아노 품종은 소량만 재배된다.

트레비아노가 복잡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포도 품종에 트레비아노라는 이름이 있어도 다 트레비아노 품종은 아닌 점이다. 트레비아노 디 소아베나 트레비아노 디 루가나(Trebbiano di Lugana)는 마르케의 청포도 베르디끼오와 같은 품종이다. 트레비아노 토스카노는 DNA연구를 통해 소아베의 가르가네가 품종과 부모-자식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품종은 프랑스에서 위니 블랑(Uni Blanc)으로 불린다. 이 금색의 포도는 생산력이 좋고 포도의 향이 강하지 않아 코냑 생산에 주로 사용된다. 또 가볍고 산도가 좋은 점은 트레비아노 토스카노의 특징이다.

트레비아노 스폴레티노는 움브리아에서 특별히 재배되는 품종으로, 중성적인 트레비아노 토스카노보다 풍미가 뚜렷하다. 주로 허브, 감귤류의 향이 강하며, 늦게 익고 생산량이 적고 질병을 잘 견딘다. 때때로 아니스와 발사믹 향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생산 방식에 따라 와인 스타일이 굉장히 다르다.

마르케(Marche)

마르케는 이웃한 움브리아, 토스카나와 비슷하게 따뜻하고 건조한 지역이다. 바다와 접해있어 토양의 주된 성분은 석회질이며, 산지오베제와 몬테풀치아노, 베르디키오가 가장 많이 재배된다. 고급 몬테풀치아노 와인은 코네로(Conero) DOCG에서 생산된다. 산지오베제는 마르케의 15개 DOC 산지 중 6개에서 재배되는데, 주로 몬테풀치아노와 블렌딩되는 용도로 쓰인다. 이곳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품종은 청포도 품종인 베르디키오다. 마르케 내의 DOC중 베르디키오 데이 카스텔리 디 예지의 지역이 가장 넓은데, 바로 아래에 있는 베르디키오 디 마텔리카보다 부드러운 풍미를 드러낸다.

베르디키오(Verdicchio)

▲ 모나체스카 미룸(Monacesca Mirum) 2014 <사진= 김지선>

베르디키오는 트레비아노 디 소아베와 동일한 품종으로, 수백 년간 마르케를 대표한 청포도 품종이었다. 마르케에는 베르디키오가 생산되는 두 개의 DOC 산지가 있는데, 하나는 베르디키오 데이 카스텔리 디 예지(Verdicchio dei castelli di Jesi)고 다른 하나는 베르디키오 디 마텔리카(Verdicchio di Matelica)다. 뛰어난 베르디키오 와인은 석회질 토양에서 온 미네랄 풍미와 함께 귤향이 두드러지며, 레몬과 같은 높은 산미를 자랑한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중부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처럼 껍질을 접촉한 채 발효했으나, 현재는 침용 없이 온도 조절 탱크에서 생산된다. 포도의 산도가 높아 파시토 와인(Passito, 말린 포도로 만든 와인)인 레치오토 디 소아베를 만들때도 사용된다. 스틸 소아베 와인에서 가르가네가와 함께 사용될 때는 향기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아부르쪼

해안가를 따라 마르케의 남부에 위치한 지역이다. 몬테풀치아노와 트레비아노가 가장 유명한데, 와인 품질에 비해 인기가 덜하다. 그러나 프리미엄 와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세 개의 작은 DOC 산지 빌라마그나(Villamagna), 테레 톨레시(Terre Tollesi), 오르토나(Ortona)에서는 최소 95%의 몬테풀치아노 품종이 사용되어야 한다. 아부르쪼의 유일한 DOCG 산지인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쪼 콜리네 테라마레(Colline Teramare)에서는 높은 품질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 마시아렐리 빌라 젬마(Masciarelli Villa Gemma) 2011 <사진= 김지선>

몬테풀치아노는 이탈리아 중부에 널리 재배되는 품종으로, 아부르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된다. 산지오베제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토착 품종이기도 하다. 현재 마르케와 몰리세, 퓰리아, 움브리아를 포함한 20개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최고의 몬테풀치아노 와인은 색이 짙고 잘 익은 타닌을 드러낸다. 만생종이어서 북부에서는 자라기 어려운 품종이나, 움브리아와 마렘마 등 중부 이탈리아에서는 잘 익은 포도가 생산된다. 보통 메를로와 비슷한 붉은 과실 풍미를 보여주지만, 고급 몬테풀치아노 와인 생산자들은 풀 바디감의 어두운 과일을 드러내는 스타일로 만든다.

DOC 규정에 따르면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쪼는 최소 85%의 몬테풀치아노와 최대 15%의 산지오베제를 블렌딩해야 하며, 최소 5개월 숙성한 후 출시해야 한다. 2년 내로 마시기 좋은 과실향 넘치는 스타일과 시라와 같이 장기숙성력 좋은 스타일로 나뉘어 생산되고 있다. 알코올 도수가 많이 높지 않으며 높은 산도와 무거운 바디감이 특징이다.

붉은 과일- 크랜베리, 사우어 체리, 딸기, 레드 베리 잼
검은 과일- 올리브, 블루베리, 블랙 커런트, 오디
허브- 오레가노, 말린 허브, 으깬 후추, 감초, 바이올렛
마른 과일- 푸룬
오크- 코코아, 커피, 정향
기타- 발사믹, 재, 타르, 아스팔트

김지선 기자는 국제 와인 전문가 자격증 WSET 어드밴스드 과정을 수료후 WSET 디플로마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와인 강의와 컨텐츠를 통해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느끼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김지선기자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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